움직이는 배 위에서 4.5톤 화물차 '왔다갔다'

휴가철 여객선 안전 규정, 제대로 지켜지고 있나 봤더니

등록 2014.08.12 14:14수정 2014.08.12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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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정부 관계 기관은 각종 대책을 쏟아냈다. 사고의 재발을 막겠다는 것들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여객선을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게 됐을까.

휴가철을 맞아 이용객이 늘어난 인천 연안 여객선 한 척을 골라 안전 규정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 현장과 관련 근거 서류 확인을 통해 심층 분석해 봤다.

  연간 승객 17만 명과 차량 2만 대를 수송하는 A여객선
연간 승객 17만 명과 차량 2만 대를 수송하는 A여객선김미성, 이소영

적재 차량 41대 중 절반 이상, 규정대로 고정 안돼

지난 7월 29일 오전 8시. 경기도 안산시 대부도 방아머리 선착장을 떠나 인천광역시 옹진군 덕적도로 향하는 A여객선. 이 배는 승객과 차량을 함께 실어나르는 차도선, 일명 카페리 선박이다.

해양 안전 관리 부처인 해양수산부가 고시한 '카페리 선박의 구조 및 설비 등에 관한 기준' 제 7장 제 20조에 따르면, 카페리 선박에 차량을 실을 때는 승인 받은 차량 적재도에 따라 차량을 고정 시켜야 한다.

A여객선은 평수구간을 1시간 미만을 항해하기 때문에 차량을 묶어 매진 않아도 된다. 다만, '쐐기나 요철 갑판에 고정된 사각 바(BAR) 등 차량의 미끄러짐을 방지할 수 있는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 '목재 스토퍼' 같은 나무 토막으로 차량 바퀴를 고정 시키는 것이다. 이는 평온한 구간이라도 유사시 차량들이 한 쪽으로 쏠려 배의 복원력을 무너뜨리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한 안전 조치다.

  해양 안전 관리 부처인 해양수산부가 선박안전법 제26조에 의거해 고시한 「카페리선박의 구조 및 설비 등에 관한 기준 」. 2009년 11월 18일 개정된 이후 현재까지의 규정.
해양 안전 관리 부처인 해양수산부가 선박안전법 제26조에 의거해 고시한 「카페리선박의 구조 및 설비 등에 관한 기준 」. 2009년 11월 18일 개정된 이후 현재까지의 규정.김미성, 이소영

그러나 직접 확인한 A여객선의 안전 관리 실태는 해양수산부 고시 내용과는 완전히 달랐다. 이 배에는 네오포르테 오토바이 2대, SM3 1대, 쏘나타 2대, 아반떼 2대, BMW 1대, 액티언 1대, 투싼 2대, 카렌스 1대, 무쏘 3대, 코란도 1대, 스타렉스 5대, 싼타페 4대, 카니발 2대, 쏘렌토 5대 등 승객 전용 차량 32대가 실려 있었다.


또한 봉고 3대, 포터 3대, 4.5t 트럭 3대 등 화물 차량 9대도 실려 있었다. 규정상 1.5톤 이상 화물차들은 라싱 밴드로 묶어 고박(붙들어 맴)해야 한다. 그보다 가벼운 승객 전용 차량은 라싱 밴드로 묶지 않는 대신 목재 스토퍼를 이용해 고정 시켜야 한다.

하지만 안전 규정을 철저히 지킨 차량은 전체 적재 차량 41대 중 15대밖에 없었다. 라싱 밴드로 고박해야 하는 화물차 9대 중에서 라싱 밴드로 제대로 묶은 차량은 4대뿐이었다. 나머지 5대는 라싱 밴드로 고박이 전혀 되어있지 않았다.


목재 스토퍼로 차량이 움직이지 않게 해야 할 승객 전용 차량 32대 중에서도 규정을 지킨 차량은 11대에 불과했다. 32대 중 3대는 목재 스토퍼로 전혀 고정 시키지 않았고, 4바퀴 중에서 3바퀴만 고정시킨 차량이 4대, 2바퀴만 고정시킨 차량이 12대, 오토바이 2대는 한 바퀴에만 목재 스토퍼로 고정했을 뿐이었다. 전체 적재 차량 41대 중에서 26대(화물차 4대+승용차 21대), 즉 절반 이상이 엄밀한 의미에서 규정을 어긴 것이다.

관리 부처인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쐐기(목재 스토퍼)로 고정시키지 않은 차량이 1대라도 있다면 출항 자체를 시키면 안 된다"며 "A여객선은 법상으로 잘못한 것이 맞다"고 말했다.

  바퀴에 쐐기가 고정돼있지 않은 A여객선의 적재 차량들. A여객선은 평수구간을 1시간 미만 항해하기 때문에 차량을 묶어 매진 않아도 된다. 하지만 미끄럼을 방지하기 위해 쐐기(목재 스토퍼)나 사각 바 등으로 차량을 고정시키는 안전 조치는 필수다. 맨 오른쪽 하단 사진은 라싱밴드로 묶여 있지 않은 4.5톤 화물차들. 규정대로라면 1.5톤 이상 차량은 라싱밴드로 고박해야 한다.
바퀴에 쐐기가 고정돼있지 않은 A여객선의 적재 차량들. A여객선은 평수구간을 1시간 미만 항해하기 때문에 차량을 묶어 매진 않아도 된다. 하지만 미끄럼을 방지하기 위해 쐐기(목재 스토퍼)나 사각 바 등으로 차량을 고정시키는 안전 조치는 필수다. 맨 오른쪽 하단 사진은 라싱밴드로 묶여 있지 않은 4.5톤 화물차들. 규정대로라면 1.5톤 이상 차량은 라싱밴드로 고박해야 한다. 김미성, 이소영

바다 한가운데서 4.5톤 화물차 이동 시키기도

기자가 탑승했던 A여객선 선수에는 차량 적재 주의사항을 적은 적재 안내문이 붙어 있다. 아래 사진과 같이 선박 운항 중에는 모든 차량이 엔진 스위치를 끄고 차량 브레이크까지 채워 놓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혹시라도 차량이 미끄러져서 배의 복원력을 약화 시키지 않도록 하기 위한 안전 조치다. 해운법 관련 규정도 카페리는 출항 10분 전까지 화물 고박을 모두 끝낸 뒤에 배를 출항 시키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그러나 A여객선에서는 이를 정면으로 무시하는 일이 벌어졌다. 출항 전에 고박을 완료하기는커녕 아래 동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운항 중에 차량을 이동시키고 고박하는 광경이 목격됐다.

  A여객선 선수에 부착된 차량적재도
A여객선 선수에 부착된 차량적재도 김미성, 이소영


A여객선 선사 B해운 "승객 안전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

하지만 카페리가 이렇게 안전 규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다녀도 이를 막을 방법은 없다. 현행 해운법과 해운법 시행규칙 관련 조항이 안전규정의 준수를 의무화하고 있지만, 이를 지키지 않았을 때 선사나 관계자를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인천해양경찰청 홍보계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과거엔 운항관리자의 안전규정 위반시 3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조항이 있었지만 2012년 해운법 개정 과정에서 그 조항이 삭제됐다"며 "모든 여객선에 대해 안전규정 위반 행위를 처벌할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2011년 12월 1일. 미국 워싱턴주 페리 당국은 안전 규정을 변경했다. 워싱턴주 페리의 최대승선인원을 2000명에서 1750명으로, 250명이나 줄인 것이다. 성인의 평균 몸무게가 늘고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시애틀 해안경비대의 한 관계자는 "이래야 승객들이 한꺼번에 배 한 쪽으로 몰려도 배가 전복될 염려가 없다"고 말했다.

A여객선의 선사인 B해운은 지난 6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선원들을 수시로 교육 시키고 사진을 찍어서 보내라는 등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있지만 그날은 잘 지켜지지 않은 것 같다"며 "부족한 건 따끔하게 지적해 주시면 시정 조치하고, 앞으로 승객의 안전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A여객선을 타고 여름 휴가를 다녀오던 피서객 강로사(여∙25)씨는 "세월호 참사로 인해 그렇게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도 이 지경이라는 게 놀랍다. 당국의 감시가 강화된 지금도 이런데 세월이 지나면 어떨지 겁이 난다"면서 "세월호 참사를 막겠다며 정부관계부처와 정치권이 지난 석 달 이상 난리를 쳤지만 과연 사고의 재발을 막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며 한숨을 쉬었다.
#세월호 #여객선 #휴가철 #처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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