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로 첫 발령을 받았던 연천군 미산면 우정리 왕산초등학교를 50년 만에 다시 방문한 오영희 선생님(가운데)과 김선규 현 교장선생님(좌), 이근후 이화여대 명예교수(우)
최오균
꼭 세운 계획 없이도 기차를 타고 싶다//덜커덩거리는 사념과 함께/후회 않는 시간 속으로//삶이란 바퀴를 굴려/달리고 싶은 여름날//못 마시는 캔 맥주도 시원히 터뜨리면서//간이역쯤 지나치는/철마에 실려 가면/창밖엔 세월도 멈춰 설/그 기차를 타고 싶다.
지난 13일, 섬진강 시조시인 오영희 선생님이 기차를 타고 멀리 섬진강에서 임진강까지 왔습니다. 세월도 멈춰 설 그 기차를 타고 50년 전 추억을 더듬으며 임진강을 다시 찾았습니다.
반세기 만에 다시 찾은 임진강섬진강변 하동송림이 고향이신 오영희 선생님이 반세기라는 긴 세월이 지난 후 임진강을 찾은 데는 숨겨진 깊은 사연이 하나 있습니다. 50년 전 한국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에 선생님은 이곳 연천군 미산면 우정리 임진강변에 위치한 '왕산초등학교' 교사로 첫 부임 발령을 받았습니다.
선생님은 20대의 앳된 나이에 우리나라 최남단 섬진강에서 덜커덩거리는 기차를 타고 천리 길을 달려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최전방 38선 이북에 위치한 연천군 미산면 왕산초등학교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간이역쯤 지나치는/ 철마에 실려 가면' 어디가 나올까? 그 알 수 없는 먼 길을 달려온 데는 그럴 만한 까닭이 있었습니다.
당시 갓 결혼을 했던 선생님의 남편이 공병 장교로 이곳 연천군 최전방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남편 덕분(?)에 생전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임진강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남편을 따라 그 먼 길을 왔건만 정작 선생님의 남편은 곧 발령을 받아 부산으로 임지를 옮겨 버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홀로 임진강변에 셋방을 한 칸 얻어 3년 동안이나 왕산초등학교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임을 따라 왔건만 임은 멀리 떠나버리고, 홀로 아이들을 키우며 젊은 날을 보내야 했던 그 사연을 듣고 나니 지금도 애틋하게만 느껴집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이곳을 떠난 지 50년이란 긴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창밖엔 세월도 멈춰 설' 긴 시간입니다. 선생님은 왕산초등학교 교사 시절 낳은 자식을 따라 현재 미국에 거주를 하고 있습니다.
반세기가 지난 후 태평양을 건너서, 기차를 타고 임진강을 찾은 선생님의 감회는 남다를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오랜 세월 삶이란 바퀴를 굴려 인연 따라 다시 찾은 이 길은 가슴 아리아리하도록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찰라(저의 애칭) 선생님이 이곳에 살고 계시기에 제가 50년 전 추억의 길을 다시 찾게 되어 참으로 감개가 무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