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론 마키닛 온천
강은경
오늘 아침 숙소에서 소음과 더위에 시달리다 밖으로 나왔을 때, 바다 쪽에서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우기(雨期)도 아닌데 스콜이? 숙소 뒤편 선착장에선 방카에 실려 온 돼지들이 울부짖고 있었다. 근처 섬에서 팔려온 돼지들이었다. 잠시 지켜보다가 숙소로 다시 들어갔다. 부리나케 수영복을 챙겨 입었다. 서둘러 갈 곳이 생겼다. 빗속에서 야외온천을 즐길 생각이었다.
트라이시클(오토바이를 개조해 만든 삼륜차)을 잡았다. 기사는 짧은 머리 필리핀 청년이었다. 흥정은 간단했다. 왕복 300페소(한화로 약 7200원). 정해져 있는 가격이었다. 나는 150페소, 편도 값만 계산하겠다고 했다. 돌아올 차편이 없는 곳이라며 기사가 극구 말렸다. 온천욕이 끝날 때까지 한 시간, 두 시간도 기다려 주겠다고 했다. 다들 그렇게 한다며. 그를 설득하기 위해 내 말이 길어졌다.
"시간 정해 놓고 놀고 싶지 않아요. 시간 확인하랴, 기다리고 있는 당신 신경 쓰랴, 잘 놀 수 없어요. 어떤 거에도 구애받고 싶지 않아요. 이해하겠어요? 있고 싶을 만큼 있다가... 고맙지만 걱정하지 말아요. 돌아올 방법이 있겠죠. 걸어와도 좋고. 데려다만 줘요."
결국, 기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오케이!' 했다. 이 여행은 애초 어디든 내키는 만큼 머물다, 떠나고 싶을 때 떠나는 배낭여행이었다. '나는 유목민, 바람처럼 떠나고 햇살처럼 머문다'라는 리타 골든 겔만처럼.
시내를 벗어나기 전, 기사는 트라이시클을 세워놓고 상점에서 1리터짜리 콜라 한 병을 사왔다. 트라이시클 연료통에 부었다. 알고 보니 주유소가 드문 팔라완에선 경유나 휘발유를 콜라병이나 플라스틱 병에 담아 팔고 있었다. 시내를 빠져나가 동쪽 해안가로 20여 분 비포장도로를 달렸다. 미끄러운 빗길이었다.
마키닛 온천은 바닷가 외진 곳에 있었다. 입구로 들어서면 작은 매점과 조형물들, 야외 테이블과 정자가 몇 채 있고, 바다 쪽으로 온천이 보였다. 초당 85리터 솟구쳐 흐르는 해수온천수. 40여 도의 뜨거운 바닷물. 온천수는 둥글게 만들어 놓은 둑 안에 모였다가 콸콸 바다로 흘러가고 있었다. 물이 깨끗해 바닥에 깔린 자갈이 다 보였다. 한편에 언덕이, 맞은편엔 맹그로브 숲이 둘러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