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어 잡고 문어 먹고... 대단한 심가네 벌초 여행

20년 동안 이어진 우리 집안 벌초여행... 친척 40여명 모여 북적북적

등록 2014.08.24 15:56수정 2014.08.24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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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님이 돌아가신후 사촌과 6촌 형제간이 모여 20년째 벌초를 이어가고 있는 우리 집안. 올해도 무사히 벌초를 마무리 했다.
아버님이 돌아가신후 사촌과 6촌 형제간이 모여 20년째 벌초를 이어가고 있는 우리 집안. 올해도 무사히 벌초를 마무리 했다.심명남

"섬에 태어난 것도 억울한데 조상 벌초도 짐이네 짐! 얼른 화장해 납골당에 모시든지 해야지 원...."


섬에서 태어나 육지에 정착한 사람들에게 '벌초'는 또 다른 짐이다. 섬에서 만난 김씨네 집안 식구들은 내게 이런 하소연을 털어놨다. 부모님 세대가 돌아가시자 남아 있는 여러 조상의 묘를 왜 자기들만 떠맡아야 하는지 불만이 컸다.

흔히 사촌간은 안 만나면 더 남같은 요즘이다. 혹 재산권 분할이라도 남아 있으면 집안 분위기는 썰렁하다. 하지만 우리 집안은 다르다.

<아빠 어디가>에 이어 명품마을로 지정된 고향

 동트기전 이른아침 검무스레한 바다에서 본 섬의 모습
동트기전 이른아침 검무스레한 바다에서 본 섬의 모습심명남

내 고향 (여수 안도) 동고지는 지난해 <아빠 어디가> 촬영지에 이어 국립관리공단에서 운영하는 '명품마을'로 지정되어 한창 유명세를 타고 있다. 하지만 옛날에는 말 그대로 깡촌 중에 깡촌이었다. 그래서 지인들이라도 데려가면 십중팔구 '이런 데서 어떻게 살았냐, 너 정말 출세했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올 정도로 오지의 섬마을이었다.

오늘은 사촌, 6촌간 형제들이 20년째 벌초를 이어가고 있는 집안 이야기를 쓸까 한다. 우리 집안은 종갓집 장손 집안이다. 동고지에 조상이 정착한 시초는 심씨 집안 20대 할머니가 돌산에서 두 아들을 데리고 온 후다. 나는 26대손이다. 지금까지 섬에 묻힌 조상 묘는 스물 댓 봉산이다.


아버지 세대가 거의 돌아가신 후 아직 어머니가 남아 있지만 집안 식구들 걱정은 '조상 묘'였다. 그 전까지 아버지와 섬에 살던 친척들은 성묘를 내 일처럼 모셨지만 어른이 돌아가시니 상황이 달라졌다. 더 이상 책임지고 모실 분들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성묘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찾은 방안으로 매년 여름 휴가철에 벌초후 성묘를 해온 지 어느덧 20년째를 맞았다. 물론 중간에 떨어져 나간 6촌간도 있지만 말이다. 지금까지 장만한 예초기만해도 8대다. 2사이클 4대는 노후화로 고장이 났다. 그래서 해마다 4사이클로 4대를 교체했다.


'벌초=여행'으로 생각하는 심가네 벌초여행

 벌초후 집앞이 보이는 바다에서 장어잡이에 나선 친척들
벌초후 집앞이 보이는 바다에서 장어잡이에 나선 친척들심명남

 장어통발에서 통발만큼 굵은 장어가 나오고 있다.
장어통발에서 통발만큼 굵은 장어가 나오고 있다.심명남

 장어통발에서 문어가 잡혀 나오고 있다.
장어통발에서 문어가 잡혀 나오고 있다.심명남

특히 집안 모임 이름도 '심가네 벌초여행'이다. 올해는 지난 광복절 연휴를 맞아 40여 명의 친척들이 벌초를 위해 모였다. 고향을 나온 친척들은 여수를 비롯해 서울, 경기도, 부산, 마산, 백령도까지 각기 다른 곳에서 살지만 벌초 때만큼은 꼭 모인다. 이것이 우리 집안의 힘이다.

20년째 벌초를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벌초를 남의 일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식구들은 '여행'이라 생각한다. 물론 여행에서 어머니와 총무의 역할이 크다. 두 분은 회비를 걷어 벌초에 쓸 제사음식과 2박 3일 동안 먹을 음식을 푸짐하게 장만한다.

이제 섬도 예전과 달리 소를 키우지 않다 보니 산에 가면 풀이 짙어 한 해만 거르면 길을 잃어 버릴 정도로 숲이 우거져 있다. 소와 사람들이 다니지 않기 때문이다. 가장 힘든 점은 산을 헤집고 산소를 찾아가는 일이다. 산소에 도착해 벌초 후 간단히 음식을 차리고 즉석에서 성묘를 모신다.

20년째 벌초를 하다 보니 에피소드도 많다. 몇 년 전 일이다. 산소에 갔더니 누군가 우리 조상 묘를 깔끔히 벌초 후 성묘까지 하고 간 것이 아닌가. 나중에 알고 보니 동네 박씨네 집안에서 맞은편에 있는 조상 묘를 못 찾고 우리 집안 묘에다 벌초를 하고 간 것이었다. 덕분에 고생은 덜었지만 씁쓸했다.

 먼저 떠난 가족도 있다. 벌초를 마치고 섬을 떠나기 전 남은 가족들과 한컷
먼저 떠난 가족도 있다. 벌초를 마치고 섬을 떠나기 전 남은 가족들과 한컷심명남

벌초를 마친 후 즐기는 바닷가 물놀이는 여름을 더욱 시원케 한다. 특히 장어와 물고기, 해산물도 잡고 멱을 감으며 어릴적 향수에 젖는다. 잡은 걸로 술잔을 기울이며 밤새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덧 2박 3일이 훌쩍 지나버린다. 올해도 무사히 집안 벌초를 마칠 수 있도록 도와준 모든 가족분들에게 집안 총무로서 감사할 따름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여수넷통> <전라도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벌초 #심가네 벌초여행 #동고지 #명품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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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하고 싶은 일을 남에게 말해도 좋다. 단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라!" 어릴적 몰래 본 형님의 일기장, 늘 그맘 변치않고 살렵니다. <3월 뉴스게릴라상> <아버지 우수상> <2012 총선.대선 특별취재팀> <찜!e시민기자> <2월 22일상> <세월호 보도 - 6.4지방선거 보도 특별상> 거북선 보도 <특종상> 명예의 전당 으뜸상 ☞「납북어부의 아들」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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