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은 '벌초'하는 날이 잔칫날

우리집 벌초 이야기

등록 2014.08.30 19:15수정 2014.08.30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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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초 시작전 가족묘 48기용 전경
벌초 시작전 가족묘 48기용 전경윤도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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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없는 나무 없고, 조상 없는 후손 없다. 청파 가족 "48기용 가족묘" 벌초 실황을 영상에 담아 소개 합니다. ⓒ 윤도균


뿌리 없는 나무 없고, 조상 없는 후손 없다.


해마다 이맘때면 전국 방방곡곡 도로가 끊임없이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정체 현상을 이룬다. 무엇 때문일까? 바로 유교문화 삼강(三綱) 충효열(忠, 孝, 烈) 정신에 따라 조상님 묘 벌초를 떠나는 차량 행렬 때문이다. 물론 개중에는 여가 생활을 즐기기 위한 차량도 있겠지만, 그 외는 대부분 벌초 차량이다.

그러다 보니 추석임 새면 어느 누구 네라 할 것 없이 조상님 벌초 하는 일이 속된말로 집안에 큰 일거리가 되다시피 했다. 그러자 어떤 집에선 아예 조상님 벌초를 대행 업자에게 돈을 주어시킨 후  벌초 현장을 스마트폰으로 사진 찍어 보내 확인하는 사례까지 생긴 새로운 벌초 문화도 등장을 했다. 

하긴 우리 집만 해도 불과 15년여 전만해도 고향 선영(先塋)에 여기저기 매장 묘에 잠들어 계신 열두 분 조상님묘 벌초를 할 때면 아버지 삼형제분 슬하에 이십 여명의 자녀들이 있어도, 여자들은 열외라 쳐도 벌초에 참석하는 사람은 고작 3~4명에 불과해 심지어 농촌 출신인 나서부터도 "호랑이 새끼 처나갈 정도로 잡초" 우거진 묘를 여기 저기 찾아다니며 벌초를 하고 나면 녹초가 될 정도다

그래서 나는 15년여 전에 이 힘들고 어려운 벌초 문제에 대해 고민을 했다. 왜냐면 기성세대인 우리 세대가 이렇게 힘들어 하는데 조상님묘 위치조차 생면부지인 2세들이 과연 이일을 이어받아 감당해낼 수 있을까? 고민 하며 그 대안을 찾던 중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벽제승화원'에 자문을 얻어 가족묘 설계 도면을 받아 우리 48기용 가족묘를 조성키로 마음을 굳혔다.

 온가족이 벌초를 하는 전경 사진 모음
온가족이 벌초를 하는 전경 사진 모음 윤도균

 온가족이 벌초하는 실황 사진 모음
온가족이 벌초하는 실황 사진 모음윤도균

그리고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우리 4형제와 두 집 사촌형제들의 동의를 얻어 "48기용 가족묘"를 3일에 걸쳐 조성하고 곧바로 열두 분 조상님묘를 개장 화장을 모신 후 그 유해를 납골함에 정성껏 모시어 새로 조성한 48기용 우리가족묘에 안장을 했다.


이렇게 일사불란하게 우리 가족묘 조성하는 과정을 지켜보시던 고향 집안 어르신들께서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나를 불러 도균아 네가 너무 앞서가는 것 아니냐? 많게는 몇 백 년이 지난 조상님묘를 건드려 화장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고 자칫 집안 우환이 우려된다는 충고를 하시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가족묘역이 완성되는 과정을 지켜보신 어르신들께서 다시 하시는 말씀이 역시 자네의 의견이 우리네 보다 한발 앞섰다고 말씀 하시며 정말 "선견지명"이 있네라 하시며 격려를 하시기도 했다. 그러면서 당신네 자식들에게도 나더러 가족묘 조성을 일깨워 주라는 부탁까지 하셨다.


그래서 나는 어르신들에게 내가 우리가족묘역을 조성하게 된 경위와 조성후의 장점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을 드렸다. 생각해 보세요. 지금 내(我) 세대가 이렇게 힘들어 하는 벌초를 머지않아 우리의 2세들에게 대물림 하게 될 텐데, 그때 아이들이 너무 힘들어 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할 것이고 그러다 보면 자칫 조상님 묘 벌초를 아예 못해 무연고 묘처럼 버려두는 경우가 생겨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침울한 현장을 혹시라도 고향 집안 분들이라도 보시고 죄 없는 우리 2세들을 가르쳐 아무게네 자식들 들먹이시며 흉보실지도 모르게 되어 힘들고 어렵더라도  내 대(代)에 이렇게 우리 가족묘역을 조성 하게 된 경위를 말씀 드리며 가족묘 조성후 그 장점을 설명해 드렸다.
 온가족이 다함께 참여해 벌초를 대충 마친 상태의 우리가족 묘 전경 여러모습
온가족이 다함께 참여해 벌초를 대충 마친 상태의 우리가족 묘 전경 여러모습윤도균

 벌초를 모두 마치고 조상님께 참배를 올리는 모습
벌초를 모두 마치고 조상님께 참배를 올리는 모습윤도균

가족묘 조성은 "핵가족 시대의 가장 큰 대안"

그런데 그 효과는 우리가족묘 조성한 첫해부터 나타나기 시작해 우리 집안엔 새로운 벌초 문화가 조성되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 효과가 우선 벌초가 쉬우니, 그 전에는 벌초하러 오라고 그렇게 부탁을 해도 바쁘다는 핑계로 참여를 못하던 가족들이 해마다 이맘때면 "형님 올해는 벌초 어느 날" 할 것이냐고 물어올 정도로 솔선수범해 참석을 한다.

그러다 보니 "먼 사촌이 이웃사촌만 못하다" 소릴 들을 정도로 1년이 지나고 10년이 되어도 만나기 쉽지 않았던 사촌, 오촌 지간들을 해마다 이맘때 치루는 "우리가족 벌초 축제날"을 기회 만나게 되는 새로운 우리가족 우애 문화가 탄생을 하게 되었다.

그뿐 아니다. 가족묘에 현재 모신 조상님중 (7대조, 6대조, 5대조, 고조, 증조, 부모님, 형제) 순으로 한곳에 모시게 되니 벌초 날이면 사촌, 오촌은 물론 심지어 시집간 누이와 사위 외손자들까지 벌초에 참여해 우리 많을 때는 30여명의 대가족이 모일 때도 있다.

 벌초를 모두 마치고 온 가족이 가족묘를 배경으로 기념 사진도 찍었다.
벌초를 모두 마치고 온 가족이 가족묘를 배경으로 기념 사진도 찍었다. 윤도균

 벌초를 모두 마치고 온가족이 이동해 얼큰한 임진강 두지리 매운탕으로 만찬을 즐기며 가족지간 대화를 나눈다.
벌초를 모두 마치고 온가족이 이동해 얼큰한 임진강 두지리 매운탕으로 만찬을 즐기며 가족지간 대화를 나눈다. 윤도균

앞으로 우리 가족은 150년 지나도 묘지 문제 걱정 없어

그러자 이 화합된 분위기를 지속적으로 이어가기 위해 나는 큼직한 텐트를 마련해 가족묘역 주변에 치고 그늘 아래 여러 집에서 챙겨온 푸짐한 먹거리를 나누며 2~30여명의 가족들이 다 함께 모여앉아 화기애애한 대화 나누며 집안 대소사 이야기, 아이들 키워 공부 시키는 이야기 등 사람 사는 이야기 재미로 하루해가 짧게 느껴질 정도로 하하 호호 웃음소리 이어진다.

우리가족묘 조성후 가장 큰 성과를 꼽으라면  "핵가족 시대" 에 이렇게 많은 가족지간 화합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을 손꼽을 수 있으며, 또한 과거와 달리 벌초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온 가족이 서로서로 자진해서 참여하는 문화가 조성되어 멀게는 10년이 지나도 만나기 어려운 친인척들을 자연스럽게 1년에 한 번씩 만날 수 있는 만남의 장이 된 것을 자랑 할 수 있다.

올해는 하필이면 벌초 일정이 일요일로 정해지는 바람에 종교 활동과 바쁜 업무로 불참하는 가족이 여러 사람 있었음에도 불구 20여명의 가족들이 참석을 했다. 옛날에는 여자들과 아이들은 벌초 참여 생각도 못했을 정도인데, 지금은 남녀노소 불문 다 함께 참여해 조상님 벌초를 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고향친구 부부가 내가 벌초하러 왔다는 소식을 듣고 집에서 거둔 야채를 가지고 달려와 전해준 고향냄새 야채가 60년지기 친구의 우정을 짐작케 한다.
고향친구 부부가 내가 벌초하러 왔다는 소식을 듣고 집에서 거둔 야채를 가지고 달려와 전해준 고향냄새 야채가 60년지기 친구의 우정을 짐작케 한다. 윤도균

#벌초 #가족묘 #가족납골묘 #조상님 #벌초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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