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란 무엇인가책 표지
엘도라도
'인생이 무엇이며 어떠한 삶이 의미있는가?'이 질문에 대해 자연과학에서와 같이 일반화된 법칙을 도출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것일까?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에서 철학교수로 재직 중인 수전 울프는 이러한 물음에 'Yes(네)'라고 답할 야심찬 연구자다.
그는 이 책에서 가장 단순한 방식으로 법칙을 세우고 제한적으로 예외를 두는 뉴턴식 방법론에 입각해 가치있는 삶이 무엇인가를 입증하려 시도했다. 책은 오직 이성을 도구로 삼아 삶을 파헤치는 두 편의 강의로 시작해 곧 이를 반박하는 네 학자들의 글로 이어지고 다시 그에 대한 수전 울프의 재반론으로 끝을 맺는다.
우리는 직접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삶에 대해 무지하며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이는 학자들의 경우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인류의 짧지 않은 역사에서 학문의 관심은 신과 세상에 집중되어 왔으며 우리 자신, 나아가 삶에 대해서는 너무도 무심했다. 삶이란 무엇인가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 적지 않았음에도 학문적으로 인생의 의미를 탐구하고 규정한 사례가 흔치 않다는 점에서 이 책은 그 자체로 생소한 저작이다.
가치와 행복, 둘 모두를 잡아야 의미 있는 삶이 책을 통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오직 한 가지다. 객관적으로 가치있는 대상에 주관적으로 이끌려야만 가치있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자기를 도외시한 일방적인 헌신은 물론이고 가치없는 대상에 매달려 개인적 행복을 추구하는 것도 의미있는 삶이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사회적 의미와 개인적 의미 중 어느 하나만으로는 가치있는 삶을 살 수 없으며 이 둘을 조화시킨 삶이야 말로 의미있다는 뜻이다.
삶의 의미는 가치 있는 활동에 대한 '적극적인 관여(active engagement)' 과정에서 그 존재를 드러낸다. 이런 차원에서 삶의 의미는 '주관적인 이끌림(subjective attraction)'이 '객관적인 매력(objective attractiveness)'을 만났을 때 비로소 모습을 나타낸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기존의 삶과 관련한 두 가지 생각을 언급하고 이를 비판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논지를 강화시켜 나간다. 첫째는 '어떤 대상을 사랑하고 있다면 다른 문제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관점이며 다른 하나는 '충만한 삶을 위해서는 자신보다 더 큰 존재에 관여해야 한다'는 관점이다. 전자는 '행복추구', 후자는 '가치추구'라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두 가지 입장에 대한 비판은 대체로 설득력 있게 여겨진다. 그러나 동시에 진부하게도 느껴진다. 12년 전 영화 <매트릭스>에서 주인공 네오가 빨간약과 파란약을 두고 고민하던 그 유명한 장면이 상징하는 것이 바로 이 두 가지 입장이 아니었던가. 기계 속에 누워 마취된 채 행복을 느끼는 것이나 암담한 현실 속에서 일신의 행복을 버리는 것, 그 모두가 이상적인 삶과 거리가 있음을 독자 모두가 알고 있는데 이러한 논의가 과연 어떤 의미를 전해줄 수 있는 것일까?
저자는 이 두 가지 생각을 조화시킨 '수정된 성취관점(fitting fulfillment view)'을 내세워 사회적으로 가치있는 일을 하며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만이 진정으로 의미있는 삶이라고 선언한다. 그는 이를 위해 '객관적인 가치(objective worth)'라는 용어를 등장시키고 이것이 충족되지 않은 삶은 진정으로 의미있는 삶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즉 객관적인 가치야 말로 삶의 의미를 판단하는 기준이라는 것이다.
삶에 있어 객관적인 가치는 존재하는가그러나 이는 진부할 뿐 아니라 위험하기까지 한 주장이다. 개인이 추구하는 가치를 '객관'이라는 시각에서 재단하고 그에 따라 개인의 삶 자체를 평가하는 것은 엘리트주의적이며 독단적인 생각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수전 울프의 성긴 논증은 그가 말하는 객관적인 가치가 도대체 무엇인지 제대로 설명하고 있지 못하며 그에 따라 객관적이라는 말이 유동적이고 자의적으로 유용될 우려까지 낳고 있다.
삶이란 태어나서 죽기까지 오롯이 한 개인에게 매여있는 지극히 주관적인 것인데 이를 객관적인 시각으로 재단하는 것이 가능하며 온당한가 하는 근본적인 의문에 대해서도 저자는 전혀 답을 주지 않는다.
그러니 네 명의 학자가 이에 대해 반박한 것도 자연스런 일이다. 저자는 반론에 대한 재반론을 통해 그 중 두 명의 반박은 큰 의미에서 자신의 입장에 동의하고 지엽적인 비판을 제기한 것이라 규정하고 있지만 이러한 판단 역시 적절하지 못하다.
물론 네 학자들이 문제를 제기한 지점이 각기 다르고 앞선 두 명의 경우에는 저자의 생각에 일부 동의하고 있으나 이는 그 핵심적인 논증에 대한 동의가 아니라 삶의 가치를 따질 때 사회적 의미가 들어갈 수 있다는 출발지점에 공감한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들은 객관적 가치의 평가기준이 모호하고 자의적일 수 있음을 언급하고 있어 수전 울프의 핵심주장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전반적으로 수전 울프의 논증에 허점이 많고 그 전개방식이 치밀하지 못해 이러한 비판점 모두를 언급하는 것은 별다른 의미가 없을 듯하다. 저자의 생각과 그 주장에서 특별한 의미를 찾기도 어렵다. 하지만 책의 독특한 편제, 즉 저자의 주장에 대해 반론을 제기한 학자들의 글을 통해 의미있는 삶이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를 확장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비록 수전 울프의 논증이 치밀하지 못하고 그 주장이 독단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지만 어떤 삶이 의미있는 것인가에 대해 독자들로 하여금 생각해보게 할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게 아닐까?
삶이란 무엇인가 - 프린스턴대학교 인생탐구 대기획
수전 울프 지음, 박세연 옮김,
엘도라도,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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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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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무엇인가'... 이 질문을 법칙화 할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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