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빨래와 사이좋게 말라가는 소똥의 모습을 바라나시에서는 흔히 볼 수 있다.
박경
지리산 자락에 살림을 차린 친구가 하나 있다.
마룻바닥에 흙이 버슬거리는 그 집을 찾아 가면, 밤에는 화목보일러에 감자와 고구마를 구워 먹었고 아침에는 친구의 트럭을 타고 정령치를 짚고 왔다. 해가 지면 친구는, 찻물에서 활짝 피어나는 국화꽃을 선물해 주기도 했다.
모처럼 친구들이 시골집에 모여 수다를 떨었다, 10년쯤 전에. 수다는 자연스럽게 그 집 '변소간'으로 모아졌다. 일을 본 후에는 옆에 있는 볏짚을 얼마나 부어 두어야 하는지, 왕겨나 톱밥을 좀 더 섞어야 할지, 나중에 어떻게 거름으로 알뜰하게 써 먹을 것인지 등의 이야기들.
그런데 그 이야기를 어디서 뭘 하면서 했느냐. 바로 밥상머리에서였다. 네 여자가 머리를 맞댄 밥상 앞에서 똥 이야기를 진지하게 했던 거다. 밥은 입으로 넣어 가면서, 똥 이야긴 입으로 뱉어 가면서. 한 입으로 밥과 똥이 넘나드는데도 전혀 더럽다는 생각이 안 드는 것을 스스로들 신기해하면서. 말하자면 우리는, 똥과 밥이 하나 되는 순간을 체험한 거다(!)
도시에서 똥은 우습거나 경멸스럽거나 지저분한 것이지만, 시골에서 똥 이야기는 밥 이야기이고 사는 이야기이다. 도시에서 똥은 밥과 분리되지만, 시골에서 똥과 밥은 하나다.
갠지스 강변에서 소똥을 빚는 할배를 보았을 때에 10년 전의 그 일이 떠올랐다.
마치 빵을 빚듯 소똥을 빚는 할배의 모습이 어찌나 고요하던지. 한참을 바라보고 있는데도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주변의 소리에도 아랑곳 않고 오로지 소똥 빚는 일에만 초집중 중이었다. 너무 골몰해서 소똥을 빚은 나머지, 마침내 소똥을 닮아, 한 번에 달랑 안아 올릴 수 있을 만큼 동그랗게 등이 말려 있던 소똥 할배.
인도인들에게야말로 소똥은 일상이고 종교이고 삶이고 밥이다. 소똥을 연료로도 쓰고, 소똥으로 신상을 만들고, 소똥을 이마에 발라 카스트를 표시한다. 소똥으로 부정 탄 몸을 닦아내기도 하며, 소똥을 마당과 토방에 발라 장판처럼 매끈거리게 만들기도 한다(이런 기세라면 소똥을 먹지는 않을까, 하는 의심마저도 든다).
소똥이 어떤 대접을 받는지 바라나시에 가 보면 알 수 있다. 그것들은 종종 갠지스 강물에 씻겨진 빨래와 사이좋게 어울려 꾸덕꾸덕 말라 가고 있었다, 햇살이 고르게 쏟아지는 가장 양지 바른 곳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