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 밝히는 원세훈국정원 대선 개입 혐의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1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2년 6월, 자격정지 3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 받은 뒤 취재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질문에 답하고 있다.
유성호
12일 오전 현직 부장판사가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의 1심 판결을 두고 법원 내부게시판에서 실명으로 비판하는 글을 올려 파문이 일고 있다. 수시간 동안 내부게시판에 있던 이 글은 대법원이 직권으로 삭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법부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 만큼, 국정원 대선개입사건 재판 결과의 파장은 좀처럼 잦아들지 않을 전망이다.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김동진(45) 부장판사는 이날 오전 7시쯤 법원 내부 전산망인 '코트넷'에 A5용지 다섯 쪽에 달하는 장문의 글을 올렸다. 제목은 '법치주의는 죽었다'였다.
김 부장판사는 이 글에서 '국정원법상 정치개입이지만, 공직선거법상 선거운동은 아니다'란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1부(부장판사 이범균)의 판단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도대체 선거개입과 관련 없는 정치개입은 뭘 말하는 것이냐"며 "이렇게 기계적이고 도식적인 형식논리가 국민들을 납득시킬 수 있는가, 이것은 궤변"이라고 지적했다.
또 "판사와 검사의 책무는 법치주의를 수호하는 것"이라며 "이 판결은 '정의'를 위한 판결일까?"라고 의문을 드러냈다. 김 부장판사는 "재판장이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심사를 목전에 앞두고 입신영달에 중점을 둔 '사심' 가득한 판결이라고 생각한다"며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근본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원세훈 전 원장의 판결을 '지록위마(指鹿爲馬·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한다'는 뜻으로, 힘을 가진 자가 윗사람도 농락하면서까지 권세를 휘두르는 것을 비유)'란 고사성어에 빗댔다. 국정원이 2012년 대선 때 불법적인 개입행위를 했던 점들이 "객관적으로 낱낱이 드러났고, 삼척동자도 다 아는 자명한 사실"인데 재판부만 다른 결론을 내렸다는 얘기였다.
김 부장판사는 "사법부가 국민들의 상식과 순리에 어긋나는 '지록위마의 판결'을 할 때마다 국민들은 절망한다"며 이번 재판 결과의 모순을 거듭 꼬집었다. 그는 끝으로 "누군가 나를 '좌익판사'라고 매도한다면, 그러한 편견은 정중히 사양하겠다"며 "나는 판사로서 대한민국 법치주의 몰락에 관하여 말할 뿐"이라고 밝혔다.
이 글은 오전 11시 현재 게시판에서 찾아볼 수 없다. 대법원이 직권으로 김 부장판사의 글을 삭제했다고 알려졌다.
김 부장판사는 지난 2012년 대법원의 판결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글을 코트넷에 올리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한우원산지를 속인 유통업자들에게 유죄를 선고했던 '횡성한우 원산지표기 사건' 결과가 대법원에서 뒤집혀 무죄가 확정되자 "대법원은 교조주의에 빠져있다"고 비판했다. 김 부장판사는 이 일로 서면 경고를 받았다.
다음은 그가 12일 오전 코트넷에 올린 글의 전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