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6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마친 뒤 회의 모니터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오로지 대통령 한 사람의 안위를 위해 존재하는 정부와 개점휴업 중인 국회는 제 기능을 상실한 지 이미 오래고, 그나마 믿었던 법원마저 상식과는 사뭇 동떨어진 정치적 판결을 쏟아내며 진흙탕에 발을 담갔다. 현 정부 들어 '삼권 분립'이라는 말은 사문화한 지 이미 오래고, 세쌍둥이 마냥 똑같은 모습으로 '한 목소리'를 낼수록 국민들의 삶은 고단해져만 간다.
비판 글을 서둘러 삭제한 대법원의 '찌질한' 행태를 보며 자성하듯 학교를 들여다본다. 업무의 내용과 일과가 다를지언정 돌아가는 모습은 법원이나 학교나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법관이 남의 판결에 애써 눈 감듯, 교사도 남의 수업에 웬만해선 참견하지 않는다. 법원에서도, 학교에서도, 누군가 표현했듯 '침묵의 카르텔'이 견고하게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흔히들 우리 교육이 붕괴된 이유를 '외부'에서 찾곤 한다. 예컨대,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학벌 구조와 입시 제도를 손꼽는 이들도 있고, 조령모개 식의 교육정책과 빈약한 교육재정을 탓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지나친 경쟁의식과 자존감의 부족, 경제적 양극화로 인한 가정의 파괴 등을 원인으로 꼽는 이들도 많다. 하나같이 타당하고 일리 있는 지적이다.
그런데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가장 큰 원인이 '밖'이 아니라 학교 '안'에 있다고 본다. 바로 교사들끼리 상대방의 영역에 불간섭하는 뿌리 깊은 관행이 그것이다. 수십 년을 함께 근무한 사이라고 해도, 웬만해선 동료교사의 수업과 생활지도 방식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는다. 아이들 앞에서 교사들끼리 갈등하는 모습은 비교육적이라는 지적을 하는 경우마저 있다.
연말 실시되는 교원평가 중 동료교사 상호간의 평가 항목이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요식행위일 뿐, 그걸 신경 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모두 '만점'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혹, 그렇지 않다 해도 그것은 도입 취지대로 교사의 '능력'을 평가하기보다 교사들끼리의 '관계'가 기준이 되기 십상이다. 말하자면, 친소 관계에 따라 평점이 좌지우지될 가능성이 크다.
학교 일 고민해보자 제안... 힘 빼지 말라는 조언만 돌아와몇 해 전 직접 경험한 일이다. 몇 시간째 복도에서 무릎 꿇은 채 벌을 받는 아이가 있어, 지시한 교사에게 찾아가 적어도 수업은 받게 한 뒤 벌을 주는 게 어떠냐고 말했다가 면박만 당했다. 조심스러웠지만 손아래인데다 나름 친분이 있다고 여겨, 그가 선배 교사의 '진심'을 이해해 주리라 믿었다. 그런데 적이 불쾌한 표정으로 "서로 다른 교육방식에 대해 헤아려 달라"며 청을 거절했다. 거칠게 말해서, '너나 잘 하세요'라는 식이었다.
그 후 직접적인 '개입'은 피하고, 학교 게시판에 건의사항 삼아 글을 올려 동료교사들의 공감을 얻는 방식을 취했다. 체벌 문제를 비롯해 교사들끼리의 수업 교차 장학, 보충수업과 야간자율학습, 동아리 활동과 교복 착용에 대한 문제점 등 학교에서의 일이라면 영역과 주제를 가리지 않고 함께 고민해보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메아리는 거의 없었다.
되레 괜한 곳에 힘 빼지 말라는 조언만 돌아왔다. 주장에 공감하든, 하지 않던 교사들이 자신들만의 '색깔'을 바꾸기란 쉽지 않을 거라고 했다. 심지어 동료교사들끼리 분란을 일으킬 소지가 있다며 서로에게 '불편한' 글은 앞으로 게시판에 올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분도 계셨다. 그때 이후 나는 순간 '튀는 교사'로 낙인찍히며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법원 식 표현으로 하자면 '돌출 교사'이고, 군대식으로 하자면 '관심 교사'인 셈이다.
비단 학교만의 문제는 아닐 테지만, 사소한 '지적질'에도 조직 내에서 '왕따'를 당할 각오가 필요하다. 다른 학교와 교사를 실명으로 비판할 수는 있어도, 함께 근무하는 동료교사를 탓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학교의 변화와 개혁은 요원하다. 가혹한 체벌을 당했다고, 수업이 부실하다고 사진 찍어 스승을 고발한 '막장' 아이를 꾸짖기에 앞서, 그 지경이 되도록 나 몰라라 해 온 동료교사들의 무책임을 먼저 반성해야하지 않을까.
일말의 부끄러움도 없이 '말장난' 판결이 내려지고, 이를 비호하려는 듯 판결 내용을 비판하는 법관의 글을 서둘러 삭제하는 대법원의 행태로 보아 우리 법원의 퇴행도 심상치 않다. 이 또한 원인을 찾자면 여럿이겠지만, 법원의 권위를 되찾기 위한 노력은 판결 내용에 대한 자유로운 내부 비판 허용으로부터 시작되어야하지 않을까 싶다.
아이들이 '지록위마' 판결이라고 비판하며 '법치주의는 죽었다'고 설파한 그 법관의 용기 있는 행동에 모두가 박수를 보내면서도, 이런 이야기가 오갔다. 이게 우리 사회의 민낯이고, '닳은' 아이들의 솔직한 모습이라고 생각하니 씁쓸하기 그지없었다.
"혹시 그분 판사직에서 잘리는 것 아닐까?""물론, 좌천당하거나 잘리겠지. 그래도 나와서 변호사 개업하면 될 테니, 다른 곳보다야 백 번 낫지.""그럼 '말장난' 판사는 어떻게 될까?""보나마나 초고속 승진에다, 지검장 정도야 '따 놓은 당상'이겠지, 뭐. 그 정도 인센티브가 보장된다고 믿으니까 욕먹을 작정하고 그런 '양념 반, 후라이드 반' 판결을 내린 것 아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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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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