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치거리의 '인천집' 대통령 방에서 진행된 인터뷰. 노무현 대통령 방을 사진 등으로 꾸며놓았다.
최종명
홍재남 사장은 아들의 권유에 못 이겨 방송에도 나갔지만, 텔레비전에 나갔다는 홍보물을 간판이나 식당에 붙이지 못하게 했다. 심지어 간판에 원조라는 말을 절대로 넣지 못하도록 했다. 다 함께 잘 살기 위해서는 배려가 없으면 안 된다는 '원조의 정신'. 이 정신이 삼치 거리 공동체의 기반이 된 것이다.
삼치 거리 가게 주인들은 지금도 홍 사장 부부에 대한 은혜를 잊지 못해 막걸리 잔 들고 산소를 찾는다고 한다. 최희영 작가도 취재를 진행하면서 저절로 존경심이 우러나왔다며 곧 홍 사장 부부 산소를 찾을 생각이라고 전했다. '양산박 삼치'를 운영하는 주인 이야기 한 대목이 인상에 남는다.
"처음에는 뭘 몰라서 삼치를 찜통 채반에 올려놓고 삶았다. 그 모습을 본 인하의집 부부가 5분 동안 웃더니, 걱정하지 말라며 삼치 손질하는 방법부터 삼치 튀기는 방법까지 손수 가르쳐 주셨다. 이미 식당 계약할 때와 식기 준비할 때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중략) 그 분들 덕에 이 거리에서 먹고 살았고, 아이들 공부도 다 시켰다. 그래서 인하의집 내외분은 절대로 잊지 못할 것이다. 지금도 가끔 생각날 때면 삼치 한 마리 굽고, 막걸리 한 병 꿰차고 그분들 산소에 찾아가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온다."- <삼치 거리 사람들> 중에서 (149~150쪽)막걸리 한 모금, 삼치 한 젓가락. 삼치 거리 이야기는 점점 깊어간다. '인하의 집'이 시작한 공동체는 그 어떤 소설보다도 재미있다. 소설가 지망생 최 작가는 글만 잘 쓰는 게 아니라 말도 맛깔 난다. 주인과 손님의 소통으로 승화된 거리. 그 현장에서 직접 듣는 걸쭉한 입담은 더욱 농밀해져갔다.
한국에 아직 이런 거리가 살아 있다니...- 오랜 역사와 전통이 이어진 이유는 뭘까요."한 집이 비면 한 집이 들어왔고 점점 새로운 집이 들어올 때마다 자연스레 공동체적인 문화가 생긴 겁니다. '어떤 이론이 있으니 그렇게 하자' 했다면 가능하지 않았겠지요. 50년의 역사가 지금의 20여 개의 가게 공동체를 만든 거예요."
- 삼치 거리의 공동 구매 방식과 단일 가격 제도도 참 흥미롭더라고요."여기 오신 주인들은 가난하고 바쁜 사람들이었어요. 구매하고 손질하고... 너무 바쁜 일이었지요. 함께 구매해서 나눠주고 손질 방법도 알려주고 하면서 공동 구매가 정착된 거예요. 원래는 홍 사장님이 1960년대 후반 연안 부두에서 버려지던 '바라쿠다'라는 생선을 가져다가 만든 것이지요. 가난한 손님들이 안주 없이 술만 마시니 안타까워 저렴한 안주를 고민하다 나온 아이디어예요. 처음엔 홍 사장님만 살 수 있어 직접 나눠주다가 그게 공동 구매의 시초가 됐지요."
- 그럼 삼치 거리에 삼치가 없는 거네요?"지금은 뉴질랜드 산 '바라쿠다'도 있지만 구매처 다양화 차원에서 국내산 삼치도 파는 가게가 있지요. 단일 가격 제도가 정착돼 있어 구매 가격 차이가 있지만 삼치 거리에 오는 사람은 사실 삼치만 먹으러 오는 게 아니거든요. 삼치하고 얽힌 이야기와 추억 때문에 오는 경우가 많아요. 오히려 국내산 삼치를 먹으면서 '맛이 바뀌었네'라고 하는 사람도 있어요."
- 나눔과 배려, 공동구매, 단일 가격을 구현한 거리... 상업성 가득한 우리나라에서 모범 사례로 퍼질 수 있겠습니다."그래서 이 거리가 가치가 있는 거겠지요. 삼치 거리는 호객 행위가 없어요. 그저 평안하고 소박해요. 우리나라 길거리 나가서 보세요. 손님 하나 더 끌려고 호객하고, 맛보다 외양이 화려하죠. 좁은 골목에서 남보다 더 많이 팔아야 하는 판국이잖아요. 스스로 자랑하지 않는 이 거리가 가치 있고 아름다운 이유이지요. 인천의 역사를 다 담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인천 사람들이 늘 변함 없이 찾아와 준 고마운 거리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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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서민들의 거리군요. "사람들이 되물어요. '뭐가 쓸 게 있어요?'라고. 고단한 삶을 사는 사람들, 부둣가에서 일하시는 분도 있고 공무원들도 있고, 술 좋아하시는 예술인도 있고, 직장을 잡지 못한 백수 아저씨들도 있고.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청년들도 있고. 여러 모습을 가진 인천 사람들이 오가는 참 편안한 거리예요. 다른 데서 상처 받고 오면 다 풀어줄 수 있는 넓은 사랑방이라고 보면 돼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버려진 구도심 동인천이지만 서민들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거리를 남겨둔 것이지요. 서민들의 삶과 삼치 거리의 정신은 딱 맞습니다."
우리는 인터뷰를 마치고 2차를 위해 원조 삼치의 맛을 그대로 간직한 가게 중 하나인 '양산박 삼치' 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김남수 사장 부부는 친구가 온 듯 최 작가를 맞아준다. 취재하며 정이 들었나 보다. 삼치 거리에 오면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좋은 성품이 살아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손님을 친구라고 생각하면 얼마나 반가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