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의 많은 문제들이 있고 그것들은 쉽게 해법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 오래 쌓인 폐혜, 적폐(積蔽)인 것이다. 그것을 적폐로 인식하는 사람도 그 정치, 경제적 위치와 여건에 따라 다르게 인지하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우리사회의 신뢰의 문제와 교육은 상당히 공감하는 문제이며 그 많은 대안에도 완벽한 것은 없어 보인다.
주유철환(周遊轍環)하며 그의 사상과 경륜을 펼쳐보려 애쓴 공자(孔子)님은 쓸쓸히 고향으로 돌아온다. 돌아오는 황하(黃河)가에서 목 놓아 울었다는 얘기는 그의 긴 신산의 삶과 자신의 이상과 철학을 결국 받아주지 않는 시대에 대한 깊은 회한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가 돌아와 더 멋지고 더 오래 인류에 더 강한 영향력을 미칠 교육에 힘을 쏟는 것은 다행이며 아름다운 것이었다. 어쩌면 긴 여행에서 좌절과 깊은 사색과 체험의 결과 높은 사상적 완성과 실천의 구체성을 담지한 농울한 사상을 축적하였을 것이라 생각된다.
공자님의 많은 사례와 사상을 담은 <논어>에서 믿음을 강조한 경우가 있다.
안연편(7장)에 '子貢問政 子曰 足食足兵 民信之矣. 子貢曰 必不得已而去 於斯三者 何先, 曰 去兵. 子貢曰 必不得已而去 於斯二者 何先, 曰 去食. 自古 皆有死 民無信不立.' 즉 (자공이 정사를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양식을 풍족히 하고, 兵을 풍족히 하면 백성들이 믿을 것이다."
자공이 말하였다.
"반드시 부득이 해서 버린다면 이 세가지 중에 무엇을 먼저 해야 합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兵을 버려야 한다."
자공이 말하였다.
"반드시 부득이 해서 버린다면 이 두 가지 중에 무엇을 먼저 해야 합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양식을 버려야 하니, 예로부터 사람은 누구나 다 죽음이 있거니와, 사람은 신의가 없으면 설 수 없는 것이다.")는 내용이 있다. 무신불립(無信不立)을 주장한다. 병력과 물질의 부요 보다 더 근본적으로 백성의 믿음, 그리고 백성끼리의 믿음이 중요함을 강조하신다. 세대간, 계층간, 세력간, 지역간 갈등이 메워지기 어려워 보이는 우리사회에 먼저 회복할 일을 믿음과 신뢰다. 믿음은 남에게 먼저 요구할 때 성립되기 어렵다. 내가 먼저 믿음을 주고 그것이 오래고 진정성이 있고 여러 상황과 무관하게 지속될 때 생겨나게 된다.
또한 자로편(9장)에 子適衛 염(염)有僕 子曰 庶矣哉. 염有曰 旣庶矣 又何加焉 曰 富之. 旣富矣 又何加焉 曰 敎之(공자께서 위나라에 가실 때에 염유가 수레를 몰았다. 공자께서 "백성들이 많기도 하구나."하셨다. 염유가 "이미 백성들이 많으면 또 무엇을 더하여야 합니까?"하고 묻자, "부유하게 해주어야 한다."고 하셨다. "이미 부유해지면 또 무엇을 더하여야 합니까?"하고 묻자, "가르쳐야 한다."하셨다.
교육(敎育, 영어: education)은 대한민국에서 국민의 권리이자 4대 의무 중 하나이다. 우리는 교육열이 높기도 세계으뜸이기도 하다. 교육, 즉 가르침이란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식이나 기술 등을 가르치고 배우는 활동이다. 교육은 개인이나 집단이 가진 지식, 기술, 기능, 가치관 등을 대상자에게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르치고 배우는 활동이다.
또는, 교육은 피교육자가 보다 나은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또한 그로 인하여 사회가 유지·발전될 수 있도록 피교육자가 갖고 있는 능력을 끌어내고, 새로운 지식이나 기능을 습득하게 하는 활동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넓은 의미로는, '개인의 정신, 성격, 능력의 형성에 영향을 주는 모든 행위와 경험'을 교육으로 보기도 한다.
교육은 한 개인을 가르치는 것이기도 하지만, 차세대와 관련된 전 백성들의 삶의 방식과 사고의 틀과 정치, 경제 행위를 가르친다. 좀 더 구체적으로 개인의 말과 행동의 바람직한 방향을 알려주고 조직과 사회의 바른 운영과 가치 추구를 제시한다. 사람이 동물과 다른 것은 배우고 익히는 교육에서 찾는 것은 당연하다.
인간은 교육을 통해 다음 세대에게 지식과 문화를 전수하고 발전시켜 왔다. 교육 활동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교사와 같은 가르치는 사람, 학생과 같은 피교육자, 그리고 교과서와 같은 교육할 내용이 있어야 한다.
공자는 바른 정신과 가치 및 행위의 규범들을 가르치고 이것이 온 사회에 편만해질 때 행복한 사회가 올 수 있음을 지적한다.
갈등과 양극화가 구조화되어 가는 우리 사회와 특히 남북한 사회에 상호신뢰를 강조하고 내가 먼저 신뢰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바른 가치와 행동이 세대간, 계층간, 지역간 차이를 뛰어넘어 제시되고 실현될 때, 무엇보다 지도층이 솔선할 때 더 나는 복지사회를 우리는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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