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지휘자들은 이탈리아 오페라극장의 전속 상임지휘자 수락을 꺼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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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일자로 이뤄진 로마 오페라극장 측의 단원 무더기 해임사태로 이탈리아가 술렁인다. 극장 측과 로마시장은 그간 잦은 파업과 농성으로 물의를 일으켰다며 단원 460명 중 182명을 전격 해고하고 278명만 잔류시켰다. 이는 이탈리아 문화 역사상 유례가 없는 조치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9월 22일자로 전격사임을 발표해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세계적 지휘자 리카르도 무티로 인해 로마극장의 문제가 세상에 드러나면서부터다. 이탈리아 언론들은 이번 사건으로 이탈리아가 전 세계에 대망신을 당했다며 자괴감에 빠졌다. 로마 오페라극장장인 카를로 후오르테스는 '마른하늘의 날벼락'이라는 말로 충격을 표현했고, 이냐찌오 마리노 로마시장은 이 소식을 이탈리아 문화성장관과 대통령에 긴급보고를 올렸을 정도다.
리카르도 무티는 2010년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에 취임했고, 2011년 로마 오페라극장 명예음악감독 종신직에 임명됐다. 그러나 최근 극장 측 프로그램인 베르디의 <아이다>,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관련 예산 논쟁, 파업, 내부 갈등이 극심화 되면서 사임을 결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무티는 사임 발표문에서 "극도의 현재 상황 하에서도 최선을 다하고자 인내했으나 도저히 정상적인 평온함을 유지할 수 없는 지경이기에 오랜 심사숙고 끝에 이 같은 결심을 했고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심경을 밝혔다. 그는 '극도의 현재 상황'과 관련해 △리허설이나 연습 도중에도 수시로 그에게 참석요청을 통보해오는 크고 작은 노조 회의들 △ 수시로 선포되는 파업 △대안을 찾을 수 없을 만큼 가장 마지막 순간에 행해지는 연주거부 행위 등을 열거했다.
무티에 따르면, 지난 6월 오페라단을 이끌고 일본순회공연에서 <마농 레스코>를 준비할 당시, 리허설 및 공연시작 직전 수석 바이올리니스트 등 오페라단 30여명의 집단반발과 연주거부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흔들리는 이탈리아 오페라 극장... 왜? 이탈리아 극장노조가 도대체 어떻기에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이탈리아 오페라극장들의 극장장, 음악감독, 지휘자들은 작품은 물론 섭외, 캐스팅, 연주단원 선발까지 노조회의 동의안을 받아야만 진행할 수 있다. 예전에는 단원 선발 또한 노조 측 인맥이나 소개에 의해 이뤄져왔다. 1991년 남부지방 바리의 페트루쩰리 오페라극장과 1996년 북부지방 베네치아의 라 페니체 극장 대화재 사건의 경우, 강경노조단체원들의 임금체불에 대항 보복성 방화로 밝혀져 충격을 던져주기도 했다.
최근 어느 한국영화의 경우도 애초 영화의 사운드뮤직 녹음 연주를 맡기로 했던 현지 오케스트라단 측 노조의 석연치 않은 비협조로 현지녹음을 취소해야 했다. 때문에 세계적 지휘자들은 이탈리아 오페라극장의 전속 상임지휘자 수락을 꺼린다. 2005년 독일순회공연 리허설 도중 심장발작으로 숨진 스위스 지휘자 마르첼로 비오티의 사망 역시 노조의 파업분쟁 및 알력 때문이라는 설이 많다. 또 언론이 밝혀낸 그간의 극장 문제점들 중에는 지휘자 무티에 대한 복수, 협박 등도 포함돼 있다.
이냐찌오 마리노 로마시장과 카를로 후오르테스 로마 오페라극장 극장장은 무더기 해임조치 이후 외주제작을 늘리고 프리랜서 음악인들과 프로그램당 계약하는 방식으로 운영방법을 바꾸겠다고 발표했다. 이 같은 외주제작 조치는 앞으로 모든 이탈리아 오페라극장들로 확산될 전망이다. 다리오 프란체스키니 문화성 장관은 발표문을 통해 "이탈리아의 오페라극장 문을 닫는 극도의 상황까지 가선 안 되겠지만 예술본연의 일에 전념키 힘들만큼의 혼란을 야기하는 파업과 분쟁에는 단호히 대처해나갈 것"임을 알렸다.
이번 로마 오페라극장 문제가 불거졌을 때 현지 언론들과 여론은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한결같이 '차라리 극장을 닫아버려라' '다들 집으로 보내고 다시 시작하라'는 등의 논평을 쏟아냈다.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공정 보도로 신뢰를 얻는 <라 스탐파>조차도 "관객을 수시로 볼모로 잡고 협상을 벌이는 음악인들의 파업은 공공정신이나 예술혼이 말살된 이익집단의 흥정일 뿐"이라며, "이젠 과감히 극장 문을 닫고 반성과 자숙의 시간을 충분히 가진 뒤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보도했다.
오페라극장 노조단체들 내부도 혼란스럽다. 그러나 로렐라 피에렐리 이탈리아 공연노조 대표는 이탈리아 오페라극장의 최대 문제는 "오케스트라들은 페라리 자동차처럼 실력이 뛰어나지만 다른 여건 및 행정 등이 낙후해 빚어지는 문제"라며 극장 행정가들을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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