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명 무더기 해임...흔들리는 이탈리아 오페라 극장

[해외리포트] 노조 문제 부각됐지만, 재정난·단원고용법·관객피해 누적도 문제

등록 2014.10.27 11:43수정 2014.10.27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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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적 지휘자들은 이탈리아 오페라극장의 전속 상임지휘자 수락을 꺼린다.
세계적 지휘자들은 이탈리아 오페라극장의 전속 상임지휘자 수락을 꺼린다.sxc

'Via Tutti!' (다들 가!)

10월 2일자로 이뤄진 로마 오페라극장 측의 단원 무더기 해임사태로 이탈리아가 술렁인다. 극장 측과 로마시장은 그간 잦은 파업과 농성으로 물의를 일으켰다며 단원 460명 중 182명을 전격 해고하고 278명만 잔류시켰다. 이는 이탈리아 문화 역사상 유례가 없는 조치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9월 22일자로 전격사임을 발표해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세계적 지휘자 리카르도 무티로 인해 로마극장의 문제가 세상에 드러나면서부터다. 이탈리아 언론들은 이번 사건으로 이탈리아가 전 세계에 대망신을 당했다며 자괴감에 빠졌다. 로마 오페라극장장인 카를로 후오르테스는 '마른하늘의 날벼락'이라는 말로 충격을 표현했고, 이냐찌오 마리노 로마시장은 이 소식을 이탈리아 문화성장관과 대통령에 긴급보고를 올렸을 정도다.

리카르도 무티는 2010년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에 취임했고, 2011년 로마 오페라극장 명예음악감독 종신직에 임명됐다. 그러나 최근 극장 측 프로그램인 베르디의 <아이다>,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관련 예산 논쟁, 파업, 내부 갈등이 극심화 되면서 사임을 결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무티는 사임 발표문에서 "극도의 현재 상황 하에서도 최선을 다하고자 인내했으나 도저히 정상적인 평온함을 유지할 수 없는 지경이기에 오랜 심사숙고 끝에 이 같은 결심을 했고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심경을 밝혔다. 그는 '극도의 현재 상황'과 관련해 △리허설이나 연습 도중에도 수시로 그에게 참석요청을 통보해오는 크고 작은 노조 회의들 △ 수시로 선포되는 파업 △대안을 찾을 수 없을 만큼 가장 마지막 순간에 행해지는 연주거부 행위 등을 열거했다.

무티에 따르면, 지난 6월 오페라단을 이끌고 일본순회공연에서 <마농 레스코>를 준비할 당시, 리허설 및 공연시작 직전 수석 바이올리니스트 등 오페라단 30여명의 집단반발과 연주거부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흔들리는 이탈리아 오페라 극장... 왜?


이탈리아 극장노조가 도대체 어떻기에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이탈리아 오페라극장들의 극장장, 음악감독, 지휘자들은 작품은 물론 섭외, 캐스팅, 연주단원 선발까지 노조회의 동의안을 받아야만 진행할 수 있다. 예전에는 단원 선발 또한 노조 측 인맥이나 소개에 의해 이뤄져왔다. 1991년 남부지방 바리의 페트루쩰리 오페라극장과 1996년 북부지방 베네치아의 라 페니체 극장 대화재 사건의 경우, 강경노조단체원들의 임금체불에 대항 보복성 방화로 밝혀져 충격을 던져주기도 했다.

최근 어느 한국영화의 경우도 애초 영화의 사운드뮤직 녹음 연주를 맡기로 했던 현지 오케스트라단 측 노조의 석연치 않은 비협조로 현지녹음을 취소해야 했다. 때문에 세계적 지휘자들은 이탈리아 오페라극장의 전속 상임지휘자 수락을 꺼린다. 2005년 독일순회공연 리허설 도중 심장발작으로 숨진 스위스 지휘자 마르첼로 비오티의 사망 역시 노조의 파업분쟁 및 알력 때문이라는 설이 많다. 또 언론이 밝혀낸 그간의 극장 문제점들 중에는 지휘자 무티에 대한 복수, 협박 등도 포함돼 있다.


이냐찌오 마리노 로마시장과 카를로 후오르테스 로마 오페라극장 극장장은 무더기 해임조치 이후 외주제작을 늘리고 프리랜서 음악인들과 프로그램당 계약하는 방식으로 운영방법을 바꾸겠다고 발표했다. 이 같은 외주제작 조치는 앞으로 모든 이탈리아 오페라극장들로 확산될 전망이다. 다리오 프란체스키니 문화성 장관은 발표문을 통해 "이탈리아의 오페라극장 문을 닫는 극도의 상황까지 가선 안 되겠지만 예술본연의 일에 전념키 힘들만큼의 혼란을 야기하는 파업과 분쟁에는 단호히 대처해나갈 것"임을 알렸다.

이번 로마 오페라극장 문제가 불거졌을 때 현지 언론들과 여론은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한결같이 '차라리 극장을 닫아버려라' '다들 집으로 보내고 다시 시작하라'는 등의 논평을 쏟아냈다.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공정 보도로 신뢰를 얻는 <라 스탐파>조차도 "관객을 수시로 볼모로 잡고 협상을 벌이는 음악인들의 파업은 공공정신이나 예술혼이 말살된 이익집단의 흥정일 뿐"이라며, "이젠 과감히 극장 문을 닫고 반성과 자숙의 시간을 충분히 가진 뒤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보도했다.

오페라극장 노조단체들 내부도 혼란스럽다. 그러나 로렐라 피에렐리 이탈리아 공연노조 대표는 이탈리아 오페라극장의 최대 문제는 "오케스트라들은 페라리 자동차처럼 실력이 뛰어나지만 다른 여건 및 행정 등이 낙후해 빚어지는 문제"라며 극장 행정가들을 비난했다.

재정난, 단원 고용법, 관객 피해누적

 최근 단행된 로마 오페라극장 무더기 해임 사태로 이탈리아가 술렁이고 있다.
최근 단행된 로마 오페라극장 무더기 해임 사태로 이탈리아가 술렁이고 있다. sxc

노조문제만 부각되긴 했지만, 사실 이탈리아의 현 사태는 오페라극장의 누적된 문제들에서 비롯됐다.

첫째, 재정난이다.

경제위기로 정부 측에서 예술 지원금을 삭감하자 극장 운영이 어려워지고, 공연도 자주 무산되면서 정부지원금에 의존해온 남부 극장들에서 생계형 파업이 늘었다. 반면, 상대적으로 부유한 북부지방의 경우 후원기업들도 많고 공연도 넘쳐난다.

이 와중에 이탈리아 정부는 2013년, 2014년 1분기까지 매출액 균형을 이뤄내지 못하는 오페라극장에는 정부지원을 끊겠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같은 해 14개 상위 오페라극장들에게 총 1억 8300만 유로의 지원금을 지출했다. 이는 오페라계 전체 매출의 35%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이로서 14개 극장 외 다른 극장들의 적자는 더 심화됐다. 파업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정부와 행정기관이 문화말살정책을 벌인다고 성토하는 이유다.

지난 7월 <월스트리트저널>도 이탈리아 오페라가 급격히 위상을 잃고 있다, 중남부 극장들은 심각한 재정위기에 놓여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평론가인 엔리코 보티오 델 레페띠에로에 따르면, 현재 이탈리아에서 임금체불(각종 무대장치및 설비, 의상, 방송 실황중계료 등) 없이 공연을 할 수 있는 오페라극장은 베네치아의 라 페니체극장, 토리노의 레지오극장, 밀라노의 라 스칼라극장 등 단 세 곳뿐이다. 그는 매출액으로 흥행을 누리는 극장은 베네치아와 토리노 두 도시일 뿐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둘째는 이탈리아 극장들의 단원 고용법이다.

이탈리아는 다른 나라처럼 작품별-시즌별 단·장기 프리랜서계약이 아닌 고정급여를 받는 고용 방식이다. 그런데 이 제도가 해외의 유능한 프리랜서 음악인들의 영입을 막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단원고용법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극장의 행정이나 기획 매니저먼트 등 전문적 지식과 노하우가 없는 오케스트라 노조위원들이 협상권을 위임받아 온갖 결정에 태클을 거는 일을 막아야 한다고 말한다.

노조 측은 무더기 해임조치 발표 이후 언론을 통해 "부당하다"고 주장하면서 법적 대응에 들어가겠다고 밝혔다. 노조는 무능한 극장장과 극장행정가들이 더 문제라고 말한다. 특히 전 로마 오페라극장 극장장인 카스텔로 데 마르티노가 대규모 빚을 남김으로써 극장 긴축정책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또 "극장행정가들 역시 시청 공무원처럼 전국적으로 끼리끼리 돌아가면서 책상바꿈하지 말고 공개 임용으로 뽑아 질 높은 작품을 상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셋째는 관객피해 누적이다.

이탈리아의 이런 상황 때문에 수시로 공연이 무산돼 환불 소동이 일어나거나 공연 중 예상치 못한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한다. 결국 오페라계의 문제가 관객들의 피해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중북부지방 극장 노조에 등 돌린 관객들

2007년 정명훈 지휘의 브루크너 7번 교향곡이 오케스트라단에 의해 연주될 때의 일이다. 정명훈의 지휘에 대한 기대로 객석은 물론 입석까지 일찌감치 매진됐다. 그러나 공연 하루 전 협상이 결렬된 오케스트라단은 공연 당일 연주복 착용을 거부하고 청바지, 운동화, 티셔츠, 슬리퍼 차림으로 무대에 올랐다. 당시 협상 안건은 오케스트라 노조 가입단원들로 구성된 자율적 오케스트라단체의 국내외 연주활동과 명의사용권, 해당 공연애 대한 극장 및 기업의 후원 요구였고, 결국 그 후 노조는 이것들을 모두 얻어냈다.

반면 관객들은 휘파람을 불며 단원들을 야유했다. 생계형 파업을 할 수밖에 없는 남부지방 음악인들이 있는 현실에서 이익쟁탈권을 위해 강경파업을 불사하는 중북부지방 극장 노조에 대해 관객은 물론 같은 단원들조차도 외면키 시작했다. 노조에서 탈퇴한 각 극장들의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같은 뜻을 지닌 다른 극장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연합하여 지방연합 오케스트라를 구성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라 스탐파>에 실린 논평은 이탈리아 여론이 오페라계에 무엇을 주문하는지 생각해보게 한다.

"Tutti a casa! Chiuda l'Opera di Roma. E salvi l'opera in Italia!"
(전부들 집으로 가라! 로마 오페라극장 문을 닫아라. 그리고 이탈리아오페라를 살려라!)
#이탈리아 오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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