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드림' 향해 달리는 캄보디아 젊은이들

▲ 한국어능력평가시험을 보기 위해 몰려든 수험생들 이른 아침부터 장대비가 쏟아졌지만, 수천명에 이르는 캄보디아 젊은이들이 코리안드림을 이루기 위해 한국어시험장 앞으로 몰려들었다. ⓒ 박정연

"난 꿈이 있어요! (I have a dream)"

마틴 루터킹 목사의 유명한 명연설 제목도 아니고, 아바의 명곡의 제목은 더 더욱 아니다.

왜 굳이 한국에 가려냐 묻자, 한 20대 캄보디아 젊은이가 대답한 말이다.

고용허가제 한국어능력평가시험(EPS-KOPIK)이 치러진 지난 25일(현지시각) 수도 프놈펜 시험장은 이른 아침부터 굵은 장대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새벽부터 삼삼오오 모여든 수험생들은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일부는 우비도 쓰지 않은 채 시험장에 들어가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오전 8시 무렵 마침내 시험장 문이 열리자, 수험표와 신분증을 든 수험생들이 쏟아지듯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중엔 '라타'라고 불리는 21살 젊은 여성도 있었다. 비에 온몸이 흠뻑 젖은 그녀는 기자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먼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녀는 '라따나끼리'라 불리는 먼 시골에서 올라왔다고 했다. 차로 10시간이 넘은 곳이다. 집이 멀어 전날 도착해서 시험장 근처에 있는 친척집에서 잠을 잤다고 말했다.

한국어 공부를 6개월 정도 했다지만, 솔직히 기본적인 의사소통도 힘들 정도로 그녀의 한국어는 몹시 서툴렀다. 그렇지만, 코리안 드림을 이루려는 열정만큼은 대단해 보였다. "시험 합격할 자신 있냐?"는 질문에 "네, 자신 있어요"라고 대답하고는 환한 미소를 보이며 시험장으로 향해 달려갔다.

수험생들이 지문검색을 통한 신원확인을 마치고 모두 시험장 안으로 들어갔을 무렵, 여전히 학교 문밖에서 서성이는 중년여성들이 여럿 눈에 들어왔다. 수험생의 부모 등 가족들로 짐작되었다. 남루한 옷차림의 한 중년여성은 "19살 난 딸이 시험을 잘 봤으면 하는 마음에 쫒아왔다"고 말했다.

이 여성은 장대비가 그칠 때까지 오전 내내 두 손을 모은 채 문밖에서 간절히 기도했다. 우리나라 대학수능시험장을 연상케 하는 모습이었다.

▲ 고용허가제 한국어능력평가시험장의 모습 코리안 드림을 이루려는 캄보디아 젊은이들이 긴장된 모습으로 시험을 치루고 있다. ⓒ 박정연

시험장 밖에는 또 다른 특이한 진풍경이 펼쳐졌다. 스마트폰 등 통신장비를 대신 맡아주는 장사가 성업중이었다. 부정행위 방지를 위해 수험장 내 핸드폰, PDA 등 전자통신장비 반입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생긴 신종 비즈니스(?)였던 셈이다. 보관료는 한 개당 500리엘, 우리 돈으로 대략 125원이었다.

건물 외벽에는 작년도 부정 응시자들의 사진과 인적사항이 적힌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부정행위 적발자들은 3년간 재응시가 불가하다. 부정응시를 막는다는 취지지만, 혹시 인권침해의 논란이 일지 않을까 조금은 염려됐다.

그렇지만, 정작 현지인들은 전혀 개의치 않은 표정들이었다. 이에 대해 한 현지인 중년남성은 "이런 노력이 오히려 공정하고 투명한 시험이라는 믿음을 갖게 해준다"고까지 대답했다.

시험 시간을 불과 30분 앞두고 픽 소폰 캄보디아 해외인력송출청장이 수험장소로 정해진 일부 교실을 방문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일일이 응시자들의 이름과 고향까지 물으며 친근감을 표시했다. 그는 시험에 응시한 젊은이들에게 시험을 잘 봐서 모두 한국에 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솔직히, 다소 상투적이다 못해 지루하기까지 한 격려인사였고, 당장
시험에만 온통 정신이 쏠려있던 대부분의 수험생들은 그저 의례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그는 끝인사로 "여러분 뿐만 아니라 바로 여러분 가족을 위한 일이다. 돈을 많이 벌고 성공해서 고국에 사는 가족들도 잘 살게 해주고, 국가를 위해서 열심히 일해 달라. "고 간곡히 부탁했다. 청장의 마지막 이 말 한마디가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던 수험생들의 마음을 더욱 숙연하게 만들었다. 그 순간 만큼은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이 단순한 격려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가슴속으로 이해한다는 표정이었다.

드디어 시험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한국인과 캄보디아인들로 구성된 백 여명 남짓한 시험감독관들이 시험지를 든 채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교실에 들어가 간단한 신원 검사를 마친 후 시험지를 나눠줬다. 수험생들에게는 가장 긴장되고 떨리는 순간이었다. 시험지를 받아든 수험생들의 표정에서 미세한 떨림이 느껴질 정도였다.

지난 25, 26일(현지시각) 양일간 한국산업인력공단(HRD) 주관으로 수도 프놈펜 등 캄보디아 주요도시에서 치러진 한국어능력평가시험장의 열기는 동남아 날씨만큼이나 뜨거웠다. 더욱이 올해 치러진 고용허가제 한국어능력평가시험(EPS-TOPIK)에는 무려 5만1003명이 응시했다.

이번 시험은 80점(200점 만점) 이상 득점자 중 고득점 순으로 업종별 합격인원별로 총 4000명을 선발할 예정이라고 박동준 산업인력공단 지사장은 밝혔다. 작년에 치러진 시험 응시자수 3만8829명에 비교해 1만 명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경쟁률을 대충 계산해보니, 대략 12대 1이 훨씬 넘었다. 그동안 치러진 시험 중 가장 높은 경쟁률이라고 한 관계자가 귀띔해주었다.

한국에서 일하고 돌아온 캄보디아 노동자들 중에는 번듯한 집을 사고, 평생 농사짓고 살 만한 땅을 산 사람도 많다. 요즘은 한국에 가면 돈을 번다는 입소문 탓에 한국어를 배우려는 젊은이들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그 덕에 프놈펜 시내에 한국어학원 수도 백여개 이상이 성업할 정도다.

한국에선 외국인노동자들에 대한 인권침해문제가 사회문제로 떠오른 게 현실이지만, 적어도 캄보디아 현지에서는 이를 알면서도 크게 문제로 여기지는 않는 분위기다. 그런 일을 미리 걱정해서 코리안드림을 포기하는 젊은이들은 더 더욱 없다. 어쩌면 당장의 배고픔과 가난을 극복하는 길을 찾는 게 이들에게는 당장 해결해야 할 현실적인 문제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갈수록 경쟁률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장대비가 내리는 가운데에서도 코리안 드림을 이루려는 캄보디아 젊은이들의 뜨거운 열기로 후끈거린 지난 2일간의 시간이었다. 아무쪼록 그들의 꿈이 이루지길 소망해본다. "I have a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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