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신해철이 27일 오후 8시 19분 세상을 떠났다. 서울아산병원 담당의료진은 신해철의 사인을 저산소 허혈성 뇌손상으로 공식 발표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28일 오후 1시부터 마련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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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8년 12월, 신해철은 한 해 전 <무릎팍도사>에 나와 다시는 출연하지 않겠다던 MBC <100분토론> 400회 특집의 패널로 앉아 있었다. 지금은 JTBC 보도부문 사장이 된 손석희 앵커가 고 최진실의 자살에 대해 묻자, "부와 명성이 우리에게 행복을 보장해 주는 필요충분조건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알려준 사건"이라 명쾌하게 진단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논객 출연시 달린 수많은 악플에 대해 "욕을 먹으면 오래 산다던데, 그럼 나는 불로불사 수준일 것"이라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그 악플들도, 지난주부터 사경을 헤맸던 신해철을 지켜주진 못한 듯하다.
자기 인생에서 단 한 번이라도 신해철을 알현한 이라면 그를 단순히 호불호가 갈리는 논객으로 치부하지 않고 '불멸의 음악인'으로 받아들이고 있었을 것이다.
'마왕' 신해철이 우리 곁을 떠났다. 사망시각은 27일 오후 8시 19분, 사망원인은 저산소 허혈성 뇌손상. 지난 17일 장협착증 수술을 받은 뒤 20일 이후 입퇴원을 반복하다 22일 치료를 받던 중 심장이 멈췄지만, 심폐소생술을 받고 5일여 동안 세상과 연결된 끈을 잡고 있었던 신해철. 46세 '청년' 음악가는 그렇게 황망하게 떠났다.
대한민국 전체가 애도 물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SNS를 필두로 대중문화계를 넘어 정치인들까지 애도사를 보내고 있다. 그렇게 시대를 풍미했던 음악인의 때이른 죽음이 가져다 준 충격은 쉬이 잦아들지 않을 것 같아 보인다. 그런 우리에게 신해철이 지난 대선 당시 남긴 말은 도리어 우리를 위로해 주는 듯하다. 대한민국 음악사의 한복판에서 싸웠으며, 한국사회란 격전장에서 논객이란 이름으로 싸웠던 그가 말이다.
"응석 부리지 마세요. 힘든 밤을 보낼 기회조차 우리가 만든 게 아니고 목숨 걸고 싸운 이들이 남겨준 겁니다."무한궤도, 아이돌, <넥스트>, 그의 이름은 아티스트 신해철 21살, <그대에게>로 대학가요제 대상을 수상했던 '무한궤도'의 리드싱어 신해철의 나이였다. 이후 <우리 앞에 생이 끝나 갈 때>를 히트시켰던 '무한궤도'를 뒤로 하고, 솔로 활동을 시작한 신해철은 자타가 공인하는 아이돌이었다. <슬픈 표정하지 말아요>는 소녀들의 가슴을 울렸고, 황금시간대 라디오 DJ를 맡았으며, 그의 모 운동화 잡지 광고는 지금도 '레전드'로 남아있다.
아이돌이라고는 하지만, 당시로서는 혁신적이고 선진적인 음악인지라 대중과 평단에서 열광을 이끌어 내기에 충분했다. 외사촌 서태지의 <난 알아요> 이전 영어랩을 삽입한 <안녕>이 있었고, <재즈카페>와 <내 마음 깊은 곳의 너>가 수록된 2집 <Myself>는 지금도 명반으로 평가를 받는다. 멋모르던 '초딩'부터 20대까지, 그러니까 지금의 '3040세대'에게 신해철의 솔로음악들은 '신세대'의 표상과도 같았다.
그리고 <N.EX.T>(이하 <넥스트>). 비틀즈, 레드제플린 등 록을 기반으로 한 팝 음악을 자연스레 음악적 베이스로 깔았던 그가 밴드로 회귀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을지 모른다. <넥스트>는 별다른 TV 출연 없이도 싱글 <Here, I Stand For You> 같은 대중적인 히트곡을 양산하며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1998년 그가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기까지 4장의 정규 앨범을 낸 <넥스트>는 분명 1990년대 한국 주류 록음악을 이끈 한 축이었다.
21세기 들어 그는 테크노 음악을 기반으로 한 <크롬>, 3인조 밴드 <비트겐슈타인> 등으로 음악적인 실험을 계속해 왔다. 그 와중에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정글스토리> <세기말> 등의 OST를 만들기도 했으며, 윤상과 <노땐스> 앨범을 내고, 선배 들국화나 김수철의 트리뷰트 앨범에 참여하는 등 그야말로 왕성하고 정력적인 활동을 이어간 장본인이었다.
동시대 한국사회를 온 몸으로 통과해온 리버럴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