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복미사 집전하는 교황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8월 1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프란시스코 교황성하께
저는 세월호참사로 희생당한 예은이 아빠 유경근입니다. 현재 세월호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 대변인을 맡고 있습니다. 저희 모든 피해자 가족들을 대신해 교황성하께 편지를 드리게 되어 영광입니다.
지난 8월, 교황성하께서 한국을 방문하셔서 저희 세월호 피해가족들을 위로해 주시고, 희생자와 실종자들을 위해 기도와 말씀을 해 주신데 대해 저희 모든 피해자 가족들은 너무나 큰 감동을 받았으며, 지금도 그 감동의 힘으로 하루하루를 꿋꿋하게 버티고 있습니다.
특히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는 교황성하의 말씀은 지금도 대한민국 모든 국민들의 마음속에 생생하게 남아 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유민이 아빠 김영오씨의 손을 맞잡아주신 교황성하의 따뜻한 손길이 여전히 저희 피해자 가족들은 물론 대한민국 국민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계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토록 뜨겁고 진실한 교황성하의 관심과 사랑에 저희 피해자 가족들과 대한민국 국민은 물론 지금 하느님 곁에서 안식을 취하고 있을, 희생당한 저희 아이들도 감사드리고 있을 것입니다.
아이들의 죽음을 헛되게 만들지 않는 유일한 길 저희 피해자 가족들이 바라는 것은 세월호참사의 철저한 진상규명과 근본적이고 지속적인 대책마련, 이를 통해 다시는 이러한 참사가 반복되지 않는 안전한 사회를 이루는 것뿐입니다. 이것만이 영문도 모른 채 억울하고 외롭게 죽어간 저희 아이들의 죽음을 헛되게 만들지 않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진상조사위원회 내에 특별검사를 배치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세월호 특별법을 청원하였습니다. 이 특별법을 청원하기 위해 지금까지 530여만 명의 국민들이 서명을 해주시기도 하였습니다. 교황성하의 말씀과 기도와 위로의 손길에 큰 감동을 받은 저희 피해자 가족들과 국민들은 교황성하께서 바티칸으로 돌아가신 후 특별법 제정과 진상규명활동이 매우 순조롭게 이루어질 것으로 확신하였습니다.
그러나 교황성하께 드릴 이 편지를 쓰고 있는 지금(10월 24일)까지도 세월호 특별법은 만들어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정부와 여당이 독립성이 생명인 진상조사위원회와 특별검사에게 자신들의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행사하려 하는 등 오히려 그동안 논의해온 내용보다 후퇴한 법안이 될 가능성만 높아지고 있습니다. 대통령은 물론 모든 정치인들이 철저한 진상규명을 하겠다고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참사의 진상규명은커녕 진상규명을 위한 첫걸음조차 떼지 못했습니다.
언제나 저희 곁에 있는 천주교는 교회마다 추모 미사를 하고 서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바람은 매일 좌절되고 있습니다. 이러다가 지난 6개월 넘게 겨우겨우 버텨온 저희들이 혹시라도 극단적인 판단과 행동을 하지는 않을지 너무나 걱정스러운 상황입니다.
가장 두려운 것은 엄습해오는 외로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