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손편지 쓰다가 '일베' 학생들에 '깜놀'"

[인터뷰] 고등학생들과 함께 편지 쓰는 황기철 선생님 "국민 가슴에 구멍 하나씩"

등록 2014.11.07 15:27수정 2014.11.07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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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200일이 지났다. 아무래도 세월호 참사에 대한 기억과 관심이 줄어들 수밖에 시간. 하지만 부산의 한 고등학교 학생들은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기 위해 유가족에게 손편지를 쓰고 있다. 손편지 쓰기는 이 학교 황기철(53, 남) 선생님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교직 생활 27년째로, 진로교사로 근무 중인 황 선생님은 세월호 참사 200일을 하루 앞둔 10월 31일부터 수업에 들어갈 때마다 노란색 엽서를 준비한다. 학생들에게 세월호 유가족에게 손편지를 써보라고 제안하는 것이다. 교실마다 반응은 조금씩 다르지만 많은 학생들이 정성껏 써주고 있다고 한다. 황 선생님이 가르치는 이 학교 1학년 학생 수는 모두 300여 명. 황 선생님은 7일까지 학생들이 쓴 손편지를 모아 유가족들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황 선생님은 학생들이 쓴 손편지를 보고 "좋은 글들이 너무 많아 마음이 짠하다"며 "유가족에게 힘이 되었으면 한다"고 기대했다. 지난 4일 밤 부산 화명동에서 황 선생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8월 초 광주 망월동에서 진도 팽목항까지 일주일간 도보순례를 한 황기철 선생님
8월 초 광주 망월동에서 진도 팽목항까지 일주일간 도보순례를 한 황기철 선생님황기철

- 손편지 쓰기는 지금까지 얼마나 진행됐나요?
"지난주 금요일(10월 31일)부터 시작했습니다. 1학년 열두 반에 수업을 들어가는데 한 반에서 보통 25명 정도가 써냈습니다. 이제 세 반 했으니까 100통 정도 됩니다. 학예전 준비한다고 빠진 학생도 있고 해서 이번주(7일)까지 다 모아보려고 합니다."

- 모인 손편지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두 가지 방법을 생각하고 있어요. 하나는 (직접) 안산에 가서 전달하는 것, 또 하나는 택배로 부치는 것. 가능하면 안산에 가서 직접 전달하는 방법을 계획하고 있는데, 토요일(8일) 아니면 일요일(9일) 가봐야 확실히 정해질 것 같아요."

- 특별히 기억나는 학생이 있으면 말씀해 주시죠.
"애들이 '선생님이 이거 다 봐요?'라고 묻더니 '선생님 이거 다 봐야 돼요. (학생들 중에) 일베(일간베스트 회원)들이 있어요'라고 하더라고요. 정말 한 반에는 (유가족을 향해) 비아냥거리거나 장난스럽게 쓰는 애들이 있었죠. 쓰기 싫으면 안 쓰면 되지, 유가족을 조롱하거나 장난으로 편지를 쓰는 것은 아니라고 보는데…. 실제로 안 쓰는 애들도 있거든요.

그래도 4월 16일부터 제가 수업 중에 어떤 식으로든 (세월호 참사에 대해) 언급을 줄곧 해 왔으니까 처음보다 많이 달라졌어요. 선생님이 이야기하고 안 하고, 천지 차이거든요. 물론 저한테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수업이나 하지 그런 이야기 뭐하러 하는데?' 하고 생각하는 학생도 안 있겠습니까? 하지만 학생들은 선생님이 가르치는 지식보다 선생님의 행동을 보고 배우는 게 더 영향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세월호 특별법이 여야합의로 통과됐습니다. 황 선생님은 '화명촛불 지킴이'로 불리시는데요,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한 촛불시위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촛불을 드는 것은 문제가 아닌데, 시민들에게 어떻게 잊혀지지 않게 할 것인가, 좀 더 유쾌한 방식이 없을까, 고민 중입니다."

"한두 사람 죽음은 비극으로 못 느끼는 게 가장 큰 비극"


 8월 초 광주 망월동에서 진도 팽목항까지 일주일간 도보순례를 한 황기철 선생님
8월 초 광주 망월동에서 진도 팽목항까지 일주일간 도보순례를 한 황기철 선생님황기철

- 학생들에게 특별히 '손편지'를 제안하게 된 계기가 있습니까?
"교사로서 생각할 때 안산의 학생들이 내 학생이 될 수도 있고 내 학생들이 안산의 학생들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 학생들이 희생됐다는 것은) 견디기 힘든 괴로움이었습니다. 유가족들에게는 자식과 같은 또래 아이들의 엽서가 큰 위로가 될 것라고 생각했죠. 어른들의 백 마디보다 또래 학생들의 한 마디가 더 큰 위로가 될 수 있다고요.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면 당연한 것 아니겠어요? 자식 또래의 학생들이 '힘내세요' 이 한 마디 하는 게 부모 입장에서 더 큰 힘이 안 되겠습니까. 쓰기 싫은 학생들은 안 써도, 쓰려면 5분 10분이면 다 쓰는데, 우리 학생들이 해줄 거라 믿고 있습니다!"

- 노란색 엽서는 어떻게 구했나요?
"전교조에 전화해 보니 엽서가 있더라고요. 화명촛불에 500장, 우리 학생들 300장, 그렇게 준비했죠."

-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서 지금 학교 분위기는 어떤가요? 학교에 세월호 배지나 리본을 달고 있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 됩니까?
"없죠! 제가 일부러 (배지와 리본을) 사 가지고 나눠줬는데 안 달더라고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그렇다고 봐야죠. 별것 아닌 것 같아도 배지 달고 겉으로 드러내는 데 저어하는 게 있죠. (세월호 시국선언에 대해) 교육부에서 징계도 하고 경찰이 카톡도 검열하니 교사들도 자기검열을 하고 들어가는 거죠. 지금 풍토가 희한합니다. (기자님에게) 인터뷰 요청 전화 받았을 때도, 하도 세상이 뒤숭숭하니까 (나중에 문제가 될까봐) 걱정이 되더라고요."

-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 있으면 해주시죠.
"이건(손편지 쓰기) 사실 아무것도 아닌 일이죠. 교육부, 교육청에서 해줘야 하는 일이죠. 학생들이 당한 일인데 교육부나 교육청에서 위로해 줘야 하는 거죠. 옛날에 위문편지 쓰고 그렇게 안 했습니까. 그런 차원에서 교육부나 교육청에서 앞장 설 일이죠. 처음에야 다 분개하지 않았습니까? 지금은 교사들이 쉬쉬거리는데 학생들이 어떻게 제대로 거기에 대해서 알고 생각할 수 있겠어요? 내가 가르치는 애들이 그 배를 탔을 수도 있는데도….

국민 전부가 가슴에 구멍 하나씩 뚫고 다니는 시대 아닙니까? 아무것도 되는 일이 없으니까! 사고가 났으면 반성을 하고 원인을 제대로 알려주고 해야지, 숨기기에 빠쁘니까. 입으로 약속하는 거야 뭐든 못해요? 말로야 하늘도 들었다 놨다 할 수도 있는 거죠.

환풍구 위에서 떨어져 죽고, 군대 가서 죽고, 월성원전에서 잠수사가 죽고,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현실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어요. 그런데 더 큰 문제는 환풍구 사고로 10여 명이 죽었는데, 이제는 이 정도 죽음은 비극으로 못 느끼고 있다는 게 우리 사회의 큰 비극인 거죠. 이제는 한두 사람 죽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돼버렸으니…. 세월호 참사의 충격이 숫자에 무디게 만들어 버렸다는 게 너무나 큰 비극이죠."

 부산의 0000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이 세월호 유가족에 쓴 편지
부산의 0000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이 세월호 유가족에 쓴 편지송태원

안녕하세요? 저는 ○○고등학교에 다니는 1학년 ○○○이라고 해요. 세월호 사고가 터진 지 벌써 200일이 넘었네요. 아직도 9명의 실종자가 구조되지 않은 걸로 알고 있는데 마음이 많이 아프시죠? 저도 제가 직접 겪지 않았지만 뉴스나 기사 뜬 것을 보며 SNS에 올라온 단원고 언니 오빠들의 마지막 영상을 보며 참 마음이 아프고 제 가족이 그런 일을 당한 것 같이 슬펐어요. 제가 개인적으로 해드릴 수 있는 것은 그저 힘내시라고 하는 것과 나머지 9명이 구조되길 바라는 것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래도 이 편지를 보시고 많이 힘내셨으면 좋겠어요. 유가족분들! 어머니 아버지들! 꼭 힘내시고 너무 마음이 아프겠지만 극단적인 선택은 하지 말아주세요.ㅠㅠ 힘내시고 건강 챙기시고 끼니 거르지 말고 식사 잘 챙겨 드셔야 먼저 떠난 언니 오빠들이 마음이 편해요. 아자 아자!

 부산의 0000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이 세월호 유가족에 쓴 편지
부산의 0000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이 세월호 유가족에 쓴 편지송태원

안녕하십니까? 벌써 세월호 참사가 202일이나 되었네요. 무슨 말을 해도 위로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위로를 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세월호 특별법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시는 것을 보니 내가 너무 작아지는 것 같습니다. 세월호 사건과 같은 일이 다시는 일어나면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사건이나 참사를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끊임없는 관심을 계속하여 이 사건의 진상규명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사건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힘내십시오.

#세월호 유가족 #손편지 #고등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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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폐지, 헌옷, 고물 수거 중 하루하루 살아남기. 콜포비아(전화공포증)이 있음. 자비로 2018년 9월「시(詩)가 있는 교실 시(時)가 없는 학교」 출간했음, 2018년 1학기동안 물리기간제교사와 학생들의 소소한 이야기임, 책은 출판사 사정으로 절판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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