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조선에 임(臨)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병자를 안마하는 것과 같다.
팔다리와 몸뚱이를 주무르고 두드리면 언뜻 보기에는 병자의 고통을 떨어뜨리는 것 같지만, 이는 병자를 치료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며, 마침내 병자의 병은 낫게 될 것이다."
그는 당시 조선을 '병자'로 보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는 일제의 조선 침략은 일시적으로 조선인에게 고통을 가져올지 모르지만, 마침내 조선인의 행복과 안녕을 보장하게 될 것이라는 논리를 폈다.
그러자 허위는 책상 위에 있는 겉은 붉지만 속은 남색인 연필을 가리키며 이를 반박했다.
"이 연필을 보라. 언뜻 보기에는 붉은 색이지만, 그 속은 남색이지 아니한가. 일본이 조선을 대하는 것이 이와 같다. 그 껍질과 내면이 크게 다름은 다툴 것도 없이 명백한 것이다."
의병 대장은 나다
허위를 심문하던 경무총장 아카시 모토지로는 비록 적장이지만 허위의 고매하고 강직한 인품에 매료되어 '국사(國士, 나라의 으뜸 선비)'라고 일컬으며, 끝까지 구명운동을 했다고 전하고 있다.
[*필자는 EBS 교육방송과 함께 2008년 왕산 순국 100주년 기념일을 전후하여, 왕산 후손과 아카시 모토지로의 후손 간 '100년 만의 화해'라는 주제로, 특집 다큐멘터리를 기획 제작하려고 했다. 그리하여 EBS 김동관 PD가 일본까지 갔으나 아카시 후손의 미온적인 태도로 성사되지 못했다. 그때 김 PD가 만난 아카시 손자는 자기 할아버지의 당시 대 한국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듯하다고 나에게 전했다. 아마도 이것이 지금 일본 주류를 대변한 듯하다. 그들은 여전히 우리를 우습게 보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 수 없다.]
허위가 구금되어 있는 동안 평리원 판사와 검사가 번갈아 심문했다. 이에 허위가 그들을 크게 꾸짖으며 말하였다.
"너희들이 비록 조선 관헌이라 하나, 왜적의 주구(走狗)이니 이런 짓을 하는구나. 나는 대한의 의병장이니 너희들과 말다툼하고 싶지 않다. 또 법률이라는 것도 너희들이 임의로 정한 것인즉, 내가 복종할 바 아니다. 나는 이미 죽음도 요량(料量, 잘 헤아려 생각함)한 바이니, 속히 형을 집행하라."
재판 중 일본 재판관이 허위 13도 창의군사장에게 물었다.
- 의병을 일으키게 한 것은 누구이며, 대장은 누구인가?
"의병이 일어나게 한 것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이요, 그 대장은 나다."
- 어째서 이토 공이라고 하느냐?
"이토가 우리나라를 침략하지 않았다면 의병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의병을 일으킨 것은 이토가 아니고 누구이겠느냐."
장엄한 순국
허위는 1908년 9월 18일 사형선고를 받고, 그해 10월 21일 경성감옥(서대문형무소, 현 서대문독립공원)에서 감옥 개설 제1호로 교수형을 당했다.
형이 집행되기에 앞서 일본 중이 독경을 하려고 하자 허위는 다음과 같이 거절하였다.
"충의의 귀신은 스스로 마땅히 하늘에 올라갈 것이요, 혹 지옥에 떨어진다고 해도 어찌 너희들의 도움을 받으랴."
옥리(獄吏, 감옥의 관리)가 시신을 거둘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다.
"사후에 시신 거둠을 어찌 괘념할 것인가. 나는 이 옥중에서 썩어도 좋으니 속히 형을 집행하라."
허위는 교수대에 오르기 전에 북쪽에 있는 대궐 어좌(御座, 임금의 용상)를 향해 4배, 남쪽 고향 가묘(家廟)에 재배한 다음, 조용히 교수대로 올라가 장엄하게 순국하였다. 향년 54세였다.
후일 안중근이 뤼순재판정에서 왕산 허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허위와 같이 진충갈력(盡忠竭力, 충성을 다함)과 용맹의 기상을 동포 이천만민이 가졌다면 오늘의 국욕(國辱, 나라의 치욕)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까지 고관들은 자기 있음을 알고, 나라 있음을 알지 못하는 자가 많다. 그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고등 충신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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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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