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9학교의 안내문생각외로 많은 취재진들이 모여들었다. 아사히 신문에서 온 기자 한 분은 행사 이후 뒷풀이에 오셔서 이예다씨와 아마미야씨와 심도있는 대화를 나누었다. 이예다씨에 관한 기사는 2014년 10월 27일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최태현
이윽고 오늘의 마지막 일정이자 하이라이트인 "마가 큐 학교(マガ9 学校)"에 도착했다. 도쿄의 NPO 센터에서 열린 이 이벤트는, 아마미야 카린씨가 필진으로 있는 시사 전문 웹진 '매거진9'의 편집부에서 정기적으로 주최하는 토크 이벤트다.
이날은 아마미야 카린씨의 진행으로, 우리 일행이 총 출동한 자리였다. 시간도 이야기 할 만한 주제도 넉넉했다. 게다가 오늘 합류한 구로씨도 게스트로 출연했다. 실질적으로 한국에서 비종교적 병역거부자들과 함께 오랫동안 활동한 구로씨의 증언은 매우 중요한 발언이었다.
특히 이날은 어제 기자회견에 참석하지 못한 언론인과 일반인이 많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넉넉한 시간 덕택에 심도 있는 이야기를 많이 나눌 수 있었다. 심지어 관객석에는 이란에서 온 망명신청자도 있었다. 이란에서 좌파 정당 활동을 하다 일본에 온 그는, 14년 동안 망명 신청을 세 번이나 했다가 받아 들여지지 않았는데 이제 캐나다에 망명이 허용되어 곧 일본을 떠난다고 했다. 그는 이예다씨에게 축하의 말을 건넸다.
군대 다녀오면 남자다워진다고?질의응답 시간도 충분히 있었으므로 이날 나온 몇 가지 질문을 소개한다. 질문 중에는 한국에 대한 오해로 약간 엉뚱한 질문도 있어서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 병역거부를 한 사람의 가족이 한국 정부로부터 법적인 처벌이나 위해를 받지는 않습니까? 병역 거부를 지원하는 단체나 개인이 정부로부터 조사를 받는 일은 없습니까? 오늘 여기 나온 여러분들의 가족이 한국 당국에 의해 잡혀가거나 하지는 않습니까?"일단은 자유 국가이기 때문에 당사자 이외가 연좌 처벌하는 일은 없어요.(안악희) 다만 병역 거부자들의 가족이 직장이나 이웃으로부터 '범죄자의 가족'이라는 시선을 받는 경우는 있죠.(구로)"
- 일본에서 징병제가 도입된다면 어떤 형태로 도입될 것이라 생각하세요?"일본에서 집단적 자위권이 통과됐다고 해서 갑자기 한국형 징병제가 도입될 가능성은 일단 없다고 봅니다. 된다 하더라도 병역 거부권과 대체 복무제도가 있고, 징병제라 하더라도 아주 양호한 형태인 독일식 제도가 추진되겠죠. 다만 잠재적으로나마 징병제를 도입할 의도가 있다면 군사와는 무관해 보이는 부분부터 준비될 가능성이 큽니다. 먼저 성인 남성들의 건강 데이터를 수집하기 위한 신체검사 등을 할 겁니다.(안악희)"
- 북한과 준 전시상태라는 상황이 징병제의 가장 큰 이유로 보통 설명되는데, 한국이 징병제를 폐지한다면 국가가 붕괴하지 않나요?"명목상으로는 그렇지만 화력이나 경제력 수준을 감안 할 때 북한과 남한과의 전쟁은 헤비급과 라이트급의 싸움이라 볼 수 있어요.(구로) 생각해 보세요. UN의 식량지원을 받는 국가와 무역량 세계 10위권의 국가가 대치하고 있어요.(안악희) 오히려 국민 통제를 목적으로 한 성격이 강하다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합니다.(구로) 북한이 없어지면 다음은 중국, 일본이 징병제 유지를 위한 명목이 될겁니다.(이예다)"
- 이렇게 많은 문제가 있는데 왜 폐지, 혹은 개선의 움직임이 없다고 생각하십니까?"한국사회 자체가 민주화와 함께 바깥 세상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된 지 아직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기본권 침해에 민감하지 못한 부분이 있습니다. 또 세계적인 기준으로 보자면 큰 피해지만 전 국민이 동일하게 부담한다는 성격 때문에 개개인이 받는 피해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측면도 있습니다. (안악희) 앞서 말씀 드렸다시피 국민 통제적인 성격이 강합니다. 병역이 한국 사회에서는 일종의 통과의례로 받아들여지는데, 한국 사회가 원하는 사람으로 길들이는 측면이 있습니다.(구로)"
- 한국사회에서 병역을 거부한 사람은 사회에서 차별하는데, 연애에는 지장이 없나요? 결혼은 할 수 있어요?"연애 많이 하고 결혼도 합니다.(구로)"
확실히 일본인들이 징병제에 느끼는 온도차나 오해는 상당히 컸다. 여러 이야기가 오가다 보니 한국인들이 외국인들에게 "대외적으로" 자주 하는 이야기도 나왔다.
"제 주변에도 군대를 다녀온 한국인이 있는데, 군대를 다녀와서 남자다워지고 좋았다. 책임감이 생겼다고 이야기하더라고요. 이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건 좋은 기능이 아닌가요?"그러자 나와 양성택씨가 말했다.
"아 그러면 그분한테 '군대 한 번 더 가서 두 배로 강한 남자가 되서 나오면 어떠냐'라고 물어보세요. 분명히 화낼 겁니다."나는 웃으며 말했다.
"한국 예비역들이 제일 싫어하는 악몽이 군대 다시 가는 꿈이에요."유럽인으로 보이는 한 외국인은 나에게 물었다.
"징병제가 심각한 문제인 것은 알겠다. 하지만 한국에서도 존폐 여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고, 이게 없어지면 큰일 난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징병제가 없어지면 그 다음의 한국은 어떻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잠시 숨을 고르고, 나는 밝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무엇보다도. 지금처럼 사람 데려다가 고생시키고 제대로 보상도 안 해주는 비 인간적인 시스템은 사라지겠지요."마가9학교가 끝났다. 모든 일정을 마쳤다. 우리는 마침 가까운 신오오쿠보로 향했다. 오랜 만에 한국 음식이라도 먹자는 모두의 의견을 따른 결정이었다. 간토오 지방 최대의 코리아 타운답게 정말 서울과 별 차이가 없었다. 최근에는 재특회가 욱일기를 들고 행패를 부린 것으로도 유명하다. 삼겹살에 막걸리를 마시며 짧지만 다사다난한 일정에 대한 회포를 풀었다. 프랑스에는 가라오케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말에, 양성택씨는 다같에 2차로 노래방에 가자는 제안했다. 우리는 코엔지의 한 가라오케로 향했다.
우리는 맥주를 마시며 신나게 노래를 불렀다. 이예다씨는 블루하츠의 노래와 하가렌의 오프닝 송을 열창했다. 나는 예다씨의 밝은 모습을 보며 기쁘면서도 동시에 복잡한 느낌이 들었다.
'아무리 봐도 서울의 어느 동네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청년이다. 저녁이 되면 호프집에서 맥주나 마시고 닭이나 뜯을 것 같은 평범한 사람인데. 이 사람이 왜 망명자일까. 한국의 시스템은 왜 아직도 제자리 걸음인걸까.'
어느덧 아침해가 밝았다. 코엔지 거리에는 상쾌한 공기가 가득했다. 예다링은 아침 비행기로 떠나야 했기에 모두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우리는 마치 오랜 친구들처럼 환하게 웃으며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