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 (자료 사진)
권우성
"내가 최근 2~3년 동안 이미지 변신을 했잖아요. 50살 넘어가면서 순해졌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는데 그날 하루만에 다시 원상복귀했죠."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이 걸걸한 목소리로 웃어보였다. 김 소장은 지난 21일 케이비(KB)금융 임시주주총회에 소액주주로 참석해 사외이사들과 설전을 벌였다. 그때 목이 다 쉬었다. 그는 이날 사외이사들을 향해 'KB사태'에 대한 책임을 거론하며 직격탄을 날렸다. 그러나 윤웅원 KB금융 회장 직무대행의 일방적인 폐회선언에 할 말을 다 하지 못한 채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재벌 저격수'로 잘 알려진 그가 왜 KB금융의 저격수로 돌아왔을까. 지난 27일 오전 서울 성북구 한성대 연구실로 그를 찾아갔다. KB금융에 발벗고 나선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했다. 지금까지 외환은행, 우리금융, 삼성생명 주총에도 참석한 경험이 있다. 그러나 지배구조에 대한 문제제기를 위해 나선 금융 회사는 KB금융이 처음이다. KB사태를 지켜보며 학생들에게 "한국금융의 미래가 없다"고 말할 정도로 참담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날 억지 폐회 선언으로 사외이사와 신임 윤종규 회장에게 전하지 못한 세 가지 질문을 마저 털어놓았다.
"집행임원-사외이사 '역할 분담' 명확해야 책임 소재도 분명"첫째로 그는 사외이사들에게 임무를 다했는지 묻고 싶었다. 김 소장은 "지주사 이사회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리스크 관리다, 그러나 KB금융 이사진들은 임영록 전 회장과 이건호 전 국민은행장의 주전산기를 둘러싼 갈등이 KB사태로 번질 때까지 전혀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최소한 이 행장을 불러서 문제가 뭔지 들어보는 노력은 했어야 했지만 보고조차 받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한국의 금융지주사가 겉모양만 미국을 흉내냈을 뿐 속은 전혀 딴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 금융지주사 이사회의 경우 경영상 의사결정을 하는 집행 임원들과 리스크관리를 하는 사외이사들로 업무가 구분되지만 우리나라 이사회는 이런 구분이 없다"며 "KB사외이사들의 경우 자신의 임무를 명확하게 인지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다, 특히 국민은행의 주전산기 문제를 자신들의 임무가 아니라고 보고 나몰라라 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경우 지주사 회장과 자회사 CEO들이 모이는 비공식적인 집행 임원 회의가 있는데 이들은 등기이사 여부와 관계없이 중요한 의사결정에 참여하기 때문에 이사와 똑같은 권한과 책임을 갖는다"며 "그러나 KB금융지주사를 보면 회장만 등기이사다, 결국 최고재무책임자(CFO), 최고리스크책임자(CRO), 최고투자책임자(CIO) 등 핵심 보직에 있는 사람들이 잘못을 해도 이사가 아니기 때문에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김 소장은 경영상의 실질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집행임원들과 리스크 관리를 하는 사외이사들의 권한과 책임을 명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24일 금융위원회에서 발표한 '금융회사 지배구조 모범규준안'을 보면 사외이사 임기 1년 단축, 직군별 다양성 확보 등 외형적인 측면에 집중했다"며 "그러나 이사회 운영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사외이사들과 집행임원들의 업무 분담과 협조 시스템을 어떻게 구축하느냐다, 이것이 전제되지 않으면 모범기준에 어떤 미사여구를 써놓아도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다만 KB금융 사외이사 전원 교체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 김 소장은 "당장 모든 사외이사 교체보다는 내년 3월 주총에서 임기를 다한 빈 자리를 제대로 채워넣는 게 중요하다"며 "사외이사들의 자기복제, 낙하산 논란을 없애고 소액주주들이 추천해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사외이사 후보를 선출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국민은행노조, 밥그릇 챙기기 아닌지 냉정하게 돌아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