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이(강소라 분) 역시 사업계획서 결재에 성공했지만 상사의 승진 욕심에 밀려 가로막힌다. 승진에 눈먼 상사의 희생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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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야 종사자 중 인터넷을 하는 사람은 누구나 알고 있을 정도의 인지도가 있었던 정보사이트를 운영했었던 나는 사장의 계속된 입사 권유로 이 회사에 들어왔다. 때문에 나에 대한 회사의 대우는 제법 좋았다.
하지만 내가 들어오면서 신생된 인터넷 팀의 사업들도 조리실장의 경우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변덕스런 입맛과 줏대 없는 의견들 때문에 수개월이 흘렀지만 사업화하지 못했다.
다른 것이 있다면 우리 팀에는 직원들의 '딴지'가 없다는 것이었다. 앞선 조리실장의 경우는 식당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혼자 업무를 봤기 때문에 사무실 직원들과 만나는 시간이 드물었다. 그랬기에 소위말해 '남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신규 사업을 핑계로 한 사람을 흠집 내고 자신의 입지를 다지기에는 더 할 나위 없는 기회였다. 딱 드라마 <미생>에서 한석율을 짓밟고 자신의 입지를 다지는 섬유팀의 성 대리처럼.
하지만 주관적 평가로 음식의 <맛>에 대해 왈가왈부 할 수 있는 것과 달리 인터넷 팀의 일에는 그러지 못한 것이다. 그럼에도 일에는 진척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팀장님 하시려는 일 하나도 못 하실 거예요."사장보다도 나이가 한참이나 많으면서 이 회사에 가장 오래 근무하고 있는 현장 소장님이 나를 따로 부르더니 한 말이다. 내가 사업할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라 호칭을 항상 높였다.
"사장님이 팀장님한테 날개를 달아 줄 거라 생각하세요?"이 무슨 회귀한 말이란 말인가. 날개는 또 뭐고. 끝까지 듣고 보니 소장님 말인 즉은, 인터넷정보사이트를 운영했던 내가 이 분야에서, 그것도 이 회사에서, 다시 유사한 사업을 해서 잘 됐을 경우를 염려하는 것이란다.
"지금도 회사 직원들이 부서를 막론하고 퇴근 후 팀장님 위주로 모이는데 그 사업이 잘 되 보세요." 기가 막혔다. 사업이 잘 되면 회사가 좋고 결국 사장이 좋은 것 아닌가. 그리고 나는 단지 힘들게 고생한 현장 직원들에게 팀장으로서, 또 사무실에서만 일하는 게 미안해서 술을 자주 산 것뿐이었다. 술자리에서 회사 불평을 하는 직원들에게는 작은 사업이지만 먼저 해 본 사람으로서 회사 입장을 늘 대변했거늘.
"그만두기라고 하는 날에는 이 회사에서 그 사업 누가해요. 나가서 다시 회사 차릴지도 모르고..."쩝,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그것도 아주 큰 쇠망치로. 그럼 왜 나를 이 회사에 둔단 말인가. 급여도 사장 다음으로 많았는데. 또 들어온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그만두는 걸 우려한단 말인가. 그럼 모든 회사가 다 사장이 할 줄 아는 일만 신규 사업으로 한단 말인가. 무척이나 머리가 복잡해졌다.
이후 그 말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직접적으로 회의석상 등에서 인터넷 팀의 업무추진을 독촉했다. 나의 언성은 높아졌고 사장과의 관계는 급속도로 소원해졌다. 인터넷 팀의 업무는 여전히 미루기의 연장선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무척이나 후회하는 처사였지만 회사의 의도를 알고 나서 나는 여러모로 삐딱하게 행동했다. 일례로 출근시간보다 꼭 5분에서 10분 늦게 출근했다. 출퇴근 카드를 통해 상황을 월마다 결산해서 패널티를 주는데 따른 반항이었다. 현장 직원들은 가맹점 오픈 날짜를 맞추기 위해 몇 시간씩 늦게 퇴근해도 시간 외 수당 한 푼 안주면서, 몇 분 늦었다고 급여에서 (소위말해)까는 것에 대한 나의 저항방식이었다.
이렇다 보니 나 역시 회사 생활에 의욕을 잃어갔다. 잘 나가던 내 사업도 사람을 잘 못 만나면서 사기 비슷한 일로 접어야 했다. 그래서 처음 입사하기로 할 때 '일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약속이 전제가 됐었다.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확인한 3개월 후, 나는 그 회사를 나왔다.
내가 나올 때까지도 버티고 있던 조리실장은 몇 개월 후 결국 그만뒀고, 직영점을 하려했던 식당은 임대를 내면서 신규 사업은 무산됐다. 그리고 그 회사 역시 1~2년을 더 버티다가 결국 부도났다.
tvN드라마 <미생>을 통해 대기업에 들어가 본적도 없고, 직장 생활도 길게 해 본적도 없지만 일을 하고자 함에도 '자사 이기주의'와 '개인 이기주의' 에 가로막혀 출발부터 사회의 냉혹한 현실을 체감하는 모습을 봤다. 얼마되지 않는 직장 생활이었지만 그때가 떠올라 이렇게 추억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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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 한마디에 사업 접어... 그 회사 결국 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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