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의 2014년 대북정책은 '통일대박'으로 시작했지만, 대북전단은 끝없이 이어졌고 북한으로부터 '핵전쟁' 위협을 받는 파국을 맞았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이해할 수 없는 대북정책은 통일준비위원회 활동에서 절정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통일준비위원회는 12월 2일, 통일헌장 시안을 연말까지 작성하고 광복 70주년인 내년 상반기에 공청회를 개최하기로 하였습니다. 이미 남북공동의 7·4 남북공동성명과 6·15/10·4 선언이 있는데 무슨 헌장을 또 만드는 것일까요?
정종욱 통일준비위 민간 부위원장은 이날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청와대에서 열린 통일준비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에서 통일헌장이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계승하는 성격을 갖는다고 해놓고는 "통일헌장은 '공영통일, 평화통일, 열린 통일'을 기조로, '민족과 이웃이 행복한 선진 민주국가, 21세기 신문명국가 건설'을 목표로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공영, 평화, 열린 통일이라니, 조국통일에서 '자주'의 원칙이 사라졌습니다.
1. 자주의 원칙을 외면한 통일헌장
조국통일은 민족의 단결과 발전을 위해 분단모순을 극복한다는 점에서 마땅히 '자주'적 입장으로 수행되어야 할 우리민족의 대업입니다. 우리민족은 갈라져 있기에 그 역량이 크지 못하고, 분단에 의해 외세의 이권개입에 속수무책으로 당해왔습니다. 동북아시아에서 우리민족의 분단을 놓고 미국과 중국, 일본과 러시아가 온갖 이권을 나눠먹고 있는 현실을 봅시다. 우리 민족의 통일을 진심으로 환영할 외세가 누가 있겠습니까.
조국통일은 미국 좋고, 중국 좋으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조국통일은 우리민족에게는 단연코 부강번영할 지름길이지만, 외세에게는 통일코리아라는 강력한 경쟁세력이 등장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그 나라들은 우리민족이 통일을 이루어 부강번영하는 강국으로 우뚝 서면 우리를 손쉽게 '이용'하던 지난날을 그리워하며 이제 우리와 '경쟁'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조국통일을 이룰 수 있는 힘은 우리민족 스스로에서 찾아야 합니다. '자주'의 원칙을 지키면 통일로 갈 수 있지만, '자주'의 원칙을 잃어버리면 외세에 기대게 되고, 외세에 기대면 분단이 지속될 뿐이라는 것. 분단 70년의 교훈 아닌가요.
2. 박정희조차 합의했던 '자주' 통일원칙
그런 측면에서 통일의 자주원칙은 40년 전인 박정희 정권시절부터 남북이 이미 합의하였습니다. 1972년 7월 4일, 남북은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이라는 통일의 3대원칙을 합의하였던 것입니다. 일본군 장교라는 친일경력을 가지고 있었던 박정희 대통령에게조차 조국통일에서 '자주'원칙은 통일 3원칙의 가장 첫머리에 위치시킬 만큼 기초 중의 기초였고 상식 중의 상식이었습니다.
이후 대한민국 정부의 통일방안에서도 '자주'는 움직일 수 없는 통일의 제1원칙이었습니다. 12·12 쿠데타로 군력을 찬탈한 전두환 정권도 "통일은 민족자결의 원칙에 의거하여 겨레 전체의 의사가 골고루 반영되는 민주적 절차와 평화적 방법으로 성취되어야 한다"는 기본원칙을 표방하며 민족자결, 즉 '자주'의 원칙을 담았습니다. 노태우 대통령이 1989년 9월 제시한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도 자주, 평화, 민주의 3원칙 가운데 '자주'를 첫 번째 원칙으로 중시하고 있습니다. 김영삼 정부도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수용하며 자주의 원칙을 중시하였습니다.
2000년 6월 15일, 평양을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남북정상회담 과정에서 발표한 6·15 남북 공동선언에서 자주의 원칙을 제일 먼저 선언하였습니다. 6·15 선언은 1항에서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며 '자주'의 원칙을 자세하게 명문화하였습니다.
북한도 7·4남북공동성명과 6·15 공동선언, 10·4선언을 중시합니다. 북한은 '자주'를 통일의 원칙, '민족대단결'을 통일의 동력, '평화통일'을 통일의 방법으로 보면서 자주, 민족대단결, 평화통일을 3대 원칙으로 꼽고 있습니다. 남과 북이 모두 "자주"의 원칙을 중시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권 뿐만 아니라 북한당국도 중시하는 자주의 원칙을 왜 외면하는 것인가요?
3. '열린 통일'은 외세눈치보기
통일준비위원회가 '자주'를 외면하며 넌지시 밀어넣은 원칙은 '열린 통일'입니다. '열린 통일'이란 한반도 통일이 우리 국민 모두에게 도움이 되며 주변국에게도 도움이 되는 모두에게 '열린' 통일이란 뉘앙스입니다.
'자주'원칙의 자리에 슬그머니 '주변국과 관계'가 들어와버린 형국입니다. 조국통일을 외세와 보조를 맞추어 하자는 논리입니다. 그렇다면, 미국이 통일을 반대하면 미국이 허락할 때까지 기다리고, 중국이 반대하면 이제는 중국이 허락할 때까지 통일을 기다리겠다는 것인가요. 외세공조 중시는 전형적인 사대주의 정책이며 지난날, 나라의 독립을 열강들에게 구걸하러 다니던 이승만식 청원외교의 재현일 뿐입니다.
지독했던 일제강점기, 태평양전쟁이 발발하기 이전까지 조선독립에 대한 열강들의 입장은 일본강점을 지지하는 것이었습니다. 1919년 3·1운동 이후 이승만식의 청원운동은 민족의 존엄을 정치적 흥정물로 전락시키고 말았습니다. 이승만은 열강들에게 독립을 구걸했지만 영국, 프랑스, 미국, 독일 등 그 열강들은 모두 식민지 부자들이었습니다. 게다가 미국은 1905년, 가쓰라 테프트 밀약에서 일본의 조선지배를 인정하였고 일본은 1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의 편에서 싸웠고 1923년까지 영국과 '동맹' 상태였습니다.
그런 서구열강들에게 조선독립을 구걸하러 다닌다니 얼마나 한심한 노릇인가요? 결국 독립청탁은 일본이 독점한 조선의 이권을 열강에게 다시 거래하는 정치적 흥정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 단재 신채호 선생은 "이완용은 있는 나라를 팔아먹었지만, 이승만은 없는 나라를 팔아먹으려 한다"며 단호히 비판했던 것입니다.
우리역사 교훈이 이토록 생생한데 '열린 통일' 왠 말
결국 '열린 통일'은 얼핏 들으면 나쁘지 않게 들리지만 실제로는 조국통일의 중대사를 외세에 내맡기겠다는 노골적인 선언입니다. 한미동맹이 대한민국의 국시처럼 중시되는 박근혜 정권에서 '열린 통일'은 미국과 중국의 정치적 줄다리기에 조국통일 대업을 팔아먹는 행위 아닌가요?
그런 면에서 박근혜 정권의 통일헌장은 그 기본정신이 매우 불순합니다. 전단살포를 막지 않고 5·24조치도 해제하지 않으면서 "통일 대박"을 논하는 이해할 수 없는 행보처럼, 통일헌장을 논하면서 '자주'원칙을 외면하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이 정권에서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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