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천항일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탑
오문수
지난 5일 오전 8시 반, 여수공항을 떠난 비행기는 구름을 박차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창밖으로 보이는 여수 앞바다는 어선과 상선들이 오가며 평화롭게 보였다. 겨울에도 눈이 거의 오지 않는 여수.
파란 하늘, 맑은 날씨 속에 여수를 떠난 일행은 약간은 들떠 있었다. 그러나 10여 분쯤 후에 나온, "제주의 날씨는 흐리고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습니다"라는 기장의 방송은 답사단일행이 겪을 마음고생을 예보해주는 듯했다.
45분쯤 날아가면 되는 여수-제주 간 하늘 길. 우중충한 하늘 아래 제주공항이 보인다. 서서히 기수를 아래로 향한 비행기가 좌우로 심하게 흔들린다. 비행기 문을 연 승무원이 "바깥바람이 너무 세니 나가시면 난간을 꼭 잡고 트랩을 내려가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밖으로 나가니 몸을 제대로 가눌 수가 없었다. 과연 제주 바람이었다.
우리 일행을 마중 나온 분은 4·3연구소 김창후 전 소장이었다. 작달막한 키에 마음씨 좋게 생긴 미남이다. 시골동네 이장처럼 생긴 김 전 소장. 김전 소장은 2박3일간 우리 일행을 안내하며 끝없이 설명하고 세밀한 것까지 안내해 줬다.
어디서 저런 힘이 났을까? 필시 본인의 아픔이 열정으로 변한 것이 틀림없다. 하긴 4·3 때 당시 제주도 인구 28만 명 중 3만 명이 희생됐다. 9명 중 한 명이 희생된 꼴이니 일가친척을 연결하면 관련 없는 집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김 전 소장에게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