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치 못한 돈이 약 50만원 정도 들어와 있어 그 입출내역을 확인해 보니, 지난 몇 년 간, 3월 중순 이맘때마다 내게 50만원을 입금해 주었던 익숙했던 그 이름이다.
"포상금"
2013년에도 U모 대학교에서 강의우수교원으로 선정된 모양이다. 2011년부터 2013년까지 3년 강의를 하였고 영광스럽게도 3년 연속 이 상과 포상금을 받았다. 선정 기준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가장 가시적이고 처리하기 좋은 기준이 학생들의 강의 평가의 점수 아닐까. 3년 모두 매학기마다 5점 만점에 4.3~4.6의 종합 평점을 유지했던 덕분이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러니하게 난 이번 학기에 U모 대학교라는 직장을 잃었다. 좋게 말하면 강사 임용이 되지 못했다는 표현이 될 것이고 나쁘게 말하자면 짤렸다는 표현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좋게 말하기도 나쁘게 말하기도 힘들다. 내겐 박사 학위가 아직 없는 것이 그 이유이기 때문이다.
U모 대학교만의 문제는 아니겠으나, 많은 대학은 대학 평가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평가 기준에 들어가는 것 중 하나가 전임 교원의 비율인데, 그 비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전임 교원이 아닌 시간 강사에게 수업을 많이 맡기는 것이 대학 차원에서 큰 부담이 될 것이다.
따라서 시간 강사가 설 곳은 점점 줄 수밖에 없다. 여러 대학에서는 전임 교원의 비율을 높이기 위한 방법으로 전임 "대우" 교원의 비율을 높인다. 그리고 이들의 강의 시수를 늘려 전임 교원의 강의 비율을 높이고 덩달아 일반(?) 시간 강사를 줄이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따라서 박사 학위 미 소지자라는 것이 시간 강사를 해촉하기 위한 가장 편안한 핑계가 될 것이고 나같은 이의 강의 시수를 줄이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 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러한 상황에 대한 불만이 없을 순 없겠으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또 무엇이 있으랴. 대학은 수능 성적이 더 높은 고교생들을 자신의 학교로 입학시키기 위해 자신들의 평가에 민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수적·양적 지표로써 대학을 평가하는 이러한 상황에서 대학이라는 집단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을 택한 것이 아니겠는가. 내가 불만을 가지는 것은 이러한 전반적인 "상황"인 것이지, U모 대학교라는 "개체"에 대한 불만을 갖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까지의 고마움이 더 크다.
합이 잘 맞았다. 왜인지 모르게 U모 대학교에서는 강의가 잘 되었다. 딴 대학에서는 시답잖은 농담도, U모 대학교에서 하면 빵 터지는 농담이 되었다. 강의는 많은 부분을 자신감이 차지하는지, 그렇게 자신감이 높아지자 강의는 더 잘 되었고, 강의가 잘 되다 보니 더 열심히 준비하고, 더 열심히 준비하다 보니, 또 더욱 잘 되고. 선순환이었다.
오죽하면 그 대학의 주소지인 J동, 그 땅과 내가 잘 맞는 건 아닌지, 개인과 지리의 상관관계까지 생각하게 되었을까. 내가 학생 입장은 아니었으니 함부로 말할 것은 못 되지만 매학기 수강생들도 내 수업을 즐겁게 듣는 듯하였고, 좋은 인연들도 많이 만났다. 소속 학과의 전임 교수님들도 날 잘 챙겨주셨고, 학과 조교 선생님과의 인연도 참 고마운 것이었다.
대학을, 대학원을 입학했을 때에 비해서 살이 많이 찐 탓도 있겠지만, 요즘 얼굴이 많이 좋아졌다, 인상이 많이 좋아졌다는 등의 말을 많이 듣는다. 심심찮게 하는 말이지만 최근 몇 년 간 내 삶의 질과 행복도가 꽤나 높았다고 자평하는데 그 덕일 것이다. 그리고 그 삶의 질과 행복도를 높인 데에는 U모 대학교의 수업이 크게 작용한다.
1월, 내게 U모 대학교의 강의를 소개해 주셨던 선배 선생님의 전화를 받고는 무척 실의에 빠졌었다.
"미안하게 되었다. 학교측에서 박사 학위 소지자만을 강사로 쓰라 한다. 우리과 나름대로 애써봤는데 안 되었다. 미안하다."
고작 3년 강의한 학교를 두고, 고향을 잃은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생각해보면 난 그곳에 뿌리는 내릴 수 없었으니, 한낱 가지에 불과할 터, 그냥 좀 화려했을 가지일 뿐인데, 그토록 컸던 상실감은 아마 3년 간 누린 행복을 잃게 되었다는 것에서 온 것이겠다.
3년 간, 16주 간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던 그 공간에 갈 필요가 없어졌고, 동시에 그 공간에 가는 기쁨도 사라졌다. 그래서 "그냥 강의 하나 잃었을 뿐인데" 꽤 긴 시간 실의에 빠져 있었다. 그래서 괜시리 내가 맡았던 수업은 없어진 걸까. 아니면 나 말고 다른 누군가가 하고 있을까 궁금해 하고. 그 누군가는 누구인가, 괜히 질투도 막 나고.
"그래, 결국은 박사 논문을 얼른 써서 박사가 되는 것 아니겠냐."
이야기들이 이런 위로들로 귀결되지만, 그 귀결이 마뜩잖다. 그러기 위해서 박사 논문을 억지로 쓰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저러한 멘트의 위로의 말들이 전혀 위로가 되지도 않는다. 이렇게 배배 꼬인 마음에. 물론 써야겠지만, 써야하지만... 여전히 상황에 대한 나의 감정은 서운하고 얄밉다. 나뿐 아니라 너도 느낄 고통이기에. 나는 그래도 강의 또다른 대학에서 강의를 맡아서 하게 되었지만, 강의 자체를 받지 못한 동학들도 많기에, 이러한 설움도, 울컥함도 쉽사리 표출하는 것은 미안함이 되어 버린다.
입금된 그 돈의 내역을 확인하고 웃음과 울음이 동시에 나왔다. 올해도 우수교원이 되었다는 기쁨과, 그럼에도 그곳에 가지 못한다는 아쉬움에. "큐"라는 문자는 이러한 내 웃음과 울음을 동시에 나타낼 수 있을까? 그럼 지금 내 감정을 "큐큐큐큐큐큐큐큐큐큐" 정도로 해 두자.
비쩍 마른 내 잔고 탓에 몇 천원 쓰는 것도 아까워 하다가 오늘은 그 돈으로 잔뜩 장을 봐 왔다. 장봐 온 것들로 밥을 해먹어야지. 큐역큐역 소화 잘 시켜야지. 꾼 돈들도 일부 갚아야지. 밀린 세금들도 내야지. 일교차가 참 큰 요즘 날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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