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 해산 심판이라는 큰 시험 앞둔 헌법재판소

[주장] 공안사건에서 사법부가 보여 왔던 굴욕의 역사 단절해야

등록 2014.12.12 15:58수정 2014.12.12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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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5일 정부의 제소로 시작된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 절차가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정당해산청구의 법적 근거인 현행 헌법 제8조 제4항에 따르면 정당해산사유는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라고 매우 추상적으로 그리고 간략하게 명시되어 있을 뿐이다. 이는 해석의 어려움을 유발할 뿐 아니라 정당해산을 주도하는 집권세력에 의한 자의적 해석과 적용의 위험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통합진보당에 거칠 것 없었던 박근혜 정부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마지막 공개변론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과 '정당활동정지가처분신청 사건' 마지막 공개변론이 열리고 있다.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마지막 공개변론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과 '정당활동정지가처분신청 사건' 마지막 공개변론이 열리고 있다.유성호

정부는 해산청구의 이유로 통합진보당이 북한을 추종하는 일부 세력에 장악된 채 민중주권 등을 표방하면서 은밀히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한다고 주장한다. 이 때문에 민주적 기본질서가 위협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정당의 공개된 목적이 아닌, '은폐'된 목적의 위헌성을 정당의 해산사유로 삼고 있는 경우 정당해산제도는 합헌적 야당에 누명을 씌어 이를 제거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위험이 매우 크다.

헌법재판소의 변론에서도 정부는 통합진보당의 은폐된 위헌적 목적을 명백하게 입증하는 증거가 없다 보니 희미한 단서들을 가지고 집요하게 '짜 맞추기'식 입증을 시도하였다. 정부가 몇 트럭분의 증거자료를 제출하는 등 증거의 물량 공세를 펴야했던 이유도 이러한 속사정에 기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통합진보당의 위헌적 목적을 뒷받침하기 위해 정부가 제시한 퍼즐조각들이 얼마든지 다른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 또, 통합진보당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개별 당원의 일탈에 관한 것이거나 그 자체로서는 위헌성을 띠지 않는다는 사정을 감안하면 이와 같은 입증방법은 생사람을 잡을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박근혜 정권은 출범 직후부터 부정선거 의혹에 휘말리고 있다. 민주적 정통성이 흔들리면서 권위주의적 성향을 노골화 해왔다. 박 정권은 보수편향의 언론과 합세하여 통합진보당에 대하여 종북공세를 펼쳤다. 이를 통해 국민의 눈을 대선부정의혹으로부터 통합진보당으로 돌리는 데 성공했다.

지상 유일의 분단의 국가, 냉전의 섬으로 남아 있는 대한민국에서 소수야당에 대한 이념공세는 여전히 가공할 위력을 발휘했다. 그 전의 여러 선거에서 손을 맞잡았던 다른 야당들까지도 통합진보당과 함께 종북세력으로 규정당하는 것이 두려워 통합진보당과 공식적으로 거리를 두었다.


이처럼 정치적으로 고립된 통합진보당에 대한 박 정권의 공세는 거칠 것이 없었다. 이석기 의원을 내란사범으로 구속·기소한 데 이어 통합진보당 자체에 대한 정당해산심판청구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정권에 대해 비판적 인사들이나 정적들을 법적·도덕적으로 매장하여 무력화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외투를 걸친 법원을 동원하곤 했던 이승만, 박정희 독재정권 이래 우리 사회에서 너무나 잘 먹히는 수법을 동원한 것이다. 

헌법의 '정당해산제도', 야당탄압 방지하기 위한 것


그런데 국정원, 사이버사령부 등 국가기관은 대선개입을 통해 대선개입은 선거에서 정치적 경쟁의 기본 룰이 지켜지리라는 정치세력들 사이의 신뢰를 깨고 정권에 대해서 정치적 책임을 묻는 선거의 핵심기능을 마비시킴으로써 민주적 기본질서를 뒤흔들었다. 이처럼 민주적 정통성에 큰 결함이 있는 정권이 민주적 기본질서 수호를 빙자하여 정당해산심판청구를 제기하였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의 본질과 더불어 야당탄압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는 정당해산제도의 근본적 문제점이 드러난다.

서독이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나치 불법체제에 대한 반성으로 민주주의의 적에 대한 예방적 보호수단으로 정당해산제도를 채택하였다면, 4·19 혁명 후 우리가 이 제도를 헌법에 수용한 주된 이유는  이렇다.

이승만 정권이 1958년 진보당을 자의적으로 해산한 데 이어 그 당수 조봉암을 북한의 간첩으로 몰아 1959년 초 처형한 만행에 대한 헌법정책적 반성이었다. 즉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를 부정하는 경우에만 그것도 헌법재판소의 심판을 거쳐서만 야당에 대한 해산이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함으로써 정권에 의한 야당탄압을 제도적으로 방지하려고 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 현대헌정사에서 정당해산제도는 야당을 쿠데타세력의 강제해산조치로부터 지켜주지도 못했다. 민주적 기본질서의 정상적 실현을 가로 막는 군사독재 내지 권위주의 정권을 뒷받침했던 정당을 해산시키는 발판이 되지도 못했다. 이것이 권위주의정권하에서 정당해산제도가 직면하는 숙명일 것이다.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나치당이 한 차례 해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부활하여 마침내 신생 바이마르 민주주의를 붕괴시킬 수 있었던 것도 나치와 같은 극우 전체주의 정당을 해산시킬 수 있는 정당해산제도가 없어서가 아니다. 나치를 지원했던 강력한 사회적·경제적 세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궁극적으로 민주주의는 정당해산제도가 존재하는 곳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가치를 알고 반민주세력에 맞서 그것을 지킬 용의가 있는 다수의 시민들이 있는 곳에서만 번성하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예방적 보호수단으로 헌법적 차원에서 정당해산제도를 처음으로 채택했던 독일에서도 정당해산제도의 위험성을 비롯한 여러 가지 문제점을 인식했다. 그래서 민주주의의 적을 법적 수단들로 억압하는 방어적 민주주의로부터 민주주의를 지키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 시작되었다. 민주시민의 육성, 좌우 양극단의 정당들이 동력을 얻는 원인의 해소 내지 완화 등 보다 근본적인 문제해결을 지향하는 것이다.

즉 시민에 대한 정치교육, 시민사회의 동원을 포함하는 시민사회의 적극적 참여를 통해 급진주의 세력들로부터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적극적 노력을 하는 것이다. 좌우 양극단의 정당을 지지하는 시민들이 갖고 있는 정치적 불만을 진지하게 다루고 그들 중 민주주의적 숙려의 과정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잠재적 온건론자들을 분리시키는 전략을 포함하는 보다 근본적이고 다차원적인 접근방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이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법에 의한 정당금지는 점차 냉전시대와 이념시대의 유물로 폄하되고 있다.

이와 같은 인식의 확산에 따라 독일의 정치는 정당해산절차와 점차 거리를 두고 있고, 독일 헌법재판소의 전․현직 재판관들까지도 냉전시대에 형성된 법리를 시대에 맞게 재구성하여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는 실정이다. 유럽인권재판소의 판례도 정당해산에 비례의 원칙을 엄격하게 적용할 것, 따라서 정당해산을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할 것을 요구함으로써 정당해산요건의 강화론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헌재 독립성 지키지 못하면 국제사회 신망 사라질 것

정당해산요건의 재구성은 정당해산제도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맥락에서 이해하는 데서 출발한다. 정당의 강제해산은 원칙적으로 포괄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는 정당의 자유와 정치과정의 개방성에 대한 심대한 제한이다. 또 집권당에 의한 정치적 경쟁자의 배제인 만큼 그것이 정당화되려면 매우 중대한 사유가 존재하여야 한다.

그러한 사유는 어떤 정당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반하는 정치이념을 단순히 선전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폭력을 사용하거나 폭력을 사용하도록 선동하여" 자신의 정치적 이념을 힘으로 관철함으로써 자유로운 정치과정으로서의 민주주의를 위협할 때에만 존재한다고 본다.

우리 헌법재판소는 최근 세계헌법재판관 회의를 유치하여 성공적으로 개최함으로써 그간 헌법재판의 발전을 위한 노력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우리 헌법재판소가 국제사회로부터 진정 존중받기 위해서는 국제적 관심이 쏠리고 있는 통합진보당 사건에 대한 심판에서 국제인권법이 요구하는 엄격한 법치국가적 기준을 준수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통합진보당에 대한 심판에서 과거 독재정권들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조작한 공안사건에서 사법부가 독립성을 충분히 견지하지 못하곤 했던 대한민국의 굴곡진 사법사가 재현된다면, 헌법재판소가 그간 쌓아올린 국내적 권위는 물론 국제사회에서의 신망도 순식간에 사라질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통합진보당측 변호인단이 최후변론에서 말한 것처럼 통합진보당사건에서 정녕 역사와 법의 심판대에 오른 것은 우리 헌법재판소이다. 헌법재판소가 현자로서의 지혜와 선비정신으로 과거 정치적으로 민감한 공안사건에서 우리 사법부가 보여 왔던 굴욕의 역사를 단절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덧붙이는 글 정태호 기자는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입니다.
#박근혜 #통합진보당 #해산 #헌법재판소 #통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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