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 매달 1~2일 의무휴업 급속 확산”을 보도하고 있는 서울방송 화면 갈무리(2012. 2.10.)
SBS
이번 서울고법의 판결은 골목상권 보호나 상생 등을 목적으로 한 유통산업발전법의 실질적인 입법취지를 고려하지 못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그 대신 재판부는 대형마트 영업규제가 소비자 선택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얼핏 보면 다수 소비자의 이해를 앞세운 듯 보이기도 하지만, 정작 이 판결의 결과로 인한 이득은 소비자에게가 아니라 대형마트를 운영하는 자본에게로 돌아갈 듯싶다. 판결은 맞벌이 부부의 증가로 야간이나 주말이 아니면 장보기가 어렵고, 일반 가정도 편의시설이 열악한 전통시장 이용에 불편을 겪는다는 걸 근거로 내세웠다. 그러나 '곳곳에 크고 작은 마트'가 들어선 현실에서 대형마트가 아니면 장보기가 불편하다는 주장이 얼마나 설득력을 갖는지는 의심스럽다.
이번 판결은 유통재벌들의 영업 규제가 '전통시장이나 소상공인 보호를 위한 공익적 측면'이 존재한다고 보고 이를 적법하다고 판단해 온 원심의 판결과는 배치되는 것이다. 이에 대한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어떻게 나올지는 예단하기 어렵지만, 다시 좌절감에 빠질 영세 상인들을 생각하면 씁쓸하기 짝이 없다. 대통령 선거의 이슈로 떠올랐던 '경제민주화'는 이제 법원에서조차 외면받고 있는 것일까.
사람들은 법을 잘 모른다. 일상 속에서 "그런 법이 어디 있어?"라고 말할 때, 법이란 일종의 상식적 '법 감정'에 불과하다. 그래도 법의 구속을 받지 않고 선량한 시민으로 잘도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법이 자신의 삶을 규제할 수 있는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것이라는 걸 깨달을 때쯤엔 이미 법은 그들의 편이 아니기 쉽다.
"법대로 하자"고?도덕규범 가운데 사회생활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최소한 불가결하며 강제적으로라도 준수시켜야 되는 것이 법규범이라 하여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라고 불린다. 따라서 이 '강제적으로라도 준수시켜야 되는 법 규범'은 정의에 입각하여야 하며 약자의 편에 서는 것이어야 한다.
사법부가 '정의의 최후 보루'인 것은 법관이 독립하여 오로지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한다는 전제 위에 서 있는 수사다. 재판은 당사자의 신분이나 계급, 종교, 사상 등의 사회적 지위와 관계없이 불편부당하게 이루어지므로 약자에게도 '정의를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난한 서민들이 마땅한 구제 수단을 갖지 못할 때 '법대로 하자'고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거기에는 법은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무관하게 공평무사할 것이란 믿음이 존재한다. '법대로'를 외치는 것은 자신의 정당성에 대한 믿음이 법의 정당성의 신뢰로 이어질 때에만 가능한 주장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법이 복잡하게 얽힌 이해의 조정자 구실을 도맡게 되어 버린 오늘, 법은 더 이상 본래적 의미에서 '도덕의 최소한'이지 않다. 법이 사회적 약자에게도 선을 실현시켜 줄 것이란 기대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법전 속에 잠자고 있는 '사법적 정의'법은 언젠가부터 강자, 부자의 것이 되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경구는 자본과 권력의 편이 되어 버린 오늘의 사법적 정의란 '법전' 속에 잠자고 있을 뿐이라는 강력한 반어다. 오늘의 법은 서민의 소박한 정의에 대한 믿음 따위엔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엄청난 액수의 수임료와 성공보수와 내로라하는 전관예우, 한정 없이 길어지기만 하는 재판 과정 따위와 감히 대결할 수 없는 사회적 약자들에겐 법은 더 이상 정의의 실현 과정일 수 없게 된 것이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사회적 기득권을 추인하면서 약자의 무력감을 확인하는 걸로 기능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