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바브웨 빅토리아폴스의 한국인 부부가 운영하는 자선유치원
이안수
아프리카를 여행 중에 짐바브웨 빅토리아폴스에서 자선재단을 운영하고 있는 한 부부의 집에 초대받았습니다. 그날 밤, 그 부부가 어떻게 그곳에 오게 되었는지를 소상하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남편은 우리나라 대기업 오너의 신임을 받는 그룹비서실 임원이었습니다. 남편의 승승장구는 회장님이 돌아가시고 그 아들에게 실권이 승계되면서 그룹의 쇄신을 위해 아버지의 사람들이 물러났습니다. 남편은 남미를 책임지는 남미장으로 발령 났습니다.
한 대륙의 수천 명을 호령하는 자리였습니다. 직원뿐만 아니라 국가 공무원조차도 남편이 만나자고 해서 거절한 경우는 없었다고 했습니다. 무엇이든 가능한 그 상황에서도 그룹의 중심에서 멀어진 좌천이라는 인식과 자신감으로 스스로 퇴직을 하고 자신의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남편의 요구에 한 번도 미루거나 거역한 적이 없었던 공무원들도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전화를 걸면 번번이 선약이 잡혀있다는 답변을 받아야 했습니다.
결국 그룹을 이탈해서 스스로 설립한 회사는 오래지 않아 문을 닫았습니다. 또다시 두 번째 회사를 설립했지만, 이 또한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사업의 실패가 앗아간 것은 재산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남편은 사회성까지 잃고 즐겨가던 동창회도 나가지 않게 되었고 친한 친구조차 만나지 않았습니다.
당시 여행사를 운영하고 있었던 부인이 단안을 내렸습니다. 한국 회사를 접고 남편이 아는 사람이 전혀 없는 짐바브웨로 간 것입니다.
그곳에서 부인은 다시 작은 여행사를 시작했고 남편은 게스트하우스를 시작했습니다. 그 수익금으로 유치원을 세워서 조손가정의 아이들을 돌보고 주말에는 에이즈 환자가 있는 빈민가정을 찾아서 의약품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날 밤 남편이 말했습니다.
"저는 그룹에 몸담고 있을 당시 제 말대로 모든 것이 돌아갔습니다. 제가 퇴직을 하고서야 비로소 사람들이 순종했던 것은 내가 아니라 내가 속한 거대한 조직이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빈손으로 내가 아니라 남을 위해 노동을 바치는 지금이 행복한 것은 지금 내 주위의 사람들은 조직이 아니라 나의 선한 생각에 순종하기 때문입니다." #3지난 12월 2일 어둠이 완전히 내린 뒤에 지리산으로 들었습니다. 차를 만들고 계신 전문희 선생님은 바로 지은 더운밥으로 저희 부부의 배를 불린 다음, 지리산의 어두운 밤길에 차를 몰아 한 카페로 안내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