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원에 뺨 맞은 방송작가... 월급은 10년째 80만원

[공모-20대 청춘! 기자상] 화려한 방송 뒤 비참한 방송 작가

등록 2014.12.29 12:13수정 2014.12.29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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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한 달 전 일을 그만뒀다. 아침 생방송 작가로 일한 지 1년만이었다.
나는 한 달 전 일을 그만뒀다. 아침 생방송 작가로 일한 지 1년만이었다. freeimages

나는 한 달 전 일을 그만뒀다. 아침 생방송 작가로 일한 지 1년 만이었다. 지금까지 4년을 교양 프로그램(정보, 다큐멘터리, 시사 프로그램 등) 방송 작가로 일하면서 5번 이직했다. 방송 작가들은 보통 한 프로그램을 6개월 이상하면 경력으로 '쳐준다'는 암묵적인 룰이 있고, 1년 이상 하면 '할 만큼 했다'는 인식도 있다. 나는 할 만큼 했다. 더 이상 그곳에서 버티면서 살아가지 않아도 된다.


방송 작가에 대한 환상을 가진 사람을 많이 만나봤다. 그 어떤 환상과 마찬가지로 방송 작가에 대한 환상도 현실과는 다르다. 새벽 3시가 넘어서 퇴근해서도 컴퓨터를 켜놓은 채 책상 앞에 앉아서 잘 때도 있고, 밥 때를 놓쳐서 끼니를 거르는 일도 부지기수, 퇴근하고도 시도 때도 없이 전화로 업무 지시를 받아 전화벨만 울려도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다.

그런 중에 시청률 경쟁과 상사의 '갈굼'으로 스트레스도 받는다.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으로도 출근해도 괜찮을 만큼 근무 환경이 자유로운 방송계이지만, 침을 뱉고 돈을 찢어 얼굴에 던지는 등 상상을 초월하는 갈굼이 있는 곳도 여기다.

최저임금에 대해 방송하면서 정작 자신은 한 달에 80만 원도 못 받는 작가 이야기, 직원을 때리고 모욕하는 사장의 행태를 보도하면서 정작 자신은 카메라 뒤에서 온갖 모욕을 당하는 작가 이야기. 방송가의 민낯은 이렇다. 연예인의 은밀한 사생활이 아니라 방송 제작진의 비참한 사생활. 이게 바로 방송가의 진짜 이야기다.

방송 작가는 무슨 일을 해요?

"방송 작가는 무슨 일을 해요?"


'방송 작가'라고 소개하면 항상 이런 질문을 받는다. 사람들은 방송 작가 하면 대부분 방송 대본 쓰는 일을 상상한다. 하는 일은 약간씩 차이가 있지만 방송 작가들은 대부분 이런 일을 한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으로 포털 사이트 뉴스 란을 확인한다. 출근길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출근하자마자, 밥 먹다가도, 퇴근길 버스에서도, 자기 전까지 끊임없이 인터넷을 뒤지면서 이야기가 될 만한 무언가를 찾아낸다. 이게 바로 아이템 찾기다.


아이템을 정하면 그때부터 전화 취재와 섭외를 한다. "이거 하나만 알려주세요, 제발 한 번만 출연해 주세요." 상대방이 퉁명스럽게 전화를 끊어도 다시 전화해 웃으면서 얘기해야 하는 일. 취재가 끝나면 그 내용을 형식에 맞춰서 글로 정리한다. 피디가 촬영해야 할 장면부터 출연진이 읽을 대강의 내레이션, 인터뷰이에게 물을 질문, 받아야 할 예상 답변을 쓰는 작업이다.

촬영이 끝나면 작가는 하루 온 종일 책상에 앉아 꼼짝없이 키보드를 두들긴다. 촬영 테이프에 나오는 장면과 인터뷰 내용을 글로 받아 적는 '프리뷰' 작업 때문이다. 퇴근할 때가 되면 눈이 따끔, 꼬리뼈는 욱신, 팔목은 시큰, 온 몸에 피로가 얹힌다. 이 작업이 끝나면 받아 적은 촬영 내용을 반영해 편집 내용을 글로 정리한다. 편집이 끝나면 영상을 확인하면서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고, 영상이 완성되면 자막을 쓰고 방송 대본을 쓴다.

"메인 작가랑 팀장 피디가 자꾸 '아이템 안 올리냐'면서 쪼는 말이 듣기 싫어요. 내가 안 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일하면서 그랬던 건데 억울하고 짜증도 나고. 밤늦게 퇴근하는데 어떻게 여섯시에 일어나서 아이템을 올리라는 건지…"(3개월차 방송작가 H)

보통 한 방송을 만드는 제작팀이 두 팀 이상일 때가 많다. 때문에 아이템 선점을 위한 전쟁을 치른다. 방법은 간단하다. 인터넷 뉴스를 눈이 빠지게 보고 있다가 적합한 기사를 발견하는 즉시 아이템 게시판에 올리는 것이다. 이때 가장 먼저 기사를 올린 팀이 아이템을 선점한다. 그리고 선점에 실패한 작가들은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한다.

섭외도 경쟁이다. 채널이 돌아가지 않을 만큼 기구한 사연을 가진 사람을 찾으려고 눈에 불을 켠다. 수단과 방법은 가리지 않는다. 지난 4월 세월호 침몰 사고가 있었을 때는 섭외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 워낙 큰 사안이니만큼 모든 방송이 세월호 사고에 매달렸다. 아침 생방송 작가인 나도 진도에 가야 했다.

나는 2박 3일 동안 진도 체육관을 어슬렁거리면서 사고 피해자 가족을 섭외해야 했다. 자식들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는 가족들에게 '얼마나 마음이 안 좋으세요. 자제 분이랑 마지막에 나눈 대화가 뭔가요.' 이런 질문을 해야 하는 것이다. 뒷목부터 머리까지 피가 쏠리는 느낌을 그때 처음 받았다.

진도로 몰려든 '기레기'에 대한 반감이 심해지면서 방송국도 잔뜩 긴장했지만, 취재를 멈추진 않았다. 매시간 촬영과 섭외 진행사항을 단체 채팅방으로 보고했다. 별다른 수확 없이 시간만 흐르자 팀장 피디는 다급해졌는지 문자 하나를 보냈다.

"다른 팀에서는 유족 인터뷰 시도하다 뺨까지 맞았다더라. 그렇게 무리해서 하라는 건 아닌데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조금 더 힘써줘라."

유족 인터뷰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압박이었다. 피디들이 팽목항과 진도군청에서 촬영하고 있을 때, 나는 혼자 진도 체육관 2층 객석에 염탐꾼처럼 앉아 있다가 이 메시지를 봤다.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눈물이 났다.

내가 특수고용 노동자였다니

 허구한 날 밤샘 노동과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작가들. 그래서인지 1~2년 정도 하다가 아예 다른 직업을 찾는 사람들도 많다.
허구한 날 밤샘 노동과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작가들. 그래서인지 1~2년 정도 하다가 아예 다른 직업을 찾는 사람들도 많다. freeimages

허구한 날 밤샘 노동과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작가들. 그래서인지 1~2년 정도 하다가 아예 다른 직업을 찾는 사람들도 많다. 보통 주 6일, 하루 10~12시간 근무가 기본인 방송 일. 하룻밤을 꼬박 새는 날까지 따져보면, 1일 8시간인 법정 근로시간은 우습게 뛰어 넘는다.

일은 힘든데 힘든 만큼 보상 받지 못하는 현실은 생계를 위협한다. 내가 맨 처음 다큐멘터리 막내 작가로 외주제작사에서 일했을 때 받은 월급은 80만 원이었다. 6개월 후 다른 프로그램으로 옮겼을 때는 100만 원을 받았다.

일하는 시간을 계산해 보면 내가 받던 시급은 2700~3600원 정도. 2010년 당시 최저 임금인 4110원에 훨씬 못 미치는 액수였다. 하물며 지금 최저임금은 5210원. 아직도 많은 막내 작가들이 한 달에 80만 원을 받으면서 일한다. "내가 막내일 때도 80만 원 받았는데, 지금도 80만 원이야. 10년이 지나도 안 바뀌더라." 내가 만났던 메인 작가들이 하나같이 했던 말이다.

"외주 제작사에 있을 때 방송 제작 중에 결방됐는데 돈을 못 받았어요."
"저는 본사에 있는데 3주 동안 방송 죽었을 때도 계속 출근하고 돈 못 받았어요."

막내 작가를 벗어난 방송 작가는 월급이 아니라 방송 편수마다 돈을 받는다. 그래서 특집 방송이 편성돼 방송을 못하거나, 방송 제작 중에 갑자기 제작이 중단되는 경우에는 돈을 받지 못한다.

내가 아는 한 작가가 저녁 시사프로그램에서 일한 적 있었다. 그 작가가 속한 팀에서 2달 동안 제작하던 방송이 있었는데, 방송국 국장이 방송 불가 판정을 내렸다. 취재가 부족하고, 이 시점에 왜 이 아이템을 하는지 명분이 없다는 이유였다. 자신이 그 아이템을 진행하라 승인했던 건 까맣게 잊은 것 같았다. 결국 방송은 송출되지 못했고 작가는 아직도 돈을 받지 못했다.

노동자에게 야근 수당을 안 주고 밤새 일을 시키는 것은 불법이다. 노동자에게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돈을 주거나, 일을 시키고 돈을 주지 않는 것도 불법이다. 그리고 해고 사유와 절차를 무시한 채 노동자를 해고하는 것도 불법이다. 그런데 왜 방송 작가들은 이 모든 걸 참아내고 있는 걸까. 그 이유는 방송 작가가 '특수고용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특수고용 노동자는 한 마디로 노동자라고 부를 수 없는 노동자다. 방송국에서 혹은 외주 제작사에서 직원처럼 일하고 임금을 받지만 법적으로는 '개인 사업자', 바로 프리랜서 작가인 것이다.

나는 방송 작가가 특수고용 노동자라는 걸 얼마 전 처음 알았다. 올해 가을, 외주 제작사를 상대로 서브 작가들의 원고료 인상 투쟁을 하면서였다. 우연히 내가 속한 팀의 서브 작가 원고료가 연차에 맞지 않게, 터무니없이 적게 책정됐다는 걸 알게 되면서 이 싸움은 시작됐다.

나와 작가들은 회사에 문제를 제기하기 전에 노동운동 활동가와 노무사에게 이 일을 상의했다. 방송 작가는 특수고용 노동자이기 때문에 사측을 상대로 싸워서 이기는 게 쉽지 않다는 말을 그때 처음 들었다.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내가 밤을 새서 야근해도 야근수당을 못 받는 게 당연한 것이고,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것도 법적으로 문제될 게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중 그 누구도 개인사업자로서 내 출퇴근 시간을 마음대로 조정한 적 없었다. 우리는 방송국과 외주 제작사에게 할 일과 업무 스케줄을 지시받았고, 필요할 경우엔 취재 방향까지 지시받았다.

외주 제작사와의 싸움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서브 작가들이 단체 행동 의사를 비치면서 부당하게 책정된 임금을 바로잡을 걸 요구하자 회사는 당황했다. 다음 날 회사 대표가 작가들의 이력서를 모아 체크하고, 우리 요구대로 원고료를 인상해 주었다.

회사는 한 번도 작가 원고료를 작가들과 단체로 협상한 적이 없는 것 같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방송 작가들은 개별 면접을 보고, 면접 중에 원고료를 협상하기 때문이다. 면접 때 고료에 대해 얘기하지 않으면, 일을 시작하고 월급을 받을 때까지 원고료에 대해서 먼저 말해주는 회사는 많지 않다. 그래서 생각보다 많은 방송 작가들이 첫 월급을 받기 전까지 자기 원고료가 얼마인지 모른다. 면접 때 원고료에 대해서 물어보면 자신을 뽑지 않을까봐 먼저 물어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걱정은 근거 없는 걱정이 아니다. 내가 맨 처음 막내 작가 면접을 봤을 때 나를 뽑았던 외주 제작사 본부장은 나를 앉혀 놓고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가 너를 왜 뽑은 줄 아니? 면접 볼 때 월급 얘기를 안 해서야. 요즘 면접 보러 와서 얼마 줄 건지 물어보는 애들이 있는데, 너무 계산적이고 순수하지 못한 것 같아."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씁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방송 작가 일은 쉽게 그만 두기도 하지만 해고 당하는 일도 많다. 내가 일한 아침 생방송에서도 세 명이나 해고를 당했다. 한 번은 방송국 국장이 시청률이 잘 안 나온다며 외주 제작사 메인 작가를 해고했다. 외주 제작사 팀장 피디는 일을 못한다는 이유로 자기 팀의 서브 작가와 피디를 해고했다.

나도 막내 작가일 때 해고를 당한 적이 있다. 날 해고한 사람은 방송국 노동조합에 가입한 피디였다. 아직도 왜 해고했는지 이유는 모른다.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메인작가에게 날 자르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게 해고 이유의 전부였다. 그 일로 메인 작가와 서브 작가 그리고 나까지 모두 일을 그만 뒀다. 모양새는 제 발로 걸어 나왔어도 실제로는 해고였다.

방송작가가 노동자가 아닌 특수고용 노동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다른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소식이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2007년 12월부터 시작한 재능교육 학습지 노동자 투쟁이 벌써 7년을 꽉 채웠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은 아직도 회사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학습지 교사, 보험설계사, 트럭 기사, 택배서비스 기사 같은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자신은 노동자이니 노동권을 인정하라며 외치고 있다.

아직 이렇다 할 결과가 없는 투쟁들이지만 나는 이들이 부럽다. 같이 권리를 주장할 노동조합이 있기 때문이다. 방송 작가는 노동조합이 없다. 한국방송작가협회가 있고 각  방송국마다 방송작가협회가 있지만 나 같은 작가들에게는 그림의 떡 같다. "방송 작가의 저작권과 작가들의 제반 권익을 보호"한다는 한국방송작가협회는 입회비가 100만 원이나 되고, 가입조건도 까다롭다. 막내 작가 월급 80만 원은 10년 넘게 화석처럼 굳어져 있지만 권익을 말하는 조직에서 이런 문제로 목소리 높이는 걸 보지 못했다.

"회사가 그렇게 단번에 원고료를 높여줬을 때 그런 걸 느꼈어요. 아, 내가 그 동안 너무 저자세로 나왔던 건가? 이렇게 얘기하면 바뀌는 건데 내가 너무 소심했나?"

지난번 원고료 투쟁을 함께 한 작가가 나에게 한 말이다. 혼자일 땐 저자세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여럿이 뜻을 같이 하면 더 이상 저자세일 필요가 없다. 원고료 투쟁 경험 이후, 상습적으로 원고료를 늦게 지급하던 외주 제작사에 대해 한 번 더 단체 행동을 했을 때 나는 확신했다.

돈이 없어 못 준다던 원고료가 일부지만 제 날짜에 입금됐고, 본부장의 공식적인 사과도 받았으며 식비 지원까지 얻어냈다. 그 전에는 불평만 하고 있었지 이렇게 바꾸는 건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화석을 깨기 위해 필요한 건 거창한 게 아니다. 여러 명의 목소리와 행동이면 된다. 변화가 없다면 앞으로 10년이 지나도 '월급 80만 원'이라는 화석은 깨지지 않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20대 청춘! 기자상 응모글
#방송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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