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한 날 밤샘 노동과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작가들. 그래서인지 1~2년 정도 하다가 아예 다른 직업을 찾는 사람들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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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한 날 밤샘 노동과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작가들. 그래서인지 1~2년 정도 하다가 아예 다른 직업을 찾는 사람들도 많다. 보통 주 6일, 하루 10~12시간 근무가 기본인 방송 일. 하룻밤을 꼬박 새는 날까지 따져보면, 1일 8시간인 법정 근로시간은 우습게 뛰어 넘는다.
일은 힘든데 힘든 만큼 보상 받지 못하는 현실은 생계를 위협한다. 내가 맨 처음 다큐멘터리 막내 작가로 외주제작사에서 일했을 때 받은 월급은 80만 원이었다. 6개월 후 다른 프로그램으로 옮겼을 때는 100만 원을 받았다.
일하는 시간을 계산해 보면 내가 받던 시급은 2700~3600원 정도. 2010년 당시 최저 임금인 4110원에 훨씬 못 미치는 액수였다. 하물며 지금 최저임금은 5210원. 아직도 많은 막내 작가들이 한 달에 80만 원을 받으면서 일한다. "내가 막내일 때도 80만 원 받았는데, 지금도 80만 원이야. 10년이 지나도 안 바뀌더라." 내가 만났던 메인 작가들이 하나같이 했던 말이다.
"외주 제작사에 있을 때 방송 제작 중에 결방됐는데 돈을 못 받았어요.""저는 본사에 있는데 3주 동안 방송 죽었을 때도 계속 출근하고 돈 못 받았어요."막내 작가를 벗어난 방송 작가는 월급이 아니라 방송 편수마다 돈을 받는다. 그래서 특집 방송이 편성돼 방송을 못하거나, 방송 제작 중에 갑자기 제작이 중단되는 경우에는 돈을 받지 못한다.
내가 아는 한 작가가 저녁 시사프로그램에서 일한 적 있었다. 그 작가가 속한 팀에서 2달 동안 제작하던 방송이 있었는데, 방송국 국장이 방송 불가 판정을 내렸다. 취재가 부족하고, 이 시점에 왜 이 아이템을 하는지 명분이 없다는 이유였다. 자신이 그 아이템을 진행하라 승인했던 건 까맣게 잊은 것 같았다. 결국 방송은 송출되지 못했고 작가는 아직도 돈을 받지 못했다.
노동자에게 야근 수당을 안 주고 밤새 일을 시키는 것은 불법이다. 노동자에게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돈을 주거나, 일을 시키고 돈을 주지 않는 것도 불법이다. 그리고 해고 사유와 절차를 무시한 채 노동자를 해고하는 것도 불법이다. 그런데 왜 방송 작가들은 이 모든 걸 참아내고 있는 걸까. 그 이유는 방송 작가가 '특수고용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특수고용 노동자는 한 마디로 노동자라고 부를 수 없는 노동자다. 방송국에서 혹은 외주 제작사에서 직원처럼 일하고 임금을 받지만 법적으로는 '개인 사업자', 바로 프리랜서 작가인 것이다.
나는 방송 작가가 특수고용 노동자라는 걸 얼마 전 처음 알았다. 올해 가을, 외주 제작사를 상대로 서브 작가들의 원고료 인상 투쟁을 하면서였다. 우연히 내가 속한 팀의 서브 작가 원고료가 연차에 맞지 않게, 터무니없이 적게 책정됐다는 걸 알게 되면서 이 싸움은 시작됐다.
나와 작가들은 회사에 문제를 제기하기 전에 노동운동 활동가와 노무사에게 이 일을 상의했다. 방송 작가는 특수고용 노동자이기 때문에 사측을 상대로 싸워서 이기는 게 쉽지 않다는 말을 그때 처음 들었다.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내가 밤을 새서 야근해도 야근수당을 못 받는 게 당연한 것이고,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것도 법적으로 문제될 게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중 그 누구도 개인사업자로서 내 출퇴근 시간을 마음대로 조정한 적 없었다. 우리는 방송국과 외주 제작사에게 할 일과 업무 스케줄을 지시받았고, 필요할 경우엔 취재 방향까지 지시받았다.
외주 제작사와의 싸움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서브 작가들이 단체 행동 의사를 비치면서 부당하게 책정된 임금을 바로잡을 걸 요구하자 회사는 당황했다. 다음 날 회사 대표가 작가들의 이력서를 모아 체크하고, 우리 요구대로 원고료를 인상해 주었다.
회사는 한 번도 작가 원고료를 작가들과 단체로 협상한 적이 없는 것 같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방송 작가들은 개별 면접을 보고, 면접 중에 원고료를 협상하기 때문이다. 면접 때 고료에 대해 얘기하지 않으면, 일을 시작하고 월급을 받을 때까지 원고료에 대해서 먼저 말해주는 회사는 많지 않다. 그래서 생각보다 많은 방송 작가들이 첫 월급을 받기 전까지 자기 원고료가 얼마인지 모른다. 면접 때 원고료에 대해서 물어보면 자신을 뽑지 않을까봐 먼저 물어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걱정은 근거 없는 걱정이 아니다. 내가 맨 처음 막내 작가 면접을 봤을 때 나를 뽑았던 외주 제작사 본부장은 나를 앉혀 놓고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가 너를 왜 뽑은 줄 아니? 면접 볼 때 월급 얘기를 안 해서야. 요즘 면접 보러 와서 얼마 줄 건지 물어보는 애들이 있는데, 너무 계산적이고 순수하지 못한 것 같아."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씁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방송 작가 일은 쉽게 그만 두기도 하지만 해고 당하는 일도 많다. 내가 일한 아침 생방송에서도 세 명이나 해고를 당했다. 한 번은 방송국 국장이 시청률이 잘 안 나온다며 외주 제작사 메인 작가를 해고했다. 외주 제작사 팀장 피디는 일을 못한다는 이유로 자기 팀의 서브 작가와 피디를 해고했다.
나도 막내 작가일 때 해고를 당한 적이 있다. 날 해고한 사람은 방송국 노동조합에 가입한 피디였다. 아직도 왜 해고했는지 이유는 모른다.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메인작가에게 날 자르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게 해고 이유의 전부였다. 그 일로 메인 작가와 서브 작가 그리고 나까지 모두 일을 그만 뒀다. 모양새는 제 발로 걸어 나왔어도 실제로는 해고였다.
방송작가가 노동자가 아닌 특수고용 노동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다른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소식이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2007년 12월부터 시작한 재능교육 학습지 노동자 투쟁이 벌써 7년을 꽉 채웠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은 아직도 회사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학습지 교사, 보험설계사, 트럭 기사, 택배서비스 기사 같은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자신은 노동자이니 노동권을 인정하라며 외치고 있다.
아직 이렇다 할 결과가 없는 투쟁들이지만 나는 이들이 부럽다. 같이 권리를 주장할 노동조합이 있기 때문이다. 방송 작가는 노동조합이 없다. 한국방송작가협회가 있고 각 방송국마다 방송작가협회가 있지만 나 같은 작가들에게는 그림의 떡 같다. "방송 작가의 저작권과 작가들의 제반 권익을 보호"한다는 한국방송작가협회는 입회비가 100만 원이나 되고, 가입조건도 까다롭다. 막내 작가 월급 80만 원은 10년 넘게 화석처럼 굳어져 있지만 권익을 말하는 조직에서 이런 문제로 목소리 높이는 걸 보지 못했다.
"회사가 그렇게 단번에 원고료를 높여줬을 때 그런 걸 느꼈어요. 아, 내가 그 동안 너무 저자세로 나왔던 건가? 이렇게 얘기하면 바뀌는 건데 내가 너무 소심했나?" 지난번 원고료 투쟁을 함께 한 작가가 나에게 한 말이다. 혼자일 땐 저자세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여럿이 뜻을 같이 하면 더 이상 저자세일 필요가 없다. 원고료 투쟁 경험 이후, 상습적으로 원고료를 늦게 지급하던 외주 제작사에 대해 한 번 더 단체 행동을 했을 때 나는 확신했다.
돈이 없어 못 준다던 원고료가 일부지만 제 날짜에 입금됐고, 본부장의 공식적인 사과도 받았으며 식비 지원까지 얻어냈다. 그 전에는 불평만 하고 있었지 이렇게 바꾸는 건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화석을 깨기 위해 필요한 건 거창한 게 아니다. 여러 명의 목소리와 행동이면 된다. 변화가 없다면 앞으로 10년이 지나도 '월급 80만 원'이라는 화석은 깨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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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원에 뺨 맞은 방송작가... 월급은 10년째 8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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