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석아빠의 바람 "죽어선 아이 안아볼 수 있을까"

[인터뷰] '세월호 잊지 않을게 문화제' 기획한 윤솔지씨

등록 2014.12.30 13:28수정 2014.12.30 21:19
2
원고료로 응원
a  (좌측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고 오영석 군, '영석아빠' 오병환씨, '잊지 않을게' 문화제를 준비한 전 팩트TV PD 김시현씨(좌)와 윤솔지씨(우).

(좌측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고 오영석 군, '영석아빠' 오병환씨, '잊지 않을게' 문화제를 준비한 전 팩트TV PD 김시현씨(좌)와 윤솔지씨(우). ⓒ 김예지, 윤솔지


"형. 내가 죽어서 다른 데 간다면 나는 영석이와 다른 데에 가겠지? 그래도 돼. 그런데 다만 그 갈라지는 길목이 있다면, 나... 내 아들. 영석이 한 번만 안아보고 갈 수 있을까? 그런 날이 올까?"

광화문 광장을 지키는 '영석아빠' 오병환씨가 '민우아빠' 이종철씨에게 건넨 말이다. 6개월째 노숙 중인 두 사람과 세월호 유가족들은 모두 이런 마음을 품고 연말연시를 맞을 터다. '세월호 특별법'이 시행을 앞둔 세밑, 아들딸의, 가족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가슴을 여미는 유가족들의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다.

그들의 마음을 잊지 않겠다는 이들이 2014년 마지막 날 광화문 광장에 선다. 저항과 연대의 상징인 '록페스티벌' 무대와 더불어 유가족, 유가족과 함께한 시민들, 일반 국민들이 어우러져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일명 <아듀'14 광화문 "잊지 않을게" 문화제>(아래 '잊지 않을게 문화제')다.

이 '세월호 유가족'들을 위해 세상에서 둘도 없는 문화제를 준비한 윤솔지씨를 지난 28일 전화와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작가이자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윤씨는 동생 구보현(단원고 2학년 10반)양을 잃은 오빠 구현모 학생에게 영어를 가르친 인연으로 세월호 단원고 유가족 옆을 지켜왔다고 한다.

현재 '세월호 304 잊지 않을게' 팟캐스트와 페이스북 페이지를 공동으로 운영 중인 윤솔지씨는 "자칫 공연이 위주가 될 것 같아 걱정"이라며 "문화제만큼이나 두 아빠와 노란리본 광장을 지나며 한 해 동안 얼마나 많은 어른들이 잊지 않겠다는 다짐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는지" 봐 달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윤솔지씨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오후 3시 04분부터 새벽 1시까지 열리는 '록페'


a

ⓒ 아듀'14 광화문 "잊지 않을게" 문화제


- '잊지 않을게 문화제'는 어떻게 준비하게 됐나요?

"처음엔 이렇게 크게 판을 벌일 계획이 아니었어요. 추운 겨울에 인적 드문 광화문을 지키고 있는 영석아빠, 민우아빠가 작은 문화제를 열 수 있을까 하고 물어서 연락이 닿는 밴드들을 섭외하면서 시작됐죠.  

사실 팟캐스트로 304명이란 희생자 수가 얼마나 큰지 알아보기 위해 유가족, 예술인, 정치인, 언론인들 200여명을 인터뷰했었거든요. 304명을 목표로요. 그리고 고 박수현군의 버킷리스트에 있는 유명뮤지션들의 사인을 모으는 일에도 동참하기도 했거든요. 세월호 문제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던 밴드들과 안부를 주고 받았던 것이 이번 문화제에 큰 도움이 됐어요."


- 애초 31일 4시 16분에 시작한다고 알려졌었는데, 시간이 앞당겨졌어요. 밴드 규모가 늘어서인가요?
"세월호와 관련해서 연락을 취해왔던 뮤지션들에게 이번 기회에 모두 연락을 해 봤는데, 거의 20여개 밴드가 흔쾌히 이번 참여의사를 밝혀 왔어요. 원래 4월 16일을 의미하는 4시 16분에 행사를 시작하기로 했는데, '남는 자리 없나요?'라며 연락이 와서 할 수 없이 이 희생자 수를 의미하는 3시 04분에 시작하게 됐어요. 안타깝게도 그 후에는 (뮤지션 섭외를)'마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졌죠(웃음)."

- 그간 광화문 광장에선 유가족들의 단식 농성 외에도 영화인들의 '세월호 추모영상제'나 문화예술인들의 '세월호 연장전' 등이 열렸었는데요. 이번 '잊지 않을게 문화제'에서 더 강조하고 싶었던 점이 있었다면요.
"오롯이 영석이, 민우 나이인 고등학교 2학년의 학생들이 와도 '어른들이 잊지 않고 우리를 위해 항상 여기에 있었구나. 세상에 아직 책임감 있는 어른들이 많구나'하면서 문화제에 자연스레 섞일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게 뮤지션들이나 유가족분들을 섭외할 때 꼭 설명했던 사항이기도 하고요."

<아듀 '14 잊지 않을게 문화제>는....

광화문을 수개월째 지키고 있는 영석아빠, 민우아빠를 주축으로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위와 시민들이 뭉쳐 세월호 참사를 아파하고 함께 해준 국민들을 위해 마련한 문화제다. 오는 12월 31일(수) 오후 3시 4분부터 신년 타종 후 새벽 1시까지 광화문 광장에서 3가지 광장(열정의 광장, 기억의 광장, 노란리본의 광장)으로 나뉘어, 세월호 특별법이 발효되는 2015년에도 국민들에게 변하지 않는 관심을 촉구할 예정.

세종대왕상이 있는 '열정의 광장'에서는 3호선 버터플라이, 구남과 여라이딩 스텔라, 한음파, 로큰롤라디오, 로다운 30 등 20여개의 록밴드가 참여, 세월호 희생자 수 304인을 의미하는 오후 3시 04분부터 타종 후 1시까지 공연을 진행할 예정이다. 또한 끊임없이 세월호에 대해 의문을 제기해 온 새가 날아든다, 이이제이, 시사통, 과이언맨 등 팟캐스트 패널들이 발언대에 선다. 현장에 설치되는 LED 전광판을 통해서 세월호 참사 관련 영상도 상영된다.

이순신 장군상이 있는 '기억의 광장'에서는 그간 저항예술제, 세월호 연장전 등을 비롯해 개인적인 예술활동까지 세월호 참사를 꾸준히 작품으로 표현한 예술가들의 작품들이 재구성된다.

현재 천막, 노란리본공작소, 서명대 등 광화문의 모든 활동들이 진행되는 '노란 리본의 광장' 에서는 그간 전국서 활동해 온 피켓, 사진, 현수막, 노란 리본 등의 전시와 함께 '4.16 서명지킴이'들이 세월호 새누리당 측 진상조사위원들의 불합리함을 표현하는 격파 퍼포먼스도진행할 예정이다.

- 참여 뮤지션
강백수밴드, 구남과 여라이딩스텔라, 로다운 30, 로큰롤라디오, 한음파, 소울트레인, 아이씨사이다, 예리밴드, 아폴로 18, 조관우, 반, 임정득, 후추스, R4-19, 3호선버터플라이, 브리즈, 고래야.

오프닝: 임정득, 노란리본국악단, 행복한 영혼들(안산고등학교 합창단)

참여 뮤지션들 "정치적으로 비쳐져 안타깝다"

- '3호선 버터플라이'나 '구남과 여라이딩스텔라', 조관우 등 유명 뮤지션들이 다수 참여해서인지 거의 록페스티벌 규모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예요.

"거의가 아니라 록페스티벌이죠!(웃음). 반씨나 조관우씨는 이번에 세월호 추모곡을 발표할 예정이에요. 3호선 버터플라이, 구남과 여라이딩스텔라는 올 초 제주 4.3사건 다큐영화음악을 함께 하면서 알게 됐는데, 세월호와 관련해서는 꼭 연락을 달라고 미리부터 말씀해 주셨었어요. 어휴, 모두 의미 있는 만남이라서."

- 밴드들 참여 규모가 크다보니 힘든 점도 많았을 것 같은데요.
"딱히 없다는 게 특이해요. 뭐랄까, 모두들 십시일반으로 도와주는 분위기라서요. 이번 기회로, 기회가 없었지 많은 분들이 세월호 문제에 아직도 분노하고 있고,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할까요."

- 여러 뮤지션들을 섭외하면서 겪은 에피소드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고래야는 노란리본 직접 달고 오는지 아니면 현장에서 준비해주는지 묻더라고요. 평소에 도 노란리본을 했다는 거겠죠? 예리밴드와 아이씨사이다는 그러더라고요. 이렇게 나오는 것을 왜 정치적이라고 보이는 것인지, 그런 현실이 안타깝다고.

하지만 록밴드의 본질인 저항과 분노, 그리고 솔직한 발언들로 아픔을 공유하는 일에 꼭 동참하고 싶다고 했어요. 정말 훈훈한 건 뮤지션들도, 저희들도 마음이 통해서인지 이런 기회가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있다는 점이에요. 두 아빠들도 이런 분위기에 조금은 놀라셨는데, 요즘은 매일 공연 준비하고 걱정하느라 더 바빠진 거 같더라고요."

- 특이하게 '이이제이'나 '새가 날아든다', '나는 친박이다' 등 팟캐스트 패널들도 참여해요.
"그들 모두 보이지 않는 곳에서 꾸준히 세월호를 이야기 한 분들이거든요. 이분들이 무대에서 함께 하는 게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일부 유명인들보다 세월호와 관련해서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진 분들을 섭외하려고 노력했고요."

"머리는 조금 더 차갑게, 가슴은 조금 더 뜨겁게 함께 해 주세요"

a  광화문 농성장의 크리스마스트리와 아이들의 증명사진

광화문 농성장의 크리스마스트리와 아이들의 증명사진 ⓒ 김예지


- 세월호 단원고 유가족 분들은 이날 문화제에 어떻게 참여하시나요?

"1월 1일 안산에서 그동안 감사했다는 의미를 담아 떡국 나눔 행사를 할 예정인가 봐요. 처음 예상보다 일이 커지다 보니, 좋은 마음에서 유가족 여러분들이 올라올 예정이시고요. 팟캐스트 진행자 분들과 마찬가지로 무대에 서실 것 같아요."

- 1월 1일이면 세월호 특별법이 시행되잖아요.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활동도 그렇고 앞으로 어떻게 진행돼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개인적으로, 지성인이라면 분노에 대한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특히 초반에 세월호에 대해 대외적으로 이야기하고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셨던 분들이라면 더더욱 이요. 그리고 이 시대의 어른들이라서 미안했다고 했던 분들이라면 감정의 지구력이 있어야 한다고 보고요.

끊임없이 생각해요. 어떤 길로 가야하며 개인적으로 어떤 입장을 취해야하는지. 특히 너무 엉켜있는 부분을 풀어나가기 위해서는 동력이 필요한 것이 사실인데요. 그런데 그런 분들이 현장에 다 함께 모인 경우가 거의 없어요. 구체적으로 사안을 구분해서 각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진상규명이라는 구호가 무색하지 않게요."

- 문화제를 준비하면서 많은 생각들을 했을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문화제 때 광장을 찾는 시민들에게 어떤 당부나 바람이 있다면요?
"유가족분들이 많이 위축되어있어요. 계절이 바뀌고 추워질 때마다 상실에 대해 더 느끼게 되고, 몸과 마음이 힘들어하는 것이 눈에 보여서 안타깝습니다. 그저 아픈 사람들이에요. 엄마, 아빠란 이유로 그리고 아직 꽃피지 못한 고등학생 아이들을 잃었다는 이유로 버티고 있는 분들입니다.

영석아빠가 얼마 전에 민우아빠한테 그러시더군요. '형. 내가 죽어서 다른데 간다면 나는 영석이와 다른 데 가겠지? 그래도 돼. 그런데 다만 그 갈라지는 길목이 있다면 나. 내 아들. 영석이 한 번만 안아보고 갈 수 있을까? 그런 날이 올까?'라고.

그러면서 두 분이서 한참 우는 것을 봤어요. 아마 그 마음일 거예요. 그 마음을 기억해주세요. 세월호 참사를 목격한 동시대인으로서 위로해주세요. 그리고 특별법이 발효되는 1월 1일부터 머리는 조금 더 차갑게, 가슴은 조금 더 뜨겁게 함께 해주세요."
#세월호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기고 및 작업 의뢰는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취재기자, 현 영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서울 4.3 영화제' 총괄기획.


AD

AD

AD

인기기사

  1. 1 "하루가 지옥" 주차장에 갇힌 주택 2채, 아직도 '우째 이런일이' "하루가 지옥" 주차장에 갇힌 주택 2채, 아직도 '우째 이런일이'
  2. 2 체코 대통령, 윤 대통령 앞에서 "최종계약서 체결 전엔 확실한 게 없다" 체코 대통령, 윤 대통령 앞에서 "최종계약서 체결 전엔 확실한 게 없다"
  3. 3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4. 4 억대 연봉이지만 번아웃 "죽을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길 억대 연봉이지만 번아웃 "죽을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길
  5. 5 "윤 정권 퇴진" 강우일 황석영 등 1500명 시국선언... 언론재단, 돌연 대관 취소 "윤 정권 퇴진" 강우일 황석영 등 1500명 시국선언... 언론재단, 돌연 대관 취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