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야당의 대표와 최고위원을 선출하는 전당 대회가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그간 물망에 오르거나 자가 발전하며 분위기를 살폈던 인물들이 후보 등록을 마쳤다. 전당 대회는 그 당의 거대한 흐름을 만들거나 전환하는 주요한 사건이다. 당권 주자들은 이러한 사건의 내부에서 치열한 고민을 던지고 선택을 받아야만 한다.
근 10년간 사건의 중심엔 당을 살리겠다는 구호가 버티고 있다. 대통령 선거의 단골 구호가 '경제를 살리자'는 것이듯, 새정치민주연합의 당권 선거는 '죽어있는 당을 살리겠다'고 하는 것이다. 당권 주자는 10년 동안 변함 없었다. 누군가 당 대표를 맡아 당을 죽여 놓으면 또 다른 주자가 당을 살리겠다고 나서서 산소 호흡기를 설치하는가 싶더니 어느샌가 또 죽여놓기를 10여 년간 반복했다.
위와 같은 장면을 지켜보는 국민은 '도대체 저 당이 왜 저러나'하는 의아함을 느끼기도 하고, 기대를 저버린 사람도 많다. 심지어 전당 대회나, 전국 선거에 동원의 대상으로만 쓰고, 나머지 기간엔 당원을 신경쓰지 않는 풍토 때문에 '국회의원끼리만 운영하는 정당'이라는 오명도 지속되고 있다. 당을 망치는 게 국회의원인데, 당의 지도부도, 혁신위를 비롯한 모든 위원회의 구성도 망친 자들이 돌려가며 맡는다. 당연히 변화 하는 것은 없다. 변화의 의지도 싹트기 어렵거니와, 변화가 가능한 구조도 아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당원이라면 당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강력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당의 지도부는 그런 점에서 한 번도 당원들의 기대에 어긋나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한편 지난 수년 동안 재벌은 서민의 골목 시장까지 진입을 끝 마쳤다. 빵집과 슈퍼, 치킨집 등 많은 영세 업자들이 수십 년을 해온 자신의 소중한 경제 터전을 잃어야 했다. 쫓기고 쫓겨 빈민층과 빚쟁이로 전락해가는 데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것의 근본 원인은 재벌의 순환 출자 구조를 무한정 허용한 정치권의 패착 때문이었다. 그간 새누리당은 이것이 낙수 경제라며 돈이 아래로 흐르고, 일자리가 창출되는 기재라고 적극적으로 비호했다. 반면 야당은 서민 경제 침탈 등의 용어를 동원해 이를 막고자 순환 출자 금지 법안 등을 내세웠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이건희의 삼성이 에버랜드 주식의 1%만 가지고도 모든 계열사를 통으로 움켜쥐고 흔드는 일이 가능했던 것은 모두 이 순환출자 때문이었다.
그런데 재밌는 사실은, 야당을 죽이고 살리는 일을 그들끼리 십 수년 동안 돌려막기로 기능했던 것이 바로 이 순환출자 때문이라는 것이다. 순환 출자로 세금 한 푼 없이 합법적 상속과 일감 몰아 주기가 가능했고, 거대한 마케팅 능력을 통해 시장 개척을 용이하게 해주었던 재벌 운영의 기조를 새정치민주연합이 그동안 유지해왔던 것이다. 재벌의 경영권과 제1야당의 경영권 유지 방식이 어떻게 같을 수 있을까. 당 대표는 지역 위원장을 선임하도록 돼 있다. 지역 위원장은 대의원을 선임한다. 그렇게 선임된 대의원들은 다시 지역위원장을 옹립하고, 그렇게 짜여진 구조 속에서 당 대표를 선출하니, 이게 하나마나한 게임이 되는 것이다. 하나마나한 게임에선 정치 신인의 도전도, 새로운 흐름과 전환도 나오기 어렵다.
하나마나한 게임이라고 불리우는 이유는 하나 더 있다. 바로 우리 경제의 독이 되고 불법으로 규정되어 있는 담합 행위다. 담합은 시장 질서를 교란시키고, 혁신이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한다. 시장 지배력을 힘으로 한 재벌들의 담합은 사대강에서 보듯 국책 사업을 이용해 천문학적인 세금을 도둑질을 하거나, 시장 경제의 공정성을 저해하여 새로운 아이디어를 사장하며, 도전 의식 자체를 꺾는 범죄 행위다. 새정치민주연합은 계파의 수장이거나 계파의 대리인들이 지도부 자리를 꿰차고 앉아 몇 개월 앞으로 다가온 전당 대회의 룰을 담합했다. 매번 당권선거나 대권 선거의 룰이 이렇게 선거 바로 직전 담합 구조로 이뤄진다. 그 결과 새로운 사람이 들어갈 틈도, 혁신도, 정의도 내세울 기회가 원천 차단되는 것이다.
담합의 형태는 구체적으로 컷오프 제도로 나타난다. 당 대표와 최고 위원의 선출을 분리하는 이유는 보다 강력한 권한을 몰아주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런 강력한 권한을 가진 당 대표 선거에 나갈 수 있는 사람은 3명이다. 혁신의 주자가 아무리 많아도 계파의 수장이 아니면 예선 탈락의 고배를 마셔야 한다. 그것도 컷오프의 투표는 당 대표가 임명한 지역 위원장(더불어 국회의원, 시도지사, 시군구청장)이 투표한다. 순환 출자 고리가 작동하는 첫 번째 지점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과거 새천년민주당 시절 무명의 노무현을 대통령까지 만들었다. 이 땐 정치 신인이 당차게 도전해 선출도 가능했고, 역동성 있게 흥행과 희망을 만들어 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매번 대표 선출 전당 대회는 그들만의 동원 정치로 막을 올리고 내린다.
경제 체제와 정치 체제의 확연한 차이점은 의사 결정의 구조와 이념이다. 경제에서는 주주독재를 용인하고 능률(이윤)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 그러나 정치에서는 민주주의 과정을 중시하고 정의를 이념으로한다. 그러나 새정치민주연합의 대표 선출 구조는 철저히 재벌경제인들의 그것과 다름 없다. 우리나라에서 2, 3세 재벌의 아들, 딸들이 움켜쥐고 있는 제도적, 문화적, 시장적 독과점은 경제를 혁신하게 하지 못하는 근원이다.
같은 이치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이 마치 재벌을 모방한 것 같은 경영을 하고 있기에 혁신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러고서 재벌에 대한 비판이 제대로 설 수 있겠는가. 혁신이 구조적으로 차단된 정당의 말로는 어찌될 것인가. 도전의 기회가 열린 정당, 역동적인 흐름이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정당, 신구 세대가 조화로이 작용하는 정당, 당원들의 애정이 뭉쳐져 정의로움을 내뿜는 정당으로의 변화는 또 한 움쿰 멀어졌다. 2015년의 해가 새로이 떠오른다. 정치의 정의로운 해는 언제 뜰 것인가.
2014.12.31 13:55 | ⓒ 2014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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