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일배 코오롱 정투위원장
이병관
- 10년 싸움을 마감했지만 단식의 영향으로 입원 중이다. 몸 상태는 어떤가."위 전체에 염증이 퍼져있다. 의사가 단식을 더 오래했으면 위궤양까지 갈 뻔했다고 한다. 점점 회복 중이어서 1월 중순에는 퇴원할 예정이다."
- 심리적으로 어떤가. 10년 싸움이 마무리돼서 속 시원하지 않나."십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것처럼 시원할 줄 알았다. 반대로 허전하고 아쉽다. 정리해고 철회를 위해 10년을 달려왔는데, 그 성과를 얻지 못해서다. 그런 한계에도 최선을 다한 투쟁이었다고 생각한다. 후회는 없다."
- 합의안 도출 과정이 궁금하다."해고노동자 78명 중 함께 싸우기로 한 12명은 한 달에 한 번씩 구미에서 모여 회의를 했다. 어느 회의에서 싸움의 끝을 가정해봤다. 세 가지 경우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 금전적인 보상 ▲ 정리해고철회 ▲ 스스로의 포기. 그 시점이 닥쳤을 때, 다수가 동의를 한다면 세 가지 중 하나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동지들이 교섭권을 저에게 위임했다.
지난달 22일, 사측이 이 사태를 풀 수 있는 가안을 가져왔다. 회사가 노사문화 발전 기금을 제3의 기관에 출연해 저희들을 비롯한 노사갈등 현장에 사용하자는 것이었다. 다음날 동지들에게 합의안을 보여줬고 의견을 물었다. 다수결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 소수 의견은 없었나."한 명의 동지가 합의안을 못 받겠다고 했다. 정리해고가 철회되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이다."
- 이웅열 코오롱 회장은 10년 넘게 정리해고 문제를 외면했다. 갑작스럽기도 했는데, 이 회장과의 만남이 어떻게 이뤄진 것인가. 뒷얘기가 궁금하다."긴 싸움을 하다보니 명분이 중요한 것을 알게 됐다. 회사 측은 10년 가까이 정리해고 문제를 외면해왔다. 교섭 과정에서 사측은 노사 합의의 명분이 필요하다고 얘기를 했다. 그래서 사측과 상의해 이동찬 명예회장의 49재에서 명분을 만들기로 했다. 이동찬 회장은 '노사화합의 상징'이라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었다. 그래서 이 회장 49재가 열린 길상사에서 이웅렬 회장을 만나게 됐다."
- 그렇다면, '아름다운 노사 합의'라고 봐도 될까."그 표현은 어려울 것 같다. 정리해고 철회를 얻지 못했기 때문에 아름답다는 말은 적절치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앞이 보이지 않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10년 가까이 싸움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후회없이 최선을 다한 싸움'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 10년 가까운 투쟁, 3년 넘는 천막 농성, 불매운동, 42일 단식 등... 그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2006년 3월의 일이다. 당시 동지 3명이 15만 4천볼트 송전탑에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또 다른 동지들이 회사 본관 로비도 점거하고 있었다. 고공농성자들의 상황이 악화되면서 조급해졌다. 그들을 내려오게 할 방법을 찾았다. 회장을 직접 만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정말 눈에 보이는 게 없었다.
새벽 5시, 동지 10명과 이 회장 성북동 자택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 곳은 회장 가족이 사는 가정집이었다. 정상적이지 않는 방법이었다고 생각한다. 10년을 싸우면서 유일하게 후회하는 장면이다. (이동찬 명예회장) 49재 때 이 회장을 만나서 직접 사과했다."
"우리만 먼저 끝냈다는 미안함이 크다"- 아직 해결되지 않는 정리해고 문제로 굴뚝에 올라가 있는 쌍용자동차와 스타케미칼 해고노동자 등에게 하고 싶은 말은?"우리만 먼저 끝냈다는, 미안한 마음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고맙게도 다른 동지들이 포기할 수 있는 상황에 최선을 다했다고 평가를 해주더라. 그리고 우리는 단지 코오롱과의 싸움만 끝났을 뿐이다. 앞으로 정리해고 문제를 비롯해 박근혜 정권과 자본을 향한 싸움이 계속될 것이다."
- 퇴원 뒤 활동 계획은?"2010년부터 민주노총 경북본부 구미지부 조직부장을 겸하고 있다. 퇴원한 뒤에는 조직부장으로 돌아가 구미에서 노조 조직 활동을 할 예정이다."
- 코오롱에 이어 케이블방송 씨앤앰도 의미있는 노사 합의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쌍용자동차, 스타케미칼, 기륭전자 등 노동 문제가 여전하다. 그 이유는 정부가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큰 그림은 작은 그림들이 밑바탕이 돼야 한다. 박근혜 정권에 대한 공세는 지역의 노동자들이 먼저 공감하게 해야 한다. 현장에서는 박근혜 정권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자기 등 따뜻하게 하고 배부른 것에 관심이 많다. 구미 지역부터 '비정규직 철폐', '정리해고 철폐'의 구호가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하겠다."
- 마지막으로 코오롱 문제 해결을 응원한 국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연대해준 한 시민이 말했다. '우리가 당신들에게 도움을 주는 게 아니다, 당신들이 앞서서 싸워줘 오히려 우리가 고맙다'고. 지지하고 연대해준 분들에게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 또 코오롱 본사가 있는 과천 지역 시민들의 도움이 컸다. 10년을 투쟁하면서 과천이 고향처럼 느껴질 정도로 외롭지 않았다. 퇴원해서는 투쟁 사업장을 돌아보고 연대해준 분들에게 인사드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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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년 묵은 체증? 허전하고 아쉽기만 코오롱만 끝났지 박근혜와는 안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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