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대통령의 동생에게는 아무 일도 없었다

[정윤회 문건 중간수사 결과 발표 해설] 정윤회도 무사, 박지만도 무사

등록 2015.01.05 22:37수정 2015.01.05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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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중앙지방검찰청 3차장 유상범 검사가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정윤회-십상시 국정농단 청와대 보고서' 의혹 사건에 대한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3차장 유상범 검사가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정윤회-십상시 국정농단 청와대 보고서' 의혹 사건에 대한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이희훈

<세계일보>의 '정윤회-십상시 국정농단 보고서' 보도로 촉발된 검찰의 대대적인 수사는 '보고서 작성자의 자작극'으로 마무리됐다. 그러나 대통령기록물 유출자는 기소되고, 그걸 재깍재깍 받아본 대통령의 동생은 무사한,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또한 허위 보고서 작성자들의 작성 동기 역시 여전히 희미하다.

검찰 수사 결과를 짧게 요약하면 이렇다. ①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보좌관이던 정윤회씨는 아무 잘못도 없는데 억울하게 음모의 희생양이 됐다. ② 음모를 꾸미고 진행한 건 조응천 전 비서관과 박관천 경정이다. ③ 대통령의 친동생인 박지만씨는 이들과 가까이 지내고 청와대 기록물까지 보고 받았지만 잘못은 없다.

여전히 안개속인 범행 동기

기자에게 붙잡힌 박관천 경정 일명 '정윤회-십상시 국정농단 보고서' 유출 및 명예훼손 사건 수사 관련 4일 오전 박관천 경정(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이 피의자 신분으로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소환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기자에게 붙잡힌 박관천 경정일명 '정윤회-십상시 국정농단 보고서' 유출 및 명예훼손 사건 수사 관련 4일 오전 박관천 경정(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이 피의자 신분으로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소환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이희훈

검찰에 따르면 2013년 12월과 이듬해 1월 사이 박 경정은 정윤회씨, 또 그와 비선 모임을 했다는 3인방을 몰아내기 위해 집중 공작을 펼친 게 된다.

박 경정이 작성한 2013년 12월 27일자 보고 문서에는 '김아무개가 박지만, 정윤회 등과의 친분을 내세우며, 정윤회를 만나려면 현금으로 7억 원 정도를 들고 가야 한다고 말했다'는 대목이 등장한다. 이어 박 경정이 쓴 2014년 1월 6일자 보고서에는 <세계일보>가 보도했던 '정윤회가 청와대 3인방 등 십상시를 정기적으로 만나 국정에 개입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 박 경정은 2014년 1월 중 박지만씨에게 '정윤회의 사주를 받은 남양주의 카페 운영자가 오토바이를 타고 미행한다'고 보고했다. 검찰 수사에 따르면, 이는 모두 허위다.

이토록 대담한 일을 벌인 데에는 그만한 동기가 있었을 걸로 보는 게 타당하다. 하지만 검찰은 "박지만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역할 또는 입지를 강화하려는 의도로 추단된다"고 어정쩡한 설명을 내놨다. 조 전 비서관과 박 경정이 범행 자체를 부인하고 동기는 진술하지 않고 있어 그렇게 짐작할 뿐이라는 것이다.

대통령 기록물 꼬박꼬박 받아본 대통령의 동생


검찰 조사받는 박지만 회장 박근혜 대통령 동생인 박지만 EG회장이 15일 오후 서울중앙지검에서 '정윤회-십상시 국정농단 보고서' 작성 및 유출과정 관련 조사를 받기 위해 도착하고 있다.
검찰 조사받는 박지만 회장박근혜 대통령 동생인 박지만 EG회장이 15일 오후 서울중앙지검에서 '정윤회-십상시 국정농단 보고서' 작성 및 유출과정 관련 조사를 받기 위해 도착하고 있다.권우성

눈여겨 봐야 할 대목은 공직기강비서관실 보고서 상당수가 박지만씨에 전달됐다는 사실이다. 검찰에 따르면 2013년 6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총 17건의 보고서가 청와대 내부 보고 즉시 측근을 거쳐 박지만씨에게로 갔다. 그것도 복사본이 아니라 원본이 갔다.

조 전 비서관은 그 중 6건의 문서 전달을 지시했다고 인정하면서도, 맡은 업무 중 하나인 박지만씨 부부 관리와 관련된 내용이기 때문에 제공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박지만씨에게 전달된 나머지 문서들은 여러 사기업과 개인의 범죄 첩보, 탈세 의혹 등을 담고 있다.


17건의 보고서는 대통령기록물이다. 그 중 10건을 '공무상비밀'이라고 간주한 검찰이 이를 유출한 조 비서관과 박 경정은 기소한 반면, 17차례나 이 보고서를 받아 본 박지만씨에겐 어떤 혐의도 적용하지 않았다. 물론 이 17건은 물증이 남아있는 자료만이고, 유출된 보고서가 더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검찰 관계자는 박지만씨와 보고서를 전달한 측근을 "처벌할 수 없다"고 밝혔다. "내심 좋아했을 수 있지만 (보고서를 전달하라는) 별도의 지시 같은 게 없었다"는 이유다.

박지만씨가 측근을 통해 박 경정에게 자신을 미행한다는 소문의 진위를 알아봐달라고 한 것에 대해서도 검찰 관계자는 "결국 대통령 친인척으로서 안 좋은 소문이 나면 안 되니 이를 차단하는 차원에서 물은 거지, 부당하게 뭔가(청와대 정보)를 습득하려고 한 게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번 사건은 구도상, 본인들이 의도했든 그렇지 않았든, 대립하는 양쪽에 정윤회와 박지만이 있었다. 문건 내용이 사실이라면 정씨가 상처를, 그 반대라면 박씨가 상처를 입는 구도다. 그런데 결론은 둘 다 무사했다. 문건 내용이 허위였음에도, 박지만씨는 청와대 밖에서 자신과 관련된 보고서뿐 아니라 무관한 보고서까지 재깍재깍 보고 받았음에도, 또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이었던 박 경정에게 정씨에 불리한 소문의 진상을 알아보라고까지 했음에도, 그에게는 아무 일도 없었다.
#정윤회 #박지만 #권력다툼 #검찰 #국정농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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