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을 해서일까. 어떻게 찍어도 표정이 잘 산다. 현용씨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는 장소를 찾았다. 뒤로 보이는 건물이 현용씨가 첫 공연을 했던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이다.
장선애
현용씨를 다시 만난 건 지난 12월 20일 서울 혜화역 2번 출구 앞에서였다.
어릴 적 꿈의 무대였던 대학로는 그가 20대를 온전히 바친 삶 터이고, 학교이고, 현재이고, 또한 미래다. 2005년 대학 1학년 재학 중 첫 무대에 선 뒤, 지금까지 10년 동안 대학로에서 먹고, 자고, 연습하고, 공연하고 스태프로 살아 왔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토요일, 대학로는 젊은이들로 넘쳤지만, 그는 "한 번도 나만의 크리스마스를 지낸 적이 없다"고 했다. 공연은 연말이 가장 성수기고, 그 중에서도 크리스마스가 극성수기이기 때문이라는데, 아쉬워하는 기색은 전혀 없다.
"수많은 사람이 연극판에서 흔적없이 사라집니다.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대요."선배들이 평가하는 배우 신현용의 장점은 '기분좋게 못생겼다', '매력적으로 못생겼다'는 것이라고 한다. 설마... 현용씨는 현재 유명 극단인 '차이무'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그는 "단원이라기보다 공부하는 사람일 뿐"이라고 강조한다.
배우가 되고 싶다고 늘 연기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스태프로 무대를 만들기도, 다시 해체하는 일도, 공연 전 무대 인사 멘트나 홍보 활동을 하기도 한다. 개런티 없이 스스로 후원 모집부터 공연장 섭외, 홍보 등 모든 준비를 하고 무대에 오르는 워크숍 공연은 연극 청년들에게 너무나 중요하다. 그 모든 것이 공부고, 경험이다. 특히 스태프을 해보면 뭐가 감사한지 알게 되고, 무대가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고 한다.
그는 '택배왔어요', '보고싶습니다', '투룸쇼', '고스트', '오! 브라더스', '마르고 닳도록'같은 유명 연극에도 출연했다. 주연은 아니지만, 기라성 같은 배우들과 같이 무대에 선다는 게 대단한 일 아니냐는 말에 그가 손사래를 친다.
"제가 역량 대비 작품 편수가 많은 편인데요,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에요. 저보다 훨씬 준비돼 있고 좋은 배우들이 있는데 어쩌다 보니 제게 기회가 왔던 거죠."아무려면 그렇게 많은 지망생 중에 단역이든, 조조연이든 뽑는데 실력없는 사람을 선택하겠는가. 그래도 그는 "지금까지 했던 작품 중에 제대로 한 게 하나도 없다. 너무 못했다"고 거듭 강조한다.
"스물세살 때 했던 '보고싶습니다'가 제겐 참 의미있는 작품이었어요. 여주인공 동생 역이었는데 엄청 혼나면서 꾸역꾸역 해냈죠. 최근에 한 '마르고 닳도록'의 퇴역 대령 역할도 정말 못했어요."어디까지가 겸손인지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공연 일정이 없어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그러나 현실은유명 배우들이 텔레비전 토크쇼에 나와 배고팠던 무명 시절 이야기를 풀어놓곤 한다. '고생 끝에 낙이 온' 이들의 말은 특별히 마음 아프지도, 현실감도 느껴지지 않는 추억담일 뿐이어서 그저 가십거리로 소모되고 만다. 사람들에게 현재 배고프고 불안한 현장의 배우, 혹은 배우 지망생은 관심사가 아니다. 그것은 오로지 당사자의 몫일 뿐이다. 현용씨의 현실도 다르지 않다.
"어느 해 겨울이었는데 집에 들어가니까 전기도 가스도 끊겼더라고요. 주머니에 남은 8000원으로 찜질방에서 잠을 잤는데, 휴대전화를 누가 가져간 거예요. 그래서 다음날 연습에 늦어 혼났는데도 변명 같아서 얘길 안 했죠. 나중에 알고는 선배들도 다 겪어본 일인데 상의하지 않았다고 또 혼내시더라구요. 하하"그는 그래도 부모님한테 손을 벌리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썼다.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겠다고 큰소리쳤으니 저 자신에게 떳떳해야죠."고정 수입이 있는 것도 아니고, 공연이 늘 있는 것도 아니고, 유명 배우가 돼 가는 것 같지도 않고, 불안정한 시간이 계속되자 고교 시절 그의 강력한 지원자였던 아버지까지 취업을 권고하기에 이르렀다. 2012년 그가 두 달동안 연극판을 떠나있었던 이유다. 무엇보다 불효를 너무 오래한다는 생각에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근무 조건이 괜찮은 일이었지만, 그를 길게 묶어 두지는 못했다. 선배로부터 캐스팅 제의를 받고 미련 없이 대학로로 돌아왔다. 연극은 여전히 그의 가슴을 뛰게 하는 꿈이고 그가 갈 길이었다.
나의 사랑 나의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