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그래법의 실효성에 대해 많은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CJ E&M
그런데 비정규직을 2년 더 유예하라고 하니 이건 '장그래 법'이 아니라 '장그래 죽이기 법'이나 마찬가지다. 사측의 입장도 시큰둥하다. 철저히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의 입장에서 굳이 기간제 근로자의 근무 기간을 2년 더 연장한 후 이직 수당을 줄 이유가 없기 떄문이다.
노사 양측에서 환영하지 않는 이 대책을 고용노동부에서 내놓은 까닭은 무엇인가. 고용부는 그 근거로 설문 조사를 든다. 현장 기간제 근로자 1181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82.3%의 응답자가 고용 기간을 연장하기를 바란다는 답변을 했다고 한다.
언제 쫓겨날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기간 연장 여부를 묻는 질문에 당연히 연장을 희망한다고 하는 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설문, 뭔가 이상하다. 정작 정규직 전환에 대한 기간제 근로자의 의사를 묻는 질문은 온데 간데 없었던 것이다. 애초에 정규직 전환에 대한 선택지를 만들지 않은 채 기간 연장을 물어본 것부터 이 설문조사에는 오류가 내포되어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이처럼 당사자들의 의견은 제대로 듣지도 않은 채 비정규직 종합 대책이라는 거창한 이름의 대책안을 내놓은 정부의 저의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우리나라 비정규직 근로자는 올해 처음 600만명을 돌파해 전체 임금 근로자 3명 중 1명에 이른다.
하지만 이는 공식적인 수치일 뿐, 통계에 잡히지 않는 비정규직 수를 포함하면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예측된다. 2007년 계약 기간 2년으로 제한한 비정규직 보호법이 처음 시행된 이후 비정규직 수는 되려 늘었다. 이번 정부의 종합대책이 제2의 비정규직 양산 대책이 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일부 매체에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며 정규직에 대한 과보호를 걷어내고 비정규직에 대한 편견을 버리라 주장한다. 그러면서 기간제 근무 형태가 만연한 독일, 미국 등의 외국 사례를 든다. 말이야 좋은 말이다. 하지만 이들이 든 사례의 국가들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임금 격차, 복지 차별 등이 거의 없다.
거꾸로 말해 우리나라의 경우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임금 수준을 비롯한 전반적인 근무 환경 차이가 크다. 따라서 인식부터 바꾸라는 주장은 선후 관계가 맞지 않는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임금 격차는 2013년 기준 112만 1000원이었다. 그리고 이는 2004년 조사 결과의 두 배에 달하는 수치다. 이런 상황에선 인식을 바꿀래야 바꿀 수가 없다.
드라마 속 장그래나 현실 속 장그래에게 필요한 건 헛된 기대감을 주는 정책이 아니다. 적어도 근무 기간 동안만큼이라도 동료로서, 인간적인 대우를 받기를 바랄 뿐이다. "오늘 하루도 견디느라 수고했어. 내일도 버티고, 모레도 견디고, 계속 계속 살아남으라고" 오 차장의 위로 한 마디가 장그래 법보다 어쩐지 더 따뜻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왜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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