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케노구치 온천마을에 있는 신세이칸 료칸의 온천탕 안내판.
유혜준
울창한 삼나무 숲은 햇빛을 가려 응달을 만들었고, 길 위의 웅덩이 물을 꽁꽁 얼어붙게 만들었다. 이번에 규슈올레를 걸으면서 가장 많이 본 것은 삼나무와 편백나무 그리고 대나무였다. 삼나무와 편백나무는 일본 정부가 정책적으로 조림을 했단다. 일본은 숲 가꾸기를 오래전부터 아주 잘해왔다고 한다.
화산 지역은 대부분 나무가 없어 민머리처럼 보인다. 그런 곳에 꾸준히 삼나무와 편백나무를 심었다는 것이다. 삼나무와 편백나무는 잘 자라 울창한 숲을 만들어냈고, 그 나무들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잘라서 목재로 사용한단다. 베어난 자리에는 다시 어린나무를 심는다나. 그 덕분에 숲은 언제나 울창할 수 있었다.
김운용 과장은 일본의 조림 정책이 정말 잘 돼 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개발보다는 자연을 보존하는 게 더 어렵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하는 말이었다. 빽빽한 삼나무 사이로 길은 나 있었고, 우리는 그 길을 걸었다.
밀크랜드 팜을 지나 길을 건넜다. 그곳에는 우유가 들어간 아이스크림을 판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지만, 인기척은 없었다.
정오가 조금 지나 우리는 길 위에 돗자리를 펼쳤다. 세상에서 가장 정확한 시계는 배꼽시계라던가. 편의점에서 사온 도시락은 온기를 간직하고 있었다. 한 사람이 도시락을 하나씩 차지하고 먹기 시작했다. 너른 들판에서 비록 편의점에서 산 것이기는 하나 도시락을 먹기는 정말 오랜만이다. 도시락은 기대했던 것 보다 맛있었다.
개천을 따라 억새가 무성하게 자라있었다. 겨울 햇볕에 억새가 빛이 바랜 것일까? 억새는 빛깔이 유난히 옅어 보였다. 겨울이 깊어가기 때문이리라. 걷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멀리 산봉우리가 보인다. 능선이 여러 개 겹쳐져 있다. 구쥬산이라고 했다. 추수가 끝난 논은 텅 비어 있었고, 군데군데 잔설이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