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군수지원분야 제도개선 합의(외교부 및 국방부 홈페이지)
박기학
제도개선에 관한 미국의 합의 불이행은 비단 여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2014년, 우리 국방부와 주한미군은 군수지원 분야에서도 제도개선에 합의했다. 그 합의 내용은 이렇다. "대한민국 국방부와 주한미군사령부는 한국업체에 대한 한국정부의 우려와 관련 법령을 최대한 고려하여 '한국 계약업체'라는 용어에 대한 정의에 합의하고 이에 따라 군수비용 분담 시행합의서를 수정한다"(제도개선에 관한 교환각서 제3조1항)는 것이다.
위 합의에 대해서 우리 정부는 전쟁예비물자(WRM) 정비(2015년도 예산은 105억 원)를 '무늬만 한국업체'가 아닌 '실질적인 한국업체'가 맡을 수 있게 한국업체의 자격조건을 명확히 하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전쟁예비물자(WRM)란 |
전쟁예비물자란 전시에 미 공군작전부대를 수용하고 숙영시키기 위해 평시에 청주, 김해, 광주, 수원, 대구, 오산 및 군산 미 공군기지내에 저장하고 있는 물자들이다. 여기에는 항공기연료탱크, 폭탄 탑재장치, 청소도구, 숟가락 등이 들어있다. 전쟁예비물자의 정비에 소요되는 경비를 방위비분담금에서 지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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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7년부터 7년간, 주한미군은 WRM 정비를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PAE의 한국지사인 'PAE 코리아'에 맡겨왔다. 이에 입찰에 참여한 국내(중소)기업들은 PAE 코리아가 무늬만 한국업체(내국법인)일 뿐, '군수비용분담 시행합의서'에서 규정한 '한국업체'라고 볼 수 없다며 국방부에 계속 이의를 제기해 왔다.
한미 군수분야 방위비용 분담 시행합의서(2009〜2013년) 제3조4항은 "모든 군수분야 방위비분담금 사업이 한국 또는 그 영해에서 실행되어야 하며 한국정부 자금으로 획득될 모든 장비 및 보급품은 한국에서 제조되어야 하고 모든 군수분야 방위비분담 용역은 한국 계약업체, 한국철도공사 또는 한국군에 의하여 시행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3조4항은 방위비분담금이 우리 국민의 혈세인 만큼 이 돈이 한국 경제로 환류되어야 한다는 취지와 원칙 속에서 작성된 것이다. 따라서 시행합의서 상의 '한국업체'란 한국인이 전적으로 소유한 한국기업으로, 그 이익이 한국으로 귀속되는 기업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리고 이런 원칙 속에서 WRM정비가 처음 시작된 1992년부터 2006년까지 순수 한국기업이 정비를 맡아왔다.
PAE는 2006년 미국 최대 군수업체인 록히드마틴에 인수됐고, 바로 다음해인 2007년 1월부터 PAE 한국지사인 PAE 코리아가 한국업체를 제치고 WRM정비를 수주했다(록히드마틴은 2011년 PAE를 미국 사모펀드인 린드세이 골드버그에 매각했다). "국방부는 군수분야 방위비분담 사업의 종류와 범위 내에서 주한미군사령부 측 요구사항에 대한 입찰공고 권한, 협상 권한, 계약서 초안 작성 권한을 주한미군사령부에 위임한다"는 시행합의서 3조 2항을 근거로 들어서다. 언론 보도와 국방부에 따르면, PAE 코리아는 이러한 방식으로 2007~2014년 8년간 약 660억 원을 벌어들였다.
PAE 코리아는 서울에 주소지를 두고 있고 한국에 등록된 법인이다. 법인세도 한국에 납부하고 있다. 하지만 그 지분은 미국 본사(PAE)가 51%를, 한국 쪽이 49%를 보유하고 있다. PAE 코리아는 미국인과 한국인이 공동으로 대표를 맡고 있고, 그 이익금을 미국 본사로 송금한다. 때문에 PAE 코리아는 법인세법상 내국법인의 지위를 갖는다 하더라도 외국자본이 지배하는 법인이고 그 이익금을 미국본사로 송금하기 때문에 군수비용분담시행합의서 상의 '한국업체'로 볼 수 없다.
이에 우리 국방부는 '한국업체'의 정의를 명확히 하기 위해 군수비용분담 시행합의서의 한국업체 규정의 개정을 2014년 6월부터 주한미군에 요구해 왔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국방부의 무려 6차례의 회신 요구에도 무응답으로 일관했다.
미국은 10월이 돼서야 협상에 나와 "(PAE 코리아가) 한국 정부가 발급한 사업자등록증을 가지고 있고 한국에 세금을 납부하고 있으므로 한국업체"라는 주장을 고집했다. 이에 대해 우리 국방부는 임원진 구성과 주식 지분율을 한국업체의 자격기준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급기야 주한미군은 지난해 11월 24일 일방적으로 입찰을 진행해 PAE 코리아를 낙찰자로 재선정했다.
미국기업 한국지사가 한국업체라는 미국의 '억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