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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에는 모 언론사가 주최하는 '2015년 노사정 신년회'가 있었다. 노회찬, 천영세를 비롯해 노동계 사람들 백여 명이 모이는 큰 행사였다. 정기기고자로 초대받은 나는 입구에서 식당직원의 안내를 받았다.
"닭볶음탕을 드시려면 이쪽으로 앉으세요."
"다른 메뉴는 뭐가 있는데요?"
"보신탕이죠."
이곳은 보신탕 전문 식당이었다. 실내엔 특유의 냄새로 꽉 차있었다. 십년 넘게 반려견들과 함께 살고 있는 나로서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개고기 먹는 것을 처음 봤다거나 아무도 개고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 아니다.
세상에는 개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것 역시 하나의 취향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수의 사람들이 모이는 공식 회식을 보신탕집에서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듣자니 이 언론사가 주최한 2013년도 송년회도 이곳에서 열렸으며 '노동계 어르신들의 단골집'이라는 전언이다. 놀란 마음에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다.
"요즘 어떤 직장이나 단체의 회식을 개고기집에서 하는 경우가 있나요?"
다들 없다고 했다. 왜 없을까.
1. 애견인들이나 채식주의자들은 어찌 하오리까?
개고기는 매우 논쟁적인 음식이다. 단순한 입맛이나 문화적 취향, 라이프스타일과 정치적 견해까지 포함하여 개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부터 차마 먹을 수 없는 사람, 심지어 혐오하는 사람까지 극명하게 나뉜다. 하지만 회식에 앞서 개고기를 먹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안내는 없었다.
"새해를 따뜻하게 몸보신하면서 시작할 수 있도록"이란 초대 문자가 전부였다. 개고기를 먹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닭볶음탕이 준비되었지만, 40인 분뿐이었다. 늦게 도착한 사람들은 개고기를 먹든가, 그게 싫으면 식탁위의 남은 음식으로 허기를 채워야했다.
닭볶음탕과 보신탕의 가격이 3배 차이인 것은 논외로 치자. 개를 먹는 행위를 견딜 수 없어하는 사람들에게 이 자리는 어떤 자리였을까. 취향의 몰지각함과 무감각함을 폭력적으로 실감하는 자리가 아니었을까. 하물며 채식주의자에게 이 자리는 어떻게 느껴졌을까. '여우와 두루미'의 실사판이 아니었을까.
진보정당이나 환경단체, 여성단체 등 진보를 표방하는 단체의 회식에는 어김없이 채식주의자들이 존재한다. 진보정치담론에서 동물권과 생태문제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질수록 채식주의자들은 점점 많아질 것이다.
회식할 때마다 채식주의자들을 위해 신경을 기울이고, 심지어 다 같이 먹을 수 없다면 회식의 의미가 퇴색된다는 취지에서 아예 모두 채식으로 메뉴를 정하는 단체들을 접해 온 나로서는 개고기를 먹지 못하는 사람들을 배려하지 않은 회식문화가 기이하게 느껴졌다. 심지어 2013년도 송년회에 이어 두 번째라니, 문제제기하는 사람이 없었거나 묵살 당했다는 뜻이 아닌가.
만약 채식주의자와 무슬림이 회원의 절반을 차지하는 어떤 단체가 번번이 삼겹살집에서 회식한다면, 그 단체의 조직문화가 민주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차이의 존중이나 타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후진적인 정치성을 지닌 조직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다시 묻고 싶다. 절반 정도의 사람들이 개고기를 먹지 못하고 그 중 일부는 끔찍하게 여기는 어떤 모임의 회식을 2년 연속 보신탕집에서 하는 집단의 문화적 감수성은 어떤 상태일까.
2. 개식용이 '민족의 전통'인가?
"우리민족의 전통음식인 개고기 합법화를 위하여!"
농담반 진담반의 공식건배사가 울려 퍼졌다. 저것이 개식용에 대한 입장을 담은 구호라니 민망한 노릇이다. '개고기 합법화'는 섬세한 논의가 필요한 사안이지, 구호로 눙칠 이야기는 아니다. 현재 개식용은 합법도 불법도 아닌 법외 지대에 놓여있다.
육류의 도살과 부패, 항생제 사용 등은 법적으로 관리되어야 하지만 개를 합법적으로 도살하는 나라가 없다보니 국제기준이 없다. 한국정부가 이를 독자적으로 만들어 보편화하기도 어렵다.
합법도 불법도 아니다보니 동물학대와 비위생적인 생산·유통을 막을 수 없다. 개식용을 오만한 서구인들의 부당한 혐오에 맞서 지켜야 할 민족문화로 보는 시각도 시대착오적이다. '88올림픽'을 앞두고 개고기를 혐오식품으로 규정하여 퇴출시키려 했던 전시행정에 대한 반발심에서 멈춘 것이다. 그러나 이미 국내 애견인구가 천만 명에 달한다. 개식용자가 싸워야 할 상대는 브리짓드 바르도가 아니라 평범한 이웃인 것이다. 더욱이 요즘 국제사회에서는 한국보다 중국의 개식용이 더 입에 오르내린다. 자, 어디다 전선을 그어야 할까?
소위 '민족의 전통'이라는 개식용은 과거 마당에서 기르던 개를 복날에 잡아먹던 문화를 일컫는다. 키우던 개를 잡아먹다니 야만스럽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때는 보양과 죄의식 사이의 윤리적 긴장을 버리지 않았으며 그 결과 소규모 식용만 가능했다는 점에서 차라리 인간적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보다 더 야만스러운 것은 공장식 사육을 통해 공급받은 익명의 '식용견'들을 사시사철 대량으로 먹어 치우는 현재의 상태가 아닐까. 칼이 더 야만스러울까, 미사일이 더 야만스러울까.
개식용자들은 흔히 '식용견'과 '애완견'은 다르다고 말한다. 그런 구분은 먹는 사람 마음 편하자고 구사하는 논리에 불과하다. 실제로 식용견과 애완견은 품종으로나 생애사적으로나 구분되지 않는다. 애완견으로 키워지다가 유기되거나 병들거나 안락사 당한 개들이 도축되어 식용으로 팔리기도 한다. 품으면 애완견이고, 먹으면 식용견이다. 즉 인간이 개를 어떻게 대하느냐에 달려있을 뿐이다.
우리나라 인구의 1/5 이상이 개와 가족처럼 살고 있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여전히 개식용이 이루어지며 심지어 백여 명이 모이는 공식 회식이 보신탕집에서 버젓이 이루어진다. '민족의 전통'이란 우렁찬 건배사가 귓전에 떠나질 않는다.
타자를 배려하지 않는 일방적인 문화와 둔감한 정치성을 '민족의 전통'으로 보아야 하는 걸까? 개고기를 선호하는 '어르신'들의 입맛만큼이나 개식용을 견딜 수 없어하는 이들의 취향도 똑같이 존중되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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