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리 지역의 작은 마을치고는 꽤 많은 레스토랑과 숙박시설이 있었던 켄메어(Kenmare)
김현지
아침부터 계획에 없는 코스에서 오랜 시간을 머문 탓에 켄메어는 저녁이 되어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스님에서 30여 분을 달려 도착한 켄메어(Kenmare). 관광 마을로 유명한 도시답게 작은 마을이었지만 도시 어귀부터 알록달록한 건물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는 모습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한 때 할리우드 스타, 줄리아 로버츠가 유난히 이 곳을 좋아해 일년에도 몇 번씩 마을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우스개 소리로 켄메어에서 선글라스를 낀 입 큰 여자는 줄리아 로버츠라는 이야기도 있었다는데... 유명 스타의 방문 덕분인지 작은 마을이지만 이 근처에서 유명세를 띄고 있는 곳임은 분명하다.
일렬로 늘어선 마을의 번화가는 아일랜드 시골에서 느낄 수 있는 소박함보다는 고급스러운 레스토랑과 숙박 시설들 때문에 부자 마을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었던 작은 마을. 2시간 내내 아름답지만 다소 소박했던 자연만 감상했던 탓인지 화려하고 반짝이는 상점이 케리 여행의 감초 역할을 해주고 있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감탄한 '레이디즈뷰'다음 날 아침, 계획과는 달리 하루 더 케리 지역에 머물게 된 우리는 이곳의 절경을 하나라도 놓치고 싶지 않아 아침 일찍 숙소를 나와 레이디즈뷰(Ladiesview)로 향했다. 레이디즈뷰는 켄메어와 킬라니 사이에 있는 절경으로 킬라니 국립공원 중심부의 모습을 높은 지대에서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1861년 엘리자베스 여왕이 이곳을 방문하여 이 절경을 보고 감탄한 이후에 레이디즈뷰란 이름이 붙여 졌고 동시에 유명세를 타게 되었단다.
아일랜드는 날씨만 좋으면 어디든 예쁘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하루에도 날씨의 변덕이 심한 나라이다. 케리 지역은 산을 경계로 남쪽과 북쪽의 날씨가 매번 달라진다고 하던데 정말 그랬던 것일까? 아침부터 잔뜩 흐린 날씨와 구름이 하늘 가득히 깔려 있었지만 구름 너머 보이는 푸른 하늘이 왠지 오늘의 날씨에 대한 희망을 주는 것만 같았다.
숙소에서 킬라니를 지나 케리 순환도로를 타고 천천히 산의 정상을 향해 올라갔다. 자연적으로 형성된 작은 터널을 지나니 직감적으로 특별한 경치가 나타날 것만 같은 마음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사진으로는 제대로 느낄 수 없는, 눈으로 보아야만 그 진가를 여실히 알 수 있는 레이디즈뷰가 한눈에 들어왔다.
산의 정상에서 보는 레이디즈뷰는 이전에 보았던 정상의 모습과는 매우 다른 모습이었다. 한국의 산 정상에서 느꼈던 절경과는 달리 이곳은 산 정상이라기보다는 아주 넓고 완만한 구릉지대에 온 것 같았다. 정상에서 조금의 노력만 기울이면 산 아래까지 충분히 내려갈 수 있을 것 같은 완만함이었다.
"이상하네. 사진이 이렇게 안 나오는 곳도 여기가 처음일 거다." 3월의 헐벗은 산이라 그랬는지, 카메라 렌즈에 담기에는 너무 넓은 공간이라 그랬는지, 사진은 내가 원하는 느낌을 10%도 제대로 표현해주지 못했다. 내 눈에 보이는 것만큼 원하는 사진을 얻지 못해 툴툴거리는 나에게 남편은 조용히 커피 한잔을 손에 쥐어 주었다.
그제서야 내 속의 조바심이 녹아 내리는 느낌이었다. 사진으로 감동을 남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을 충분히 즐기고 마음에 새기는 것이었는데 어느새 나는 여행의 순수한 목적을 망각한 채 사진 찍기에만 급급해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