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차 낙농인 장선수씨, 스물두 살부터 젖소를 키웠다.
매거진군산 진정석
대학을 졸업한 선수씨에게 다가온 군 입대. 그도, 그의 아버지도, 이미 알고 있었다. 생산인력을 활용하도록 지원하는 병역대체 복무제도는 게임 S/W, 생활용품, 시멘트 요업, 수산물가공, 식음료, 신발, 애니메이션, 의료의약, 외항화물, 전기, 정보처리, 화학 등의 분야에 걸쳐있다는 것을. 아버지가 먼저 물꼬를 트며 말했다.
"군대 갈래? 농사 지을래?" "저는 소 킬(키울) 건데요."생뚱맞은 선택은 아니었다. 선수씨가 고2 때까지, 아버지는 농사와 젖소 키우는 일을 겸했다. 그는 절차를 밟아서 병역특례 후계농업경영인이 됐다. 아버지에게 도움을 받아 나포에 있는 한 농장을 임대했다. 젖소 150두를 키웠다. 스물두 살 청년은 오전 5시에 일어났다. 하루에 두 번, 오전 6시와 오후 6시에 젖 짜는 것부터 배웠다. 2001년 6월의 일이었다.
"괜히 했다고 후회한 적 있죠. 아플 때요. 그때는 화풀이 해야죠. 그래서 담배 피고, 술 먹잖아요. 솔직히 일은 안 힘들어요. 사이클만 알면, 농장 일은 돌아가요. 근데 제가 기계는 아니잖아요. 그래서 마인드를 바꾸는 거죠. 저는 사람을 써서 같이 일해요. 낙농은 80%가 혼자 하거나 식구들끼리만 하거든요. 그래도 농사철에는 잠 못 자고 일했어요."그는 낙농과 함께 논농사도 했다. 임대와 직접 하는 농사를 합해서 60필지(1필지에 1200평)를 짓고 있다. 남의 논 기계 작업하는 것까지 합치면 12만 평이다. 추수가 끝나도 일은 안 끝난다. 소 먹이로 쓸 볏짚을 거대한 마시멜로처럼 마는 일을 한다. 그 볏짚들은 나라 곳곳 소 키우는 집으로 보내진다. 그는 낙농 30%, 논농사 30%, 볏짚 작업 40%로 나누어 일한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