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시간 기차여행을 위해... MP3를 장만했다

[중국에서의 추억⑨] 이어폰을 꽂은 채 해바라기씨를 씹은 기차여행

등록 2015.02.04 11:49수정 2015.02.04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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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이 마르는 대로 떠나려고 했던 친구네 기숙사는 참 아늑했다. 두 명이 한 방을 쓰고 주방까지 딸려있었다. 내 친구와 방을 쓰던 룸메이트는 내 사정을 듣더니 기꺼이 머무는 걸 허락해줬다. 그리고 떠나는 날까지 싫은 내색 하지 않고 학교와 시내 이곳저곳을 구경시켜줬다.


잠깐 머무르려고 했던 게 길어진 가장 큰 이유는 MP3 플레이어 때문이었다.

"기차 안에서 절대 한국말 쓰면 안 된다. 한국인인거 티내지 말고 그냥 쥐 죽은 듯이 있어. 카메라도 꺼내지 말고. 어차피 겉모습은 같은 동양인이니까 말만 하지 않으면 모를 거야."

내가 혼자 여행을 떠난다는 말에 선생님은 신신당부를 했었다.

빗물에 젖은 MP3플레이어... 새로 사기 전에는 떠날 수 없었다

하지만 48시간 동안 기차를 타야하는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사진도 찍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건 고문과도 같았다. 그렇기에 나는 MP3플레이어를 벗 삼아 무료함을 달래려고 출발 전 노래를 잔뜩 다운로드 해놓았다.


a  당시 싸게 산 MP3플레이어. 아직도 보관하고 있다.

당시 싸게 산 MP3플레이어. 아직도 보관하고 있다. ⓒ 최하나


48시간을 반복해서 들어도 지루하지 않을 만큼 말이다. 그런데 빗물에 짐이 쫄딱 젖는 바람에 같이 넣어두었던 이게 고장이 났다. 아예 전원조차 켜지지 않는 상태였다. 그래서 결국 출발을 하루 미루고 전자제품을 파는 상가에서 새 MP3플레이어를 사기로 했다.

한정된 예산에서 저렴하게 사보겠다고 친구들을 끌고 몇 바퀴를 돌았을까. 빨간 MP3플레이어가 내 눈에 들어왔다. 용량은 512MB로 작은 편이었지만 USB가 본체에 달려있는 일체형이라 편리해보였고 무엇보다 가격이 저렴했다. 그렇게 나는 290위안에 새 MP3플레이어를 장만했다. 그리고 그 날 밤 친구에게 부탁해 노래를 다시 다운로드받고서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할 차비를 마쳤다.


사실 주자이거우가 있는 성도까지 가는 비행기 편도 있었다. 조금 더 비싸기는 해도 48시간의 고행을 감내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중국기차여행을 했던 사람들은 불편한 게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목적지에서 본 것 보다 여행을 하면서 창밖으로 본 풍경이 더 멋있었다니까. 그래서 기차여행을 꼭 해야 한다는 거야."

나는 친구들의 배웅을 받은 채로 드디어 48시간의 기차여행을 시작했고 그 말이 사실이라는 걸 몸소 느꼈다.

딱딱한 침대와 부드러운 침대 사이

a  중국 기차표 예매사이트에서 갈무리 한 좌석요금. 한국어버전이 제공된다. 실제로 제일 상단의 침대의 요금이 제일 저렴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중국 기차표 예매사이트에서 갈무리 한 좌석요금. 한국어버전이 제공된다. 실제로 제일 상단의 침대의 요금이 제일 저렴하다는 걸 알 수 있다. ⓒ ctrip


중국에서의 기차여행은 저렴한 편이다. 장시간 이동을 해야 한다면 침대칸이 좋다. 여기에도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4인이 한 칸을 공유하고 방처럼 되어있어 사생활을 보장받는 루안워(软卧:부드러운 침대라는 뜻)는 가족끼리 여행할 때 좋다. 침대가 딱딱하지 않고 공간도 비교적 여유가 있다.

좀 더 저렴하게 가고 싶다면 3층 침대가 양쪽으로 달려있는 6인실인 잉워(硬卧:딱딱한 침대라는 뜻)를 예약하면 된다. 1층 침대가 제일 비싸고 올라갈수록 가격이 싸진다. 당연히 맨 꼭대기는 앉아있을 수 없을 정도로 천장과 가까워 정말 잠만 잘 수가 있다. 그래서 3층 침대의 승객들은 낮에는 창가에 있는 조그마한 의자에 앉아 풍경을 감상하거나 1층 침대의 주인에게 양해를 구하고 함께 앉아있기도 한다.

나는 3층 침대칸의 맨 꼭대기를 예약했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그 누구의 손도 닿지 않을 정도로 높아 오히려 안전하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화장실을 갈 때마다 사다리를 타고 내려와야 한다는 점을 빼고는 만족스러웠다.

물가가 저렴한 중국이지만 기차 안에서 파는 것들은 달랐다. 밖에서 한 끼에 7위안씩 내면 먹을 수 있는 한 끼 식사가 무려 30위안이나 했다. 그것도 도시락인데. 그래도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그걸 사서 점심과 저녁 두 끼로 나눠 끼니를 해결했다.

이미 기차에서 파는 도시락이 비싸다는 걸 알았던 나는 출발 전 미리 먹을 것을 잔뜩 사가지고 탔다. 아침식사 대신에 먹을 통조림에 담긴 달달한 죽. 그리고 심심함을 덜어줄 과즈(瓜子: 해바라기 씨인데 이게 껍질 채 들어있어 직접 까먹는다. 중국인들은 장거리 여행을 갈 때 과즈를 챙긴다)까지. 덕분에 입이 즐거운 여행길이 될 수 있었다.
#중국 #기차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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