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서울시내 한 대형마트 계산대 모습.
연합뉴스
애초에 정부의 계획대로라면 시간제 일자리는 20~40대의 기혼여성들로 임신과 육아 때문에 경력이 단절된 노동인력을 적극적으로 시장에 다시 진입 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실제 네덜란드나 독일 등 고용률을 단기간에 끌어올린 국가들의 사례를 검토하면서 시간제 일자리를 확대하려고 했을 때 정부는 남성가장 1인이 가계수입을 부담하는 모델에서 남성 전일제 1+시간제 여성 0.5로의 변화를 통해 1.5 모델로의 이행을 적극적으로 제시했다.
1.5 모델을 통한 박근혜 정부의 메시지는 이렇다.
'남성 1인이 부양을 책임질 수 있는 사회는 지나갔다. 이제는 여성도 적극적으로 가정의 수익에 보탬이 될 수 있는 틈새시장을 노려야 한다. 신자유주의가 바라는 여성은 전업주부가 아니라 일과 가정 모두를 손에 쥘 수 있는 능력자다.' 물론 현실은 다르다. 직장에서는 대충 오전시간이나 때우고 가는 알바생이고, 집에서는 뼈 빠지게 고생하는 남편에 비해 반찬값이나 벌러 다니는 존재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기혼여성들은 육아와 가사노동에 더해 파트타임으로 나서지 않으면 염치없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사례 2] "홈쇼핑 콜센터에서 오전 9시에서 오후 1시까지 일하는 김미영씨(39세)는 남편 등에 떠밀려서 일을 시작했다. 어느 날 남편이 술에 취해 퇴근해서 한다는 말이 '요즘 같은 시대에 어떻게 집에서 팽팽 노느냐'고 타박했다. 어이가 없었지만 아이가 어린데 어떻게 직장을 구하느냐고 따졌더니, 시간제 일자리라도 알아보라며 쏘아붙였다. 분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했지만 혼자 돈 버는 게 얼마나 힘들면 저럴까 싶었다. 콜센터에서는 4시간 일하고 80만 원을 받았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시어머니에게 하루 3시간씩 아이를 봐달라고 부탁하며 드린 용돈을 합하면 75만 원이 된다. 그래도 미영씨는 콜센터에 계속 다닐 생각이다. 남편이나 시어미니에게 밥 축낸다는 소리는 듣기 싫기 때문이다."'더' 나쁜 고용, 불안정한 장시간 노동의 귀환시간제 일자리가 남성보다는 여성의 비중이 높고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지만, 정부의 의도대로 남편이 있는 기혼여성보다는 이혼이나 사별 여성의 비중이 훨씬 높게 나타났다. 애초에 안정적인 가계수입의 보충을 위한 0.5는 남성이 부양자라는 전제로 설계된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여성가장의 빈곤화를 더욱 촉진하고 있다. 뿐만 아니다. 학력이 낮을수록 시간제 노동자의 비중이 높고, 청년 취업자 수에 비해 50~60대의 비정규직 일자리가 더욱더 늘어났다. 시간제 노동자를 채용하는 사업체 규모도 30인 이하 사업장이 84.5%를 차지하고 있고, 산업별 비중 역시 자영업자가 많은 도소매업과 음식숙박업이 30%를 차지하고 있다.
시간제 일자리가 전반적인 고용의 질을 아래로 끌어내리는 강력한 요인이 되고 있다. 이렇게 고용의 질이 악화되고 있는데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자신의 능력을 계발하기 위한 여유시간을 확보할 수 있을까?
2012년 현대경제연구원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시간제 일자리에 근무하게 된 것이 자발적 사유인가 비자발적 사유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비자발적인 사유가 56%에 달하고 있다. 이는 OECD 국가의 평균치 13.1%를 훨씬 넘는 수준이다. 이미 도처에 시간제 일자리밖에 없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시간제 일자리로 일해야 하고, 하나의 일자리로는 생활비가 충당이 안 되기 때문에 투잡, 쓰리잡을 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시간제 일자리는 고용의 질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의 장시간노동이라는 오래된 문제를 불안정하고 파편적인 형태로 재구성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질 좋은 시간제 일자리'를 현실화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기업주라면 '질 좋은 시간제 일자리' 2개 대신 파견직이나 계약직 풀타임을 더 선호하지 않을까?
이러한 상황을 박근혜 대통령이 여전히 모른다면 구제불능의 무능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알고 있으면서 '질 좋은' '반듯한'을 주문처럼 외운다면 결국 '사랑'할 생각은 없는데 썸만 타고 내빼겠다는 희대의 난봉꾼이 된다는 것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13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모든 노동자의 건강하게 일할 권리와 안녕한 삶을 쟁취하기 위해 활동하는 단체입니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