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빤찬콩 보육원 아이들과 하얀 코끼리 자원봉사단자원봉사 일정을 마치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김병기
빤찬콩 사찰 운난디야 주지 스님은 법당 큰 의자에 앉았고, 나는 마룻바닥에 주저앉았다. 한국 상황이라면 함께 소파에 앉던지, 마루에 나란히 앉아서 인터뷰하는 게 정상인데 통역을 맡은 안내인이 그렇게 하라고 했다. 주지 스님은 10여분동안 보육원의 어려운 상황을 전하면서 연거푸 "고맙다"고 말했고, 고마움의 대상 중의 한명인 나는 스님을 우러르면서 받아 적었다.
하얀 코끼리가 식재료와 학용품, 의류, 책 등을 기증하고, 학교건축 지원 MOU를 체결할 때 우냐윈 바고 도지사도 참석했다. 이 때 어색한 주지스님과의 인터뷰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37살인 운난디야 스님은 영담 스님과 함께 높은 의자 위에 앉아서 인사말을 했고, 우냐윈 도지사는 아이들과 함께 마룻바닥에 주저앉아 행사를 지켜보다가 제일 마지막에 벌떡 일어서서 감사의 인사를 했다. 영담 스님의 말처럼 미얀마 스님들은 제대로 대접을 받았다.
'천사불여일행'(千思不如一行). 영담 스님이 인사말을 통해 강조한 문구다. 아무리 좋은 천 가지 생각도 한 번의 행동만 못하다는 말이다. 사단법인 하얀 코끼리가 미얀마에 자원봉사를 온 까닭이기도 했다. 자원봉사자들이 쉴 틈 없이 즐거운 노동을 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빤찬콩 아이들은 재롱잔치로 실천했다.
☞ [썸:10초 동영상] 빤찬콩 아이들의 재롱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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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얀마 빤찬콩 아이들 전통 춤을 선보이는 재롱잔치. ⓒ 김병기
다른 급한 일정 때문에 행사를 마친 뒤 무전기를 든 경호원들과 함께 빠져나가려는 우냐윈 도지사를 붙잡았다. 미얀마에 와서 높은 사람 한번 만나지 못하고 퇴각할 수 없다는 생각이 스쳤다. 순간, 사람들의 이목이 나에게 집중됐다. 내 입에서 어떤 질문이 나올지 궁금해 하는 것 같았다. 너무 급작스럽게 들이민 인터뷰여서 질문거리가 생각이 나지 않았지만 잠시 심호흡을 하고 "하얀 코끼리의 지원 사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미얀마 정부가 부족한 부분을 메워 주셔서 나라를 대신해 감사드립니다."
뻔 한 질문에 당연한 답변이었다. 이어 영담 스님에 대해서 물었는데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도움을 주는 게 부처님의 가르침인데, 이를 실천하는 스님에 대해 감사하고, 우리가 모두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4일간의 자원봉사 일정은 이날 미얀마 국기와 태극기를 앞에 두고 단체사진을 찍는 것으로 끝났다. 밀린 숙제를 하듯이 악몽 같았던 게스트 하우스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좌석을 옮겨가면서 옆에 탄 아이들에게 물었다. 무엇을 느꼈냐고.
"얘들과 공도 차면서 모르는 것을 가르쳐준다는 게 즐거웠어요. 우리보다 훨씬 열악한 환경인데도 한국 얘들보다 욕심이 없고 항상 행복해 보여서 좋았습니다. 얘들이 보고 싶어서 내년에도 또 오고 싶어요."(황진제. 16)
"화장실에 쓰레기가 쌓여있고, 교실에 전등이 없었습니다. 부엌에는 거미줄이 쳐졌고 쥐들이 드나들었어요. 나는 페인트칠과 벽화 그리기, 양치질 교육을 했는데, 아이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데 미력하게나마 도움을 준 것 같아요."(신재훈. 16)
빡빡한 일정 탓에 힘이 들었을 것 같았는데, 즐거움과 보람이 더 컸나 보다. 영담 스님이 강조했던 '동사섭(同事攝)' 수행법. 아이들은 함께 나누면서 스스로 배웠다. 페인트 통 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 같은 상태로 4일을 지냈던 홍갑표 원종종합사회복지관 관장(53)의 마지막 소감도 궁금했다.
"아이들이 스스로 깨끗한 환경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우리가 없어도 자기들이 좋은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공동체의 중요성도 느꼈습니다. 자칫 방치하면 서구 자본주의에 물드는 것은 아닌지. 미얀마의 좋은 가치를 지키고 발전을 추구했으면 합니다."
그날 밤, 게스트 하우스에서 푹 잤다. 겨울옷을 입고, 도로 반대방향으로 머리를 둔 채 잠이 들었는데, 다음날 개운했다. 미얀마에서의 마지막 날 새벽에 나를 흔들어 깨운 것은 굉음이 아니라, 청아한 풍경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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