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스타벅스가 왜 있는 줄 알아요? 아무것도 결정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커피 한 잔을 사면서 적어도 여섯 가지 결정을 내려야만 하는 거에요. 사람들은 2.95달러를 내고 커피 한 잔을 사는 게 아니라 자기가 누군지를 결정하는 거에요.” (영화 <유브 갓 메일>에서 조의 대사) -책 38p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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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콘수무스가 되도록 강요당하는 공간, 쾌적한 매장과 압도적인 물량의 상품들은 마치 '당신이 소비하는 것을 통해서만 당신을 알 수 있습니다'라고 속삭이는 듯하다.(...)거시적으로는 그 소비자 정체성의 강제된 규정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으면서도 미시적으로는 더욱 그것에 탐닉할 수밖에 없다.(45p) 얼마 전 서울의 한 백화점에서 주차장 요원에게 이른바 '갑질'을 시전한 모녀의 말이 떠오른다. 모녀 중 어머니로 보이는 여성은 주차장 요원에게 소리를 지르며 "내가 여기서 얼마를 썼는데!"라는 말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바로 이 목소리가 호모 콘수무스의 것이었으리라.
물신의 공간: 물건 그 이상의 것을 사는 곳
호모 콘수무스는 물건을 사면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강화하기 때문에 상품은 결국 물신화된다. 상품을 사는 동시에 그 상품의 이미지를 사게 된다는 말이다. 값을 더하더라도 스타벅스나 애플의 제품을 사는 이유를 떠올리면 된다. 코스트코나 롯데월드같이 '그곳'에서만 살 수 있는 물건들이 있는 곳도 마찬가지다. 이곳에서 물건을 사는 일은 곧 취향이 되고 여가가 된다.
이 책에서 가장 빛나는 지점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구입하는 것은 물건뿐 아니라 '여가'라는 분석이다. 여가란 '노동시간이 아닌 것'이다. 노동력을 재생산하기 위해 쓰는 시간들, 예를 들어 출퇴근 시간, 직무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교육 시간, 필수적인 휴식시간, 가사노동의 시간이다.
대도시에서 노동하고 먹고살기란 점점 힘들어진다. 그렇기에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데아로서의 여가는 불가능해진다. 스쿠버 다이빙을 하거나 스키를 타거나 여행을 가거나 하는 것들 말이다.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시간이 여가화 된다. 밥을 먹는 시간, 쇼핑을 하는 시간이 여가가 된다는 것이다. 노동력을 재생산하기 위한 준비가 여가로 포장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코스트코와 롯데월드는 어떤 의미에서는 샴쌍둥이 같은 존재다. 쇼핑의 여가화, 다시 여가의 쇼핑화. 그리고 배제의 원리에 기초한 문화적 상징 혹은 물신에 이르기까지.(60p)남겨진 공간과 사라진 공간: 높은 공간을 위해 사라지는 낮은 공간들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y)는 과잉자본의 위기를 해소하려는 목적에서 건조 환경(built environment), 즉 자연환경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환경에 대한 투자가 이루어진다는 점을 강조했다. 남아도는 자본이 수익성을 찾기 위한 출구로서 도시공간을 끊임없이 재편성하려 든다는 것이다.(109p) 몇 년을 살다시피 했던 홍대라도, 홍대에서는 자신만만하게 술 약속을 잡기 어렵다. 어떤 술집이 마음에 들어 친구들과 함께 가려해도, 시간이 조금 지나면 사라지는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가게 때문에 유명해진 거리에서도 가게는 쉽게 헐린다.
홍대뿐이랴. 이제는 한두 달 동안 찾아가지 않으면 가게가 사라질까 조마조마한 곳이 서울에 여러 군데다. 개인들의 가게는 헐리고 기업체가 세운 건물들만 즐비하다. 이 원리는 대학가도 마찬가지라, 대학가 주변이라고 물가가 싸다는 것은 이미 옛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