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하고 비슷한 풍경을 매번 찍게 되는 이유!

[유럽포토에세이⑩] 뻔하디 뻔한 이야기가 다시금 베스트셀러로

등록 2015.02.18 17:30수정 2015.02.24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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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이 한창이던 어느 해, 동네 친구와 여의도 공원으로 밤 마실을 다녀온 적이 있다. '나를 보러와요' 라는 유행가 가사가 저절로 흥얼거려지는 기가막힌 밤, 한 벤치에 앉아 눈 앞에 두고도 믿기 어려울만큼 아름다운 꽃놀이를 마음껏 즐기고 있는데 그녀가 뜬금없이 내게 묻는다.

"도대체 그 베스트셀러라는 작품들 말이야... 왜 있잖아... 'A와 함께 한 화요일' 이나 '내 영혼이 뭐했다는 날들' 인가 암튼 그 뭐시기. 그리고 철수 스님, 민수 스님 그 시리즈들 말이야. 도대체가 다들 그렇고 그런 이야기인데 재탕 삼탕은 커녕 심지어 백번탕을 해도 팔리잖아. 그게 참 요상하지 않아?"


독일의 도시, ULM 
독일의 도시, ULM
독일의 도시, ULM 독일의 도시, ULM배수경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질문이어서 이유를 고민해보느라 그렇지 않았더라면 한 번 더 보고, 한 번 더 맡았을 만개한 벚꽃의 즐거움을 잠시 놓쳤던 일이 생각난다. 정확히 어떠한 답변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으나 아마도 그날 나는 대략 이런 이야기를 건네었던 것 같다.

"진리란 대체로 진부한거니까. 그리고 소중한 가치들은 쉽게 변하지 않는 거니까. 또한 무엇보다 사람들은 망각하기 쉬운 존재라서 비슷 비슷한 내용인 시리즈들을 간혹 섭렵해 주어야 하는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러면 어때? 그건 어쩌면 노력한다는 반증이기도 하잖아. 잠시의 위로이건, 짧은 각오이건, 망각으로 인한 재탕 삼탕의 되새김이건. 그건 산다는 일을 어느 분량 만큼씩은 분명 소중히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일 수도 있으니까."

어딘가에 여행을 다녀와서 사진 정리를 하다보면 나 역시 스스로에게 놀라고 때로는 실망할 때가 많았다. 비슷 비슷한 풍경들을 매번 찍고 있었고 별 화려할 것도 없는 어느 집 창문 이나, 집 앞 화단이나, 길거리에서 자주 마주치는 어린 아이의 모습들, 이러저러한 재래시장에서 마치 대단한 기념비처럼 남기곤 했던 비슷 비슷한 과일가게 혹은 빵가게의 모습들. 그렇고 그런 일상의 그 모든 사소한 풍경들이 때론 천여장을 넘나드는 사진의 대부분을 차지하곤 했었다.

독일의 도시 Goslar. 20008년 독일의 도시 Goslar
독일의 도시 Goslar. 20008년독일의 도시 Goslar배수경

흰색 칠 여기저기가 볏겨진 창문 틀, 70년대에나 유행했을 것 같은 구식의 인형, 조금은 촌스러운 문양의 하얀 창문 가리개 천 조각 등이 한장의 기록으로 남아있다. 저 사진들 역시 사람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큼 새로울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더군다나 유럽의 그 으리으리한 왕궁들, 조각들, 그림들, 근사한 풍경과 사람들, 색색깔의 가게와 멋진 장식품들을 기억해본다면, 그곳까지 가서 소중한 메모리 공간을 저런 풍경들로 가득 채워온다는 것은 꽤나 어리석은 일일지도 혹은 한참이나 감각이 뒤떨어지는 일일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저런 풍경들을 마주하고 있으면 내게는 그 어느 사진들보다 마음 한켠이 따뜻해지곤 한다. 마치 어느 조촐한 집에 초대되어 따뜻한 차 한잔을 함께 하는 것 같다. 가진 것은 없어도 집안 구석 구석 주인장의 마음이 닿아있는 집. 비싼 케이크가 아니어도 손수 구운  비뚤거리는 모양의 쿠키 한 조각을 내놓아주는 집. 눈이 따뜻한 어느 어른을 만나고 작은 손을 내밀어 인사를 해줄 것 같은 어린아이의 존재를 슬쩍 기대하게 되는 집. 하늘의 해가 산을 넘어가는 시간에, 그 향과 색이 내부를 가득 채우는 공간에서 함께 웃고 우는 동안, 말로 할 수 없는 그 무엇이 가슴 어딘가에 슬쩍 들어와, 살고도 싶고 살아 낼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스위스 한 시골마을.  2011년 스위스 한 시골마을.
스위스 한 시골마을. 2011년스위스 한 시골마을.배수경

뻔하디 뻔한 이야기. 지나간 유행가의 촌스러운 변주곡 같은 이야기. 몇장 넘기기도 전에 결론을 읊어낼 수 있을 것 같은 이야기. 그럼에도 '그렇고 그런 이야기들'을 눈에 띄는 세련된 책들 사이에서 조차 다시금 쉽게 지나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나와 비슷한 그 어디 즈음의 이유 때문들은 아닐까?


사람을 따뜻하게 하고 잠시나마 뭉클해지게 하는 것, 퍽퍽한 현실에서는 쉽지 않은 작은 감동 같은 것. 그래서 그 덕분에 살 수 있을 것 같고 조금은 잘 살고 싶어지게 하는 것. 그런것들이 내게는, 어쩐지 어머어마한 존재들 보다는 오히려 이러한 소소한 모습들에서 숨 쉬고 있는 듯 싶은데 지나간 베스트셀러와 함께 스테디 셀러들을 돌아보면 나의 추측이 가히 틀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특히나 한국 같은 고성장의 그늘이 깊고 넓게 퍼져있는 사회에서는 더욱 더.

스위스 의 작은 마을, 2011 년. 스위스 의 작은 마을,
스위스 의 작은 마을, 2011 년.스위스 의 작은 마을,배수경

그러니 사람들이 반복해서 돈을 쓰는 데에는 그럼직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닐까? 그것이 아파서이건 무언가가 고파서이건 혹은 그리워서이건, 매번 색만 바꾼 듯한 똑같은 그 무엇을 집어드는 데에는 반드시 있어야 할 것 같은 것을 이미 촉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우린 아주 많이 어리석은 건 아닌 것이다. 비록 사람이 망각의 동물이긴 하여도.
#소소함 #유럽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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