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엔 간 적도 없는 나보고 일본인이래"

[이방인이 만난 이방인②] 세비야 38년, 일본인 도예가 요코 아카바네

등록 2015.02.25 09:51수정 2015.02.25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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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예가 요코. 세비야에서는 꽤 알려진 도예가이다.
도예가 요코. 세비야에서는 꽤 알려진 도예가이다.홍은

도예가 요코 아카바네(66)와의 인연은 대략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스페인 세비야 외곽 지역의 한 시민회관에서 타일 공예 수업을 들을 때 모니터였던 일본 선생님을 통해 그녀의 이름을 처음 접했다. 이후 내가 세라믹 학교를 다닐 때 그녀의 컨퍼런스가 한 번 있었는데 사정이 있어 참여를 못했다. 참석했던 동료들이 너무 좋았다고 자랑해 내내 아쉬운 맘이 남아 있었다.


그 후 재미삼아 동네 벼룩시장에서 도자기를 팔다가 만난 일본 아주머니와 도자기 이야기를 하다가 그녀가 바로 그 '도예가 요코'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러고도 좀처럼 그녀의 공방에 들릴 기회를 한동안 찾지 못하고, 동네에서 가끔 마주치면 기약 없는 '언젠가'를 약속하곤 했다. 드디어 이번 인터뷰를 핑계 삼아 5년의 인연 끝에 그녀의 공간과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다.

더도 덜도 아닌 최선으로 주는 것

한국의 설 명절이던 지난 20일 아침, 그녀의 공방 겸 집을 찾았다. 1년 전만 해도 공방과 집이 따로 있었다. 그런데 거의 30년 넘게 운영해온 공방 건물이 리모델링에 들어가 비워줘야 해 자신의 집으로 공방을 옮겼다. 그녀의 집은 건축가인 남편의 손이 간, 그야말로 멋스러운 4층 건물이었다.

 세상을 떠난 건축가 남편이 멋지게 디자인한 요코의 집
세상을 떠난 건축가 남편이 멋지게 디자인한 요코의 집홍은

내가 도착했을 때 그녀는 한참 수강생과 통화 중이었다. 아들 주려고 축구공 모양의 도자기를 만드는 중인 한 아주머니 수강생이었다. 문제는 그 축구공이 금색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금색에 가깝게, 최대한 경제적으로 색을 내는 재료를 찾고 있는 중이란다.

"도자기를 만드는 사람들의 이유도, 의도도, 관심사도 달라서 재미있다"는 그녀가 공방을 운영하며 도자기 교실을 한 지는 벌써 30년이 훌쩍 넘었다. "부풀리지 않고, 아끼지도 않고,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주는 것"이 도자기 수업의 원칙이란다.


요즘에는 일주일에 3일 오전과 오후, 공방에서 도자기 교실을 하고, 월요일에는 여성감호소에 도자기 교육 자원봉사도 나간다. 오래 전에 한 도자기교육 프로그램으로 인연이 되었다고 했다. 여성감호소 예산이 없어 운영이 힘들게 되자 자원봉사로 하고 있단다.

 공방 수강생들의 작품들.
공방 수강생들의 작품들.홍은

브라질 사람과 일본 사람 사이


그녀는 브라질에서 태어났다. 1900년대 가난한 일본 농부들을 대상으로 브라질 농장 이민을 장려하던 시기, 그녀의 부모님도 브라질로 이민을 했다. 그녀의 이름, 외모를 제외하면 그녀는 문화적으로는 브라질 사람에 가깝다고 해야 맞을지 모르겠다. 더군다나 지금까지 한 번도 일본을 방문한 적이 없다는 사실은 매우 놀라웠다.

"항상 숙제처럼 남아 있는 일이야. 이상하게 굳이 가게 되지 않더라고. 아마 무덤까지 이 숙제를 안고 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요즘은 막연히 들고..."

젊었을 때는 일본에 가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그녀의 친구가 일본에 가서 8년을 살다가 일본의 배척과 부적응에 심한 트라우마를 안고 돌아온 것을 보고는 엄두를 내지 못했단다.

"'내가 일본인이다'라는 생각은 브라질에서가 아닌 스페인에 와서 시작하게 됐어. '내가 브라질에서 태어나고 자란 것'과 상관없이 여기에서 나는 그냥 일본인이어야 했으니까. 모두가 그렇게 이해했고 그래서 나도 조금씩 그들이 원하는 일본인의 이미지를 배우게 되고 그러다 보니 그것이 나를 위한 것이 되기도 하더라고."

인터뷰 때 차를 준비하며 차 봉투에 있는 레시피를 보고 타이머로 시간을 맞추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본래 차를 즐기지 않았는데, 조금씩 배워서 마시다 보니 좋아졌다고 한다.

 스크랩으로 보는 요코의 작품들.
스크랩으로 보는 요코의 작품들. 홍은

브라질에서 역사교육을 전공한 그녀는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려고 했다. 하지만 대학 때 실습을 하며 적성에 맞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졸업 후 한동안 일반 회사원으로 일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데리고 간 한 도자기 전시회에서 작품을 보았는데 무언가 자유롭게 표현하는 그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고 한다.

1977년, 브라질에서 만난 스페인 애인을 따라 세비야에 왔을 때 그녀의 나이는 불과 28살. 무슨 일을 이 낯선 땅에서 할까 고민할 때 생각난 것이 그날의 전시회였다. 마침 친구의 소개로 그녀는 예술학교에서 5년간 도자기를 전공할 수 있었고 그것이 그녀와 도자기의 인연의 시작이었다.

"도예가 좋은 이유는 끝이 없고, 같은 순간이 한 번도 없다는 거야. 마지막까지 어떤 결과가 나올지 예측이 불가능하지. 그리고 그 결과엔 실패도 있고 새로운 발견도 있지. 그것이 너무 좋아. 우리가 사는 것과 비슷하잖아."

내 공간이 있으니 이방인은 아니야

일본인으로 브라질과 스페인 땅에서 산 삶에서 그녀의 정제성은 언제나 '조금은' 애매했다. 하지만 이곳 스페인에서 이방인이라고 느끼냐라는 질문에 그녀는 자신있게 "아니"라고 답한다.

"아마 초창기 때는 느꼈던 것 같아. 하지만 어느 순간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데 더 이상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어. 아마도 명확한 내 공간이 구축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5년 전 남편이 사망하고, 브라질에 있는 가족들이 다시 돌아오지 않겠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말했다고 한다. "지금은 여기에 내 삶이 있다"고.

 요코와 함께한 단촐한 새해맞이. 그녀의 도자기에 음식이 담겼다.
요코와 함께한 단촐한 새해맞이. 그녀의 도자기에 음식이 담겼다.홍은

인터뷰 후 그녀는 불쑥 김치 담그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인터넷으로 봤는데 잘 모르겠다고. 내친 김에 일요일(22일) 그녀의 집을 다시 방문해서 같이 김치를 담궜다. 새해맞이 떡국을 못 먹었기에 겸사겸사 간단하게 떡국도 끓여 소박한 밥상도 차렸다.

새해 계획이나 소망이 있냐는 질문에 그녀는 말했다.

"매일매일 배우는 것이 사는 일이야. 오늘 어떻게 한 발짝을 내딛을까? 그 정성스러운 한 걸음을 배워가는 것이 하루하루의 삶이니 올해가 지난해보다는 분명 더 낫겠지."
#세비야 #이방인 인터뷰 #도예가 요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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