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먼 미국 국무부 정무차관과 윤병세 외교부장관지난 1월 방한한 셔먼 미국 국무부 정무차관과 윤병세 외교부장관
외교부
"동북아 지도자들이 과거사를 활용해 값싼 박수를 받는다." 지난달 27일 카네기국제평화연구소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셔먼 미국 국무부 정무차관이 한·중·일 과거사 문제와 관련하여 양비론적 입장을 표명하며 한 발언이다. 이에 조태용 외교부 1차관은 2일 국회 외교통일위에 출석해 "셔먼 차관의 발언에 대해 가볍지 않게 보고 있다" 며, "엄중함을 갖고 이 문제를 다루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동북아 과거사가 한국에도 책임이 있다는 발언을 두고 여야는 물론 국민적 공분이 지속되고 있다.
이에 미국은 2일 "특정 국가를 지칭한 것이 아니다"라며 해명하였으나 정작 과거사와 관련해 한국과 일본 모두 잘못하고 있다는 기존 양비론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셔먼 차관의 발언은 박근혜 대통령이 3·1절 기념사를 통해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과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한 것과 정면으로 대비되는 발언으로 외교적 관례를 고려할 때 대단히 도발적이고 무례한 발언이다.
미국 종속적 동북아 대외환경 변화, 무엇이 문제인가?최근 한-미 간 정책 엇박자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지난해 12월, 우리 정부가 통일준비위 차원의 남북대화를 제시하며 남북관계 개선에 나설 때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대북 추가 제재의 행정명령에 서명하며 대북강경책을 천명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의 벤 로즈 미국 국가안보 부보좌관은 지난 2월 9일 워싱턴DC 외신기자클럽 회견에서 박 대통령의 모스크바 전승 기념식 참석과 관련한 질문을 받고, 부정적 견해를 공개적으로 밝혔다. 러시아 전승절 기념행사는 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 1비서의 참석이 유력시되며,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할 경우 분단 이후 최초로 남북정상이 제 3국에서 정상회담을 가질 가능성이 큰 행사이다.
문제는 정상도 아닌 일개 보좌관이 한 나라 정상의 참가여부와 대외정책을 공개적으로 반대한 점이다. 이는 심각한 외교적 결례를 넘어 주권침해로도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최근 미국은 한·일 간 과거사의 민감성이나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우리 정부의 노력은 고려하지 않은 채 일방통행적 동북아 정책을 강조하는 모양새이다.
출구 없는 대북강경책, 스스로 외교적 선택폭 좁혀이와 같이 한반도 주변 역내환경이 미국 중심의 종속적 환경으로 변화하는 이유는 ▲ 미중 패권경쟁 ▲ 미-러 관계악화 ▲ 미국의 아시아 회귀 정책(Pivot to Asia)과 이에 맞서는 러시아 동방정책 ▲ 일본 극우화 등 여러 대외적 요인이 있다. 그러나 '신(新) 냉전' 틈바구니 속에 박근혜 정부가 대북강경책에 매몰되면서 능동적으로 남북관계 개선에 나서지 못한 원인이 가장 크다고 볼 수 있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 2년간 대북억지력을 강조하며 안보문제에 있어 지나치게 대미 의존도를 높여왔다. 대표적으로 올해로 예정되어 있던 전작권 환수를 재연기하고, 킬 체인과 KAMD배치는 물론 최근 '고고도미사일방어' 인 사드(THAAD) 배치까지 공론화 하였다. 특히 북한이 가장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는 한미군사훈련은 올해 연안전투함이 사상 최초로 참가하고 미군 병력이 지난해보다 3400명이나 증원되는 등 오히려 확대되었다.
물론 대외정책에 있어 안보강화는 기본 중에 기본이다. 그러나 출구전략 없는 대북강경책으로 박근혜 정부는 광복 70주년을 맞은 올해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구현할 절호의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무엇보다 대북전단 살포에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남북교류협력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는 5.24조치 등에서도 별다른 변화가 없다. 기대를 모았던 3.1절 기념사 역시 지난해 통준위 차원의 대화 제의를 재확인 하는 수준에 그쳤다.
또한 일본의 극우화 등 동북아 현안에 있어서도 대북강경책에 발이 묶여 한·미·일 군사정보공유 약정을 체결하고 독도 입도지원센터 건립에서도 갈팡질팡하는 태도를 보였다.
남북관계 개선, 박 대통령의 정책적 전환 필요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