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이리초교 교정이리초등학교 교정으로 100년을 지켜왔다.
오명관
여 부회장은 "예전에는 많은 학생들로 인해 소풍날만 되면 장관이었다"며 "학생은 물론 부모님과 동생들도 함께 갔기에 소풍은 집안의 축제였고, 가을운동회는 지역 축제였을 정도"라고 말했다. 여 부회장은 "주민들과 함께했던 그 때가 기억난다"고 추억에 잠겼다.
조 사무총장은 "제가 학교 다닐 때, 퇴비 모으기 운동도 했었다"며 "학교에 실습지가 있어 이곳에 거름으로 사용하기 위해 모았던 시절도 있었는데 요즘 학생들에게 말하면 무슨 말인지 모를 것"이라고 웃었다.
역사를 증언하는 이리초교, 그 오랜 역사
이렇게 학교가 오래되다 보니 3대가 같은 학교를 다녔던 동문의 이야기도 회자되고 있다. 그 주인공은 김영일(53회) 현 경기도 부천 소사경찰서장이다. 김 서장의 할아버지가 12회, 아버지가 26회 졸업생이다.
김 서장은 당시 익산군 춘포면 석탄리(현 익산시 석탄동 옛뚝마을)에서 살았고 이리초교까지는 약 4km정도 되는 거리를 3대가 다 통학했다고 한다. 김 서장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일제강점기 시절 학교를 가기 위해 3번씩 배를 타고 강을 건너야만 했다고 전해 들었다고 한다.
100살이 된 이리초교의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 일제강점기에서 시작해 광복과 6·25전쟁을 겪었고 심지어는 1977년 이리역 폭발사고를 지켜봤다. 100년의 역사 속에, 일제시절에 지어진 학교 건물 일부가 지금도 남아있다.
여 부회장과 조 사무총장은 "총동문회가 결성된 지 2년 밖에 되질 않아 준비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지만, 박기원 회장이 1억여 원을 쾌척해 지금까지 잘 이끌어 왔다"며 "100주년 기념행사를 마치면 동문들의 기부금을 모아 모교 발전과 후배 교육 환경 개선에 도움될 수 있도록 할 것이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가 학교에 다닐 때에는 형제자매가 많아 같이 손잡고 학교에 갔던 기억이 있다"며, "형이나 누나는 동생들이 잘 있는 지 교실로 찾아와 살펴보는 등 참으로 정감이 가는 학교 생활이었다"고 회상한다.
하지만 "지금은 한 가정에 1~2명밖에 없다보니 이러한 정감은 없을 뿐만 아니라 이로 인해 학생수가 많이 줄어 앞으로 이리초교를 특성화학교로 전환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개교 100주년 미래 100주년'을 슬로건으로 정했다"며 "그 첫 번째로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78년 된 건물을 학교와 운영위원회 측과 잘 협의해 이리초교의 역사박물관을 뛰어 넘어 익산시 더 나아가 대한민국의 대표 역사관을 만들어 가도록 노력할 것이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