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희생자들의 목소리... 들어야 산다

[서평] 동일본 대지진 희생자들의 목소리 담은 <상상 라디오>

등록 2015.03.07 17:44수정 2015.03.07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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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사랑합니다."
"살아서 만나자."
"다시 만나자."
"부디..."

죽은 자가 살아있을 때 보낸 문자 메시지이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의 침몰 순간에 단원고등학교 학생들과 담임교사의 단체 문자 메시지 내용이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살아서 만나자, 다시 만나자'는 그들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그들은 희생당해 고인이 되었지만, 살아있는 사람들은 그들이 살아서 남긴 말들을 접하곤 눈물을 흘렸다.


그들이 살아있을 때는 그런 문자로 자신들의 말을 했는데, 죽은 후에는 어떤 말을 하고 싶을까. 왜, 가만있으라고 해서 자신들을 죽음의 심연으로 몰아넣었느냐고 원망할까. 빨리 자신들을 건져내지 않고 뭐했느냐고 할까. 자신들은 괜찮으니 살아있는 이들이나 잘하라고 할까. 참 궁금하지만 그들은 이미 말이 없는 이들이 되어버렸다.

소통이 형통이다

 <상상 라디오>(이토 세이코 지음 / 권남희 옮김 / 영림카디널 펴냄 / 2015. 2 / 208쪽 / 1만2000원)
<상상 라디오>(이토 세이코 지음 / 권남희 옮김 / 영림카디널 펴냄 / 2015. 2 / 208쪽 / 1만2000원)영림카디널
죽은 자와 죽은 자의 소통, 죽은 자와 산 자의 소통, 산 자와 산 자의 소통, 모두 불통이면 문제가 되기는 마찬가지다. 산 자와 산 자의 불통문제는 지금도 이 사회의 골칫거리 중에 하나다. 박세연은 <말이 통해야 산다2>(2011, 에세이퍼블리싱)에서 혈관은 피가 통해야 살고, 폐로 숨이 통해야 살 듯, 회사도 말이 소통되어야 산다고 주장한다.

소통의 문제가 사회문제로 대두된 것은 오랜 역사를 갖는다. 오늘날처럼 통신시설이 발달하지 못한 시대에도 임금은 어떻게든 국민의 소리를 듣고자 했다. 1401년 태종원년에 대궐 문루 밖에 신문고를 설치해 억울한 백성들이 직접 북을 두드리게 한 것은 좋은 예이다. 왕이 신하들을 거치지 않고 국민의 뜻을 읽기 위한 노력은 부단했었다. 암행어사 제도나 잠행 등이 그것이다.

선조들이 이리도 국민의 소리를 듣기 위해 노력했건만, 작금에 들어 '불통'이 정치의 화두가 된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명박 정권 때는 소위 '명박산성'으로 대변되는 국민과 대통령의 불통의 벽이 있었다. 박근혜 정권 들어서도 국민들 중 대다수가 박 대통령의 불통을 지적하고 있다.


대통령의 불통은 그렇다 치고 그럼 국민들끼리는 제대로 소통하며 사는 것일까. 감히 그렇다고 답하기가 어렵다. 대한민국 국민은 모두 세종대왕께서 만들어 주신 한글을 국어로 사용하고 있다. 같은 한국어로 말하는데도 여전히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다.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들으려고 하지 않는데 상대의 말이 들릴 리가 없다. 생각이 다른 이들의 말을 매도하기 바쁘다. 오죽하면 '보수꼴통'이니 '종북'이니, '빨갱이'니 하는 단어들이 유행할까. 자주 이런 말들이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이를 매도하는 말로 쓰인다. 살아있는 사람끼리도 이리 말이 안 통하는데, 죽은 사람과 말이 통하기는 더욱 어렵다.


죽은 자와 죽은 자, 죽은 자와 산 자 간에 말이 통하다

그러나 죽은 자와도 말이 통해야 역사가 전진할 수 있다. 실은 모든 인류 역사는 죽은 자가 남긴 말에 의존되어 있다. 역사란 산 자의 기록이기보다 대부분 죽은 자의 기록이다. 그 기록에서 죽은 자가 말한 진리를 끄집어 역사의 사료로 삼고 인류는 그렇게 발전해 나가고 있다. 그러나 한계는 있다. 죽은 자는 죽은 자이고 산 자는 어쩔 수 없이 산 자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귀를 기울인다 해도 물에 빠져서 가슴을 쥐어뜯다 바닷물을 마시고 세상을 떠난 사람의 괴로움은 절대로, 절대로 살아 있는 우리가 헤아릴 수 없습니다. 들린다고 생각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고집이고, 설령 뭔가가 들린다고 해도 살아갈 희망을 잃은 순간의 진짜 두려움, 슬픔을 우린 절대로 알 수 없어요."-<상상 라디오> 83쪽 중에서

앞에서 우리는 단원고등학교 학생들과 교사가 남긴 마지막 문자 메시지를 읽었다. 그 말들을 들은 산 자들(우리)은 괴로움에 울었다. 그러나 겪지 않은 두려움을 어찌 산 자인 우리가 알겠는가. 혹 알고 있고, 그들을 진심으로 애도한다고 생각한다면 어불성설일지 모른다.

<상상 라디오>에서 죽은 자인 기무라 라이타의 말대로, "상대를 위해서라는 얼굴로 애도하는 척하지만 사실은 뭐랄까. 타인의 불행을 망상의 자극제로 삼는 것"일지 모른다. 더군다나, "그 망상에 빠져서 애도해주었다고 만족한다면 그건 자신을 위해 타인을 이용하는 것"일 뿐이다.

이토 세이코의 소설 <상상 라디오>는 죽은 자가 죽은 자에게 하는 방송을 소제로 삼고 있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을 휩쓴 대지진으로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났고, 많은 이들이 죽었다. 그중 한 사람이 DJ아크다. 그는 쓰나미에 휩쓸려가다 삼나무 꼭대기에 걸렸다. 거기서 그는 '상상 라디오 방송'을 시작한다.

'상상 라디오'는 죽은 자들이 방송에 출연해(이메일, 전화 등으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죽은 그들의 이야기는 산 자의 이야기와 다르지 않다. 일상과 만남과 잠과 꿈이 있다. 심지어는 죽은 자인 아크와 산 자인 아내의 대화도 장황하게 펼쳐진다. 사랑하고 미워하며, 다투며 화해하는 이야기가... 말이 참 잘도 통한다.

죽은 자의 목소리, 들어야 산다

우리는 산 자들끼리도 말이 안 통해 답답하다. 그런데 <상상 라디오>에선 모두 잘 통한다. 산 자와 죽은 자, 죽은 자와 죽은 자 간에 말이다. 그래서 <요미우리>와 <도쿄신문>은 <상상 라디오>를 이렇게 말한다.

죽음이라는 엄청난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지, 살아 있는 사람이 할 일은 무엇인지, 그 물음을 정면으로 마주 대하고 있다.<요미우리>

'상상하면 들린다'는 강한 메시지에 감동하게 된다.<도쿄신문>

이토 세이코는 책에서 "죽은 사람과 함께 이 나라를 다시 만들어 갈 수밖에 없다"며,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사태에 뚜껑을 덮는 우리는 대체 뭐야. 이 나라는 어떻게 된 거야"라며 산 자가 곱씹을 만한 질문을 던진다. 세월호 희생자들이 지금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지는 않을까.

실은 우리는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사고를 "이제 그만 하자!"는 말로 단칼에 자르려고 하는 이들과 맞닥뜨리고 있다. 세월호 사고보다 오래 전에 일어난 동일본 대지진을 잊지 않고 '죽은 사람과 함께 나라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말하는 게 일본인데, 우리나라는 자꾸 "이젠 잊자"고만 한다. 참 서글프기 한이 없는 노릇이다.

역사를 잊은 백성이 잘되는 나라는 없다. 그게 아무리 추악한 역사라도 마찬가지다. 순수한 자연재해인 동일본 대지진과 인재에 더 가까운 세월호 사고는 서로 견주어지지도 않는다. 그러나 두 사건을 보는 두 국민의 눈은 너무나 다르다.

"살아남은 사람의 추억도 역시 죽은 사람이 없으면 성립하지 않아. 아무도 죽지 않았으면, 그 사람이 지금 살아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을 하지 않겠지. 즉 살아 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은 상부상조 관계야. 절대 일방적인 관계가 아냐. 어느 쪽만 있는 게 아니라, 둘이서 하나인 거라고."-<상상 라디오> 151쪽 중에서

책이 말하듯, 우리에게, 산 자인 우리에게,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억울함과 두려움과 미련에 귀를 기울이려고 하는 마음이 없다면 우리의 행동은 아주 얄팍한 것"이다. 산 자끼리도 안 통하는 사회에서, 죽은 자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힘에 부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역사에서 무엇인가 읽지 않는 백성은 희망이 없다. 죽은 자에게 귀 기울이지 않는 백성은 희망이 없다.
덧붙이는 글 <상상 라디오>(이토 세이코 지음 / 권남희 옮김 / 영림카디널 펴냄 / 2015. 2 / 208쪽 / 1만2000원)

상상 라디오

이토 세이코 지음, 권남희 옮김,
영림카디널, 2015


#상상 라디오 #이토 세이코 #세월호 사건 #동일본 대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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