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이후 2천 년... 이젠 부자도 천국 들어가야할 때

[김성호의 독서만세 51] 석학들의 부의 불평등 토론전 <부자가 천국 가는 法>

등록 2015.03.15 10:16수정 2020.12.25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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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부자 청년이 예수를 찾아와 어떤 선한 일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 물었다. 예수가 이르길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하니 청년이 이 말을 듣고 근심하며 갔다. 예수가 제자들에게 이르되 "낙타가 바늘 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하였다.

기독교 경전 마태오 복음(19장 24절), 마르코 복음(10장 25절), 루가 복음(18장 25절)에 등장하는 이 유명한 일화는 20세기 가까이를 가로질러 오늘까지도 읽는 이에게 울림을 선사한다. 부자는 대가없이 나누기를 꺼리고 나눔 없이는 선을 이룰 수가 없는 일이기에 부자가 선을 이룩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물론 예외는 존재한다.


자선 사업가 피터 멍크와 멜라니 멍크에 의해 2006년 설립된 오리아 재단은 공공 정책 연구 및 개발에 종사하는 캐나다의 개인과 단체를 지원한다. 캐나다 최고의 공공 정책 토론인 '멍크 디베이트'는 이 재단의 대표적인 행사로 2008년 5월에 처음 시작된 이래 인도주의적 개입, 대외 원조의 효과, 지구 온난화의 위협, 지정학상 종교의 영향, 중국의 부상, 유럽의 쇠퇴 같은 주요 이슈를 다뤄왔다. 헨리 키신저, 토니 블레어, 피터 만델슨, 로렌스 서머스, 미아 패로 등 각계의 유명인사가 멍크 디베이트를 거쳐 갔다. 각각의 토론은 캐나다 국내외의 미디어를 통해 중계되며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을 미쳐왔다.

 <부자가 천국가는 法>
<부자가 천국가는 法>오래된생각
책 <부자가 천국 가는 法>은 '부자에게 세금을 더 거둬야 하는가?'라는 주제로 이뤄진 멍크 디베이트를 토대로 제작된 책이다. 토론에는 이 시대 보수와 진보를 대표하는 네 명의 패널이 참가했다. 폴 크루그먼,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뉴트 깅리치, 아서 래퍼가 그들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도 유명한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과 2009년부터 2011년까지 그리스의 총리를 역임한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가 찬성 측 패널로 참여했다. 또 전 미국 하원 의장이자 공화당 대선 후보를 노리는 거물 정치인 뉴트 깅리치와 '공급 중시 경제학의 아버지'라는 별칭으로 알려진 아서 래퍼가 반대 측 패널로 나와 격렬한 토론을 이끌었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전반부에는 네 명의 패널이 참가한 멍크 디베이트가 대화록 형식으로 실렸고, 후반부는 BNN(비즈니스 뉴스 네트워크)의 프로그램 '하워드 그린과 헤드라인'에서 방영된 대담 내용으로 꾸며졌다. 뉴트 깅리치, 폴 크루그먼, 아서 래퍼는 이 대담을 통해 토론에서 미처 펼치지 못한 입장을 더욱 깊이있게 표명했다. 노련한 진행자가 적절히 개입한 덕분에 이들이 부자 증세에 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멍크 디베이트는 토론이 이뤄지기 전 방청객을 대상으로 논제에 대한 의견을 묻고 토론 후 이를 다시 조사, 찬반 결과의 변동 추이를 통해 패널의 승패를 정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모두 3천 명이 넘는 방청객이 참여한 이번 토론은 '부자에게 세금을 더 거둬야 하는가?'하는 논제에 대해 58%가 찬성, 28%가 반대, 나머지 14%가 의견을 정하지 못한 상태로 출발했다.


부자에게 세금을 더 거둬야 하는가?

포문을 연 사람은 폴 크루그먼이었다. 그는 푸드스탬프(저소득층 식비 지원 제도. 현재의 정식 명칭은 '보조적 영양 지원 프로그램')와 메디케이드(미국 저소득층 공적 의료 지원 제도)를 예로 들며 이와 같은 공공 서비스가 미국 사회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를 위해 정부가 더 많은 세수를 필요로 하며 상위 1%의 부유층에 대한 세율을 올림으로써 필요한 세수를 확보할 수 있다고 말한다. 더불어 일부 반대론자의 주장과 달리 세율을 올린다 해도 전체 경제에 악영향이 초래되지 않는다는 것을 2차 대전 직후와 빌 클린턴 행정부의 사례를 통해 입증한다.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는 불평등의 문제를 제기하며 폴 크루그먼의 의견에 힘을 실었다. 그는 미국의 실제적인 소득 재분배 현황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음을 언급하며 상위 20%의 부자가 80%가 넘는 부를 차지하고 있다는 자료를 제시한다. 나아가 그는 이와 같은 현상이 공정·정의·신뢰 등 사회의 기본 원리를 약화하고 있으며 사회의 일체성을 유지하기 위한 기본적인 계약의 토대마저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누진 과세를 도입하고 공공 부문을 확대하는 등 평등을 지향하는 작업을 통해 더욱 효율적이고 인간적인 민주주의 국가를 이룩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뉴트 깅리치는 토론 전반에 걸쳐 앞 두 명의 의견에 강하게 반대한다. 그는 부유층에 대한 과세가 도덕적으로 옳지 못하며 성취에 대한 의욕을 저하한다는 측면에서 현실적으로도 부적절하다고 역설한다. 나아가 작은 정부야말로 세계적인 흐름이며 유다시티나 전자 제품의 사례를 들어 민간 부문의 확대가 사회의 발전에 더욱 효율적인 길임을 웅변한다.

아서 래퍼 역시 세율 향상에 일관되게 반대하는 입장이다. 그는 세율이 올라갈 경우 고소득자의 세금 회피가 크게 늘 것이라 예측하며 존 F. 케네디와 로널드 레이건 정부의 사례를 들어 감세가 역설적으로 고소득자의 세 부담을 증가한다고 말한다. 세수를 늘리기 위해서는 오히려 세율을 낮춰야 하며 각종 감면 혜택을 폐지하고 과세 범위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세제 정책을 일괄 개편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에 따르면 경제 성장과 번영을 대신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불평등이 커질지라도 전체적으로 더욱 부유해지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라는 것이다.

아서 래퍼는 이런 논리를 내세워 경제성장이야말로 모든 문제의 해답이며 성장의 장애 요인이 될 수 있는 최고 세율 인상에 극렬히 반대하는 입장을 고수한다. 거듭된 경제 성장이 가져오는 고용 창출을 통해 소득 불평등을 완화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며 임시 변통으로 세율을 올리는 건 근본적인 세제 개혁을 지연하는 어리석은 행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각기 학계와 정계에서 두드러진 업적을 쌓은 이들 네 명의 명사는 부자 증세와 관련해 한바탕 격의 없는 토론을 펼쳤다. 그리고 그 끝에서 찬성 70%, 반대 30%로 토론 전보다 격차를 크게 벌리는 데 성공한 폴 크루그먼과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콤비가 승리의 영광을 안았다.

물론 모든 과정이 매끄러웠던 건 아니다. 마무리 발언을 통해 폴 크루그먼이 언급한 것처럼 격렬한 토론 과정에서 일부 부적절한 상황(폴 크루그먼은 너무 많은 지푸라기 인형이 내던져졌다고 에둘러 표현했다)이 빚어지기도 했던 것이다. 대체로 불확실한 사실을 근거로 삼거나 상대의 의견을 은근히 왜곡하는 식이었다. 이와 같은 순간에도 대체로는 상대를 존중하고 자신의 의견을 합리적으로 펼쳐 대중을 설득하려는 참가자들의 성숙함이 엿보였다. 책을 읽는 내내 이처럼 품격있는 토론이 이뤄질 수 있는 캐나다의 문화적 저변이 부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부자 증세하는 선진국, 서민 증세하는 한국

부자 증세와 관련한 요구는 비단 미국과 캐나다에서만 제기되는 게 아니다. 토론에서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가 언급한 빈부 격차의 확대는 자본과 소득 양면에서 전 세계적으로 이뤄지는 현상이다. 이와 관련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최근 내놓은 보고서는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지난해 12월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소득 불평등이 경제 성장에 끼치는 영향>이라는 제목의 이 보고서는 '소득 불평등 해소가 경제 성장률을 높이고, 소득 불평등이 심각할수록 그렇지 않은 나라보다 성장률이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소득 불평등이 단일 변수 중 성장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했다. 보고서의 결론은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위해 부자증세 등 적극적 재분배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앞서 <21세기 자본>의 저자 토마 피케티 역시 교육에 대한 투자와 누진세 정책에 의한 재분배를 소득 불평등의 해법으로 제시한 바 있다.

이 문제에선 한국도 예외일 수 없다. 빈부 격차와 사회 안전망의 붕괴, 자산 및 소득 상류층의 도덕적 해이가 연달아 사회 문제로 떠오르며 보다 근본적인 해법을 요구받고 있다. 지난 2013년 <뉴스타파>에 의해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해 세금을 탈루해온 이들의 명단이 공개되어 큰 파장을 일으켰고, 2014년 2월 발생한 송파 세 모녀 사건 등 사회 안전망의 붕괴 징후도 곳곳에서 잇따랐다. 지난해 말에는 삼성SDS 상장에 따라 삼성가 3남매가 수조 원의 차익을 거둬 부당이득 논란이 일었고 SK 최태원 회장의 가석방 가능성이 정치권에서 제기됐으며 대한항공의 '땅콩회항'이 국민적 분노를 자아내기도 했다.

한국 사회의 빈부격차는 이미 심각한 수준이다. 그리스 총리를 역임한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가 경고하는 것처럼 한국 사회에서도 부의 집중이 사법 제도·정치·공익의 영역에서 민주 정치의 토대를 침식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지난 정권의 '사자방' 의혹(4대강, 자원외교, 방위산업체 비리의혹)이 이러한 현상과 연관이 없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한국의 부자도 천국에 갈 수 있을까?

김무성, 인사 온 최경환 '토닥토닥'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3일 오전 국회 본회의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기 앞서 인사 온 최경환 경제부총리, 유승민 신임 원내대표의 어깨를 토닥이며 얼싸안고 있다.  집권여당의 대표로서 이날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 나선 김 대표는 정부의 복지 정책 기조이자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증세 없는 복지'에 대해 "증세 없는 복지는 불가능하며 정치인이 그러한 말로 국민을 속이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김무성, 인사 온 최경환 '토닥토닥'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3일 오전 국회 본회의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기 앞서 인사 온 최경환 경제부총리, 유승민 신임 원내대표의 어깨를 토닥이며 얼싸안고 있다. 집권여당의 대표로서 이날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 나선 김 대표는 정부의 복지 정책 기조이자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증세 없는 복지'에 대해 "증세 없는 복지는 불가능하며 정치인이 그러한 말로 국민을 속이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지적했다.남소연

근래 학생들의 무상급식과 초등 돌봄 교실 등에 쓰일 예산이 연이어 삭감되며 논란이 일고 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무상급식 중단을 선언하며 보편적 복지를 비판한 것과 관련한 각종 소식이 들려온다. 학생들의 급식을 정부가 책임지는 건 적절한 영양 섭취를 통해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려는 의도에서 실시되어온 정책이다.

앞에 언급한 부정 비리에 비한다면 매우 적은 돈이 소모되지만 최소한의 평등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런데 이와 같은 제도를 폐지하고 스스로 저소득층임을 입증한 후에야 무료 급식을 받도록 한다면 평등이 아닌 차별을 낳는 정책이 될 것이 자명한 일이다.

책에서 폴 크루그먼은 수 차례에 걸쳐 푸드 스탬프 제도의 예산 삭감을 상위 1% 소득자의 소득에 과세함으로써 막아내야 한다고 언급한다. 푸드 스탬프 제도가 빈곤층의 생명줄과 같으며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지난 2011년 한 해 동안 미국의 고액  납세자 상위 1%의 사람들은 자본 이득을 별개로 하고도 총 1조 4천 억 달러를 벌어 들였다. 이들이 약간의 세 부담을 감수한다면 20억 달러 삭감이 결정된 푸드 스탬프 제도의 예산을 충당하는 게 가능하다고 크루그먼은 주장한다. 스스로 고소득자인 노벨상 수상자의 이러한 주장은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증세 없는 복지'를 약속하고 집권한 박근혜 정부는 노인 기초연금 지급, 4대 중증 질환에 대한 의료비 보장 공약을 후퇴시킨 걸 시작으로 담뱃값 인상, 무상보육 예산 파동, 주민세·자동차세 등 지방세 인상, 연말정산 논란 등을 연이어 일으키며 거센 반발에 부닥쳤다. 정부의 이러한 행보는 사실상 서민 증세로 부자 증세를 확대하고 있는 미국·프랑스·일본 등 세계적인 추세에 역행하는 것이다.

책에서 폴 크루그먼이 누누이 말하는 것처럼 부자 증세는 부자들의 부를 빼앗기 위한 것이 아니다. 부자에게 더 많은 세금을 요구하는 건 공동체의 발전과 유지를 위해 그들의 부가 절실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유명한 대법관 올리버 웬들 홉스는 "세금은 문명 사회의 대가다" 라는 명언을 남겼다. 주지하다시피 워런 버핏과 빌 게이츠를 비롯한 미국·독일 등 서구사회의 부자들은 빈부격차의 해소를 위해 자신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거둘 것을 요구해왔다.

이런 가운데 한국 사회의 여러 지표들이 복지의 확대와 증세의 필요, 적절한 수준에서의 부의 재분배를 요청하고 있다. 정부는, 정치인은, 부유층은, 나아가 우리는 이러한 요구에 응답해야 한다. 이 책의 역자 양상모씨의 말처럼 예수의 사망으로부터 2천 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오늘,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이유가 대체 무어란 말인가.
덧붙이는 글 <부자가 천국 가는 法>(멍크 디베이트 지음 / 양상모 옮김 / 오래된 생각 펴냄 / 2015.01. / 1만 원)

부자가 천국 가는 法 - 보수와 진보를 대표하는 거장들의 불평등에 관한 논쟁

폴 크루그먼 외 지음, 양상모 옮김,
오래된생각, 2015


#부자가 천국 가는 法 #멍크 디베이트 #양상모 #오래된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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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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