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봄이 도착한 이곳, 이름도 특이합니다

[강원도 겨울풍경] 겨울과 봄 사이에 서 있는 춘천 봄내길

등록 2015.03.15 22:46수정 2015.03.17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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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란 하늘이 인상적인 문배마을 풍경.
파란 하늘이 인상적인 문배마을 풍경.성낙선

남쪽에서 연일 봄소식이 올라오고 있다. 아침나절의 기온이 이전에 비해 한층 더 상승한 것은 알 수 있다. 어느 지역에서는 매화꽃까지 피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봄이 가까이 다가온 것을 알 수 있다. 춘천도 예외는 아니다. 춘천 시내 한복판을 흐르는 공지천에서도 따뜻한 봄기운이 느껴진다.

 물깨말구구리길, 길가에 서 있는 작은 돌탑 하나. 그 모양이 부처를 닮았다.
물깨말구구리길, 길가에 서 있는 작은 돌탑 하나. 그 모양이 부처를 닮았다.성낙선
겨우내 수면을 하얗게 뒤덮었던 얼음이 요 며칠 못 보던 사이, 그야말로 눈 녹듯 사라지고 없다. 물 흐르는 소리가 청량하게 들려온다. 하지만 춘천에서는 아직 꽃 소식이 전해지지 않는다. 천변이나 들판에 파란 풀잎이 돋아나고, 그 위로 다시 꽃이 피기까지는 좀 더 시간을 기다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낭만적인 도시로 알려진 춘천은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봄'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는 곳이다. 춘천을 순 우리말로 풀어쓰면, '봄내'가 된다. '봄'이라는 단어에 '시내'라는 단어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이름이다. 어떻게 해서 그런 이름이 붙게 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이렇게 유추해 볼 수 있다.

다른 지역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춘천에서는 봄이 오는 소식을 흐르는 시냇물에서 가장 먼저 알 수 있다. 얼어붙었던 시냇물이 녹기 시작하고, 천변으로 파란 풀잎이 돋아나기 시작하면, 비로소 봄이 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춘천에는 북한강을 비롯해서, '공지천' 같이 크고 작은 시내들이 수없이 존재한다.

그 시내들이 도시 곳곳을 적시며 흐른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춘천을 대표하는 것 중에 하나로 '시내'를 꼽는 것도 상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니까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봄소식을 제일 먼저 전해주는 시내'를, 지역을 상징하는 이름으로 받아들인 것도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 중에 하나였을 거라는 생각이다.

들으면 들을수록 정겨운 말, 물깨말구구리길

 '자연이 살아 숨쉬는 구곡폭포 관광지' 입구. 이곳에서부터 물깨말구구리길 여행이 시작된다.
'자연이 살아 숨쉬는 구곡폭포 관광지' 입구. 이곳에서부터 물깨말구구리길 여행이 시작된다.성낙선

춘천에서는 봄이 시냇물을 따라 흐른다. '강촌'도 봄이 가장 먼저 당도하는 곳 중에 하나다. 강촌은 북한강변에 둥지를 틀고 있는 동네다. 그러니, 다른 곳보다 좀 더 빨리 봄이 다가오는 소식을 전해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날이 풀리면서, 강촌을 찾는 사람들도 점점 더 늘고 있다.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봄내길'로 봄 산책을 나온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겨울잠에서 깨어나 세상 나들이에 나선 다람쥐 한 마리.
겨울잠에서 깨어나 세상 나들이에 나선 다람쥐 한 마리.성낙선
봄내길은 춘천을 대표하는 도보여행길 중에 하나다. 청정한 산과 물을 끼고 도는 길이 대부분이라, 소란스러운 세상을 떠나 조용한 곳에서 호젓한 여행을 즐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자주 찾는다. 그중 강촌에 있는 봄내길은 2코스로, '물깨말구구리길'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이 길은 그 이름부터 사람들의 이목을 잡아끈다.

물깨말구구리길은 사실 사람들의 이목뿐만이 아니라 그 마음까지도 사로잡는다. 전국에 별별 여행길이 다 있지만, 이처럼 독특한 어감의 이름을 가진 길도 드물다. 이상하다고 해서 거리감이 느껴지는 게 아니다. 순수한 우리말이 대개 그렇듯이 처음 듣는 말인데도 상당히 친숙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산뜻한 문양의 봄내길 이정표.
산뜻한 문양의 봄내길 이정표.성낙선
물깨말구구리길은 들으면 들을수록, 또 소리를 내서 부르면 부를수록 정감이 가는 말이다. 얼핏 보면 그 말 뜻이 꽤 복잡할 것 같은데, 실제 알고 나면 결코 그렇지 않다. '물깨말'은 강 언저리에 자리를 잡은 마을인, 강촌을 의미한다. 그리고 '구구리길'은 쉼 없이 굽어 도는 길이라는 뜻이다. 그 뜻을 알고 나면, 물깨말구구리길처럼 춘천에 있는 도보여행길을 잘 표현한 말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물깨말구구리길이라는 이름이 꽤 인기를 얻자, 춘천시에서는 한때 춘천에 있는 지역 명 중 일부를 가능한 한 순우리말로 고쳐 부르려고 했다. 하지만 순 우리말을 되살려내는 일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후, 그 일은 흐지부지되고 만다. 사실 물깨말구구리길처럼 정겨운 말을 찾아내는 일도 쉽지 않다.

 흐르는 계곡 물에 서서히 녹아내리는 얼음장.
흐르는 계곡 물에 서서히 녹아내리는 얼음장. 성낙선

한때 오지마을로 불렸던, 깊은 산 속 문배마을

물깨말구구리길은 봉화산 속 구곡폭포를 찾아가는 길 입구에서부터 시작된다. 봄이 오는 길답게 길가로 작은 개천이 흐른다. 산 속을 흐르는 계곡물이다. 계곡으로 얼음물이 쉼 없이 녹아내리고 있다. 수면이 반쯤은 얼음으로 덮여 있긴 하다. 하지만, 그 밑으로 계곡물이 흘러 내려가는 속도로 봐서 지금 남아 있는 얼음 조각마저 조만간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게 분명하다.

한겨울에 빙벽을 타러 오는 사람들로 늘 북적이던 구곡폭포도 이제 서서히 녹아내릴 준비를 하고 있다. 겉보기에 이곳에서는 아직도 겨울왕국이 전혀 위세를 잃지 않은 것처럼 보이다. 그렇지만, 빙벽 안쪽에서는 그 왕국이 서서히 허물어져 내리고 있다. 얼음으로 뒤덮인 절벽 높은 곳에서 계곡 물이 조용히 흘러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남쪽에서는 봄꽃이 피고 있다는데 여전히 얼음으로 뒤덮여 있는 구곡폭포.
남쪽에서는 봄꽃이 피고 있다는데 여전히 얼음으로 뒤덮여 있는 구곡폭포.성낙선

물깨말구구리길은 문배마을로 올라가는 산길에서 그 진가를 발휘한다. 경사가 급한 산비탈 위로 갈지자로 꺾어지는 길이 수없이 나타난다. 문배마을은 옛날에는 오지 마을 중에 하나로 꼽혔다. 사람들이 잘 찾아가지 않고, 마을 밖에서는 마을 안이 전혀 들여다보이지 않는 까닭에 한국전쟁 당시엔 전쟁 피해를 보지 않았다는 말도 있다.

 문배마을, 낯선 방문객을 향해 맹렬하게 짖어대는 개 한 마리.
문배마을, 낯선 방문객을 향해 맹렬하게 짖어대는 개 한 마리.성낙선
하지만 봄내길이 만들어지고, 또 다른 길로는 자동차까지 드나들 수 있는 마을이 된 지금은 사람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마을 중에 하나로 변했다. 게다가 요즘은 마을 사람들 대부분 생계 수단으로 음식점과 민박집을 겸하고 있어, 예전처럼 오지에 있는 마을에서만 볼 수 있었던 풍경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도 한적한 분위기는 여전하다.

산 위에서 내려다보는 문배마을은 봄에 좀 더 가까이 다가서 있는 듯하다. 문배마을은 국그릇 모양의 작은 분지 안에 형성돼 있다. 그 모양이 무척 포근해 보인다. 마침, 몇 안 되는 집들과 논밭 위로 강한 햇살이 쏟아져 내린다. 마을 곳곳에 겨울 흔적이 남아 있는 게 보이지만, 차가운 느낌은 아니다. 마을을 감싸고 있는 파란 하늘마저도 따뜻한 기운을 품고 있다.

맑고 투명한 계곡물 속에서 찾아낸 춘천의 봄

 좁은 계곡물을 헤엄쳐 다니는 물고기 한 마리.
좁은 계곡물을 헤엄쳐 다니는 물고기 한 마리.성낙선
문배마을을 떠나 좁은 산길을 더듬어 내려오는 길에 다시, 얼음이 녹고 있는 계곡물과 마주한다. 맑고 투명한 물빛에 반해서, 물 속을 한참 들여다본다. 그런데 그 물 속에 무언가 꼬물거리는 것이 보인다. 작은 생명체가 살고 있는 그 물웅덩이는 세수대야보다 조금 더 커 보인다. 물 속 깊이는 세수대야보다도 더 얕다.

그 속에서 피라미처럼 작은 물고기 세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놀고 있는 모습이라니... 놀라운 일이다. 물고기들이 겨우내 얼어 죽지 않고 살아남은 것도 신기하지만, 이처럼 깊은 산 속에, 그것도 겨우 손바닥만한 물웅덩이에 의지해 살고 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다. 이 작은 생명체들은 어떻게 그 혹독한 겨울을 견뎌낸 것일까?

봄이 다가오면서 새 생명이 돋아나는 걸 여기저기서 볼 수 있다. 산 속 계곡도 예외는 아니다. 새로운 생명이 움트는 광경은 들판에 피어나는 풀잎이나 버들강아지 같은 것에서만 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깊은 산 속, 좁은 물웅덩이 안에서 물고기들이 태평하게 헤엄치며 노는 모습이 지극히 평화롭다. 그 평화를 깨고 싶지 않아, 조용히 자리를 뜬다.

 따뜻한 햇살이 가득 쏟아져 내리는 물깨말구구리길.
따뜻한 햇살이 가득 쏟아져 내리는 물깨말구구리길.성낙선

물깨말구구리길은 처음 걷기 시작했던 곳으로 돌아오면서 끝난다. 물깨말구구리길을 따라서 산 속 여행을 끝냈을 땐, 어느새 봄이 한결 더 가까이 다가와 있는 듯한 느낌이다. 춘천에서도 봄은 그리 먼 곳에 있지 않았다. 춘천을 찾아온 봄은 맨 먼저 산 속 깊은 계곡, 작은 물웅덩이 속에 깃들어 있었다.

봄내길은 모두 여섯 개 코스로 나뉘어 있다. 2코스인 물깨말구구리길은 길이가 약 8km다. 천천히 걸어 3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다. 이 길을 걸을 때는 길 입구에서 주차료와 입장료를 지불해야 한다. 강원도에서는 요즘 건조한 날이 계속되고 있다. 담배꽁초를 버리는 것 같은 사소한 행위가 대형 산불로 일어질 수 있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춘천 봄내길 2코스, 물깨말구구리길 안내판.
춘천 봄내길 2코스, 물깨말구구리길 안내판.성낙선

#봄내길 #물깨말구구리길 #춘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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