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과 점심시간 사라진 직장, 머지 않았다

[노동시간에 대해 말해야 하는 것들 ⑦] 디지털 모바일 시대의 노동 시간

등록 2015.03.20 09:49수정 2015.03.20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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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과 비노동 간의 관계와 관련해 산업 사회의 주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노동 시간과 여타 남는 시간 간의 '분리'다. 대공장으로 표상되는 산업 사회 이후 노동 시간은 성긴 형태에서 규칙적이고 연속적이며 조밀한 형태로 바뀌었다. 이와 동시에 성기고 느슨한 시간들은 여지없이 제거되고 작업장 밖 여타 남는 시간으로 배치해야 했다. 이것이 '분리'가 함축하는 바다.

디지털 모바일 시대에서는 노동 시간과 비노동 시간 간의 경계가 점점 모호해지고 있다. 노동 시간과 여타 남는 시간의 구분이 흐려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다양한 요인을 들 수 있겠지만, 그것은 산업 시대 '표준화'를 지향했던 노동 시간의 패턴이 디지털 모바일 기술을 매개로 '비표준화'되어 간다는 것이다.

그 변화는 단순히 형태 변화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질적인 차이를 내포한다. 여기서는 그 차이를 중심으로 디지털 모바일 시대의 노동 시간과 비노동 시간 간의 관계가 어떻게 재구조화되는지 구별한다. 여느 나라보다 디지털 모바일 기술의 파급 속도가 유난히 빠른 한국사회에서 노동 시간의 유연화가 유독 급격히 진행됐던 상황 속에서 구조적 유사성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공통적인 시·공간의 삭제

디지털 모바일 시대의 눈에 띄는 변화는 산업 사회가 표상했던 표준화된 전일 노동이라는 노동 패턴이 전반적으로 감소한다는 점이다. 출근에서 퇴근까지 연속적으로 이어진 노동 패턴이 아닌 비표준 형태의 노동들이 여기에 해당할 텐데, 이를테면 콜 신호에 따라 움직이는 대리운전 기사에게 '언제, 얼마 동안 일하느냐'라는 시간의 관리는 기존의 전일 노동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퀵서비스 기사, 방문 판매원, 보험 설계사, 프로젝트 기반의 전문직 종사자 또한 마찬가지다. 이런 노동자들은 독특한 시간의 세계에 놓이게 되는데, 그것은 출·퇴근이라는 리듬과는 별개로 콜 신호에 따라 이곳저곳에서 접속과 해제하는 그런 비규칙적인 리듬의 세계다. 여기서 연속적인 길이로서의 전일 노동은 무의미하다. 디지털 모바일 기술은 업무의 발생 시점, 빈도, 순서, 지속 시간, 종료 시점을 재구조화해 노동의 단시간성을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물론 대리운전 기사는 일하는 시간을 얼마나 어떻게 쪼개던지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 시·공간에 구속된 업무에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자율적이다. 그러나 콜 신호에 따라 여기저기 이동하며 불연속적이고 조각난 일들을 수행하는 상황에서 그 자율성은 허구적인 수사에 불과하다.


형식적으로는 자율적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콜 신호를 받기 위해 항시 대기해야 하고 여러 건수들을 알아서 엮어야 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일감을 따라 부초처럼 정처 없이 표류하는 삶을 살아간다'는 리차드 세넷의 지적은 이와 상통한다. 이러한 노동 세계에서 전일 노동이라는 시간적 묶음은 진부한 것이 된다.

공간 차원에서도 디지털 모바일 노동의 질적 차이는 발견되는데, 그것은 공장이나 사무실 같은 집단적인 장소에 구속됐던 업무들이 탈공간화된다는 것이다. 디지털 모바일 기술이 매개된 노동에는 특정한 장소의 구속이 더욱 불필요해진다. 온갖 생산 도구 기능이 집단적인 장소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게 되고 인간의 신체로 옮겨졌기 때문이다.


노동자는 비가시적인 디지털 네트워크에 연결된 채 조각난 업무를 실행할 뿐이다. 이러한 디지털 모바일 노동은 특정한 장소에서 서로 얼굴을 맞댈 필요가 없이 비동시적인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한 디지털 모바일 기기에 연결될 뿐이다. 그것은 공장이나 사무실에 구속된 노동과는 상이한 모습이다. 노동의 집단적 장소성은 사라지고 오직 '개인화된 노동'만이 디지털 네트워크에 걸쳐져 있기에 전례 없는 수준으로 이동성이 극대화된다.

 대리운전 기사는 일하는 시간을 얼마나 어떻게 쪼개던지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 시·공간에 구속된 업무에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자율적이다. 그러나 콜 신호에 따라 여기저기 이동하며 불연속적이고 조각난 일들을 수행하는 상황에서 그 자율성은 허구적인 수사에 불과하다.
대리운전 기사는 일하는 시간을 얼마나 어떻게 쪼개던지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 시·공간에 구속된 업무에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자율적이다. 그러나 콜 신호에 따라 여기저기 이동하며 불연속적이고 조각난 일들을 수행하는 상황에서 그 자율성은 허구적인 수사에 불과하다.flickr

'함께 쉬기'의 침식

"노동 과정이 장소에 묶이지 않는다"는 말을 관계 차원에서 다시 풀어보면, '동일한 장소에서 함께 일하기'의 정체성이 침식된다는 의미다. 공동의 장소에서 특정한 시간 동안 함께 일하기가 가져다주는 집합적인 경험과 감각 말이다.

디지털 모바일 기술이 적용되면서 특정한 장소에서 함께 일을 해야 한다는 필요성 자체가 줄어들기에 콜 신호에 의해 매개되는 개인화된 노동 이외에 어떤 사회적 관계도 발생하지 않는다. 동료 관계는 사라지고 콜 신호를 향한 경쟁만이 작동한다. 물론 콜 신호 주변의 사회 관계가 가능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시간성이 요구되는 '관계'라기보다는 일종의 우발적이고 단속적인 '마주침'에 불과하다.

노동의 탈공간화는 또한 '함께 쉬기'의 정체성을 침식한다. '(업무 전) 차 한 잔합시다', '(점심 식사 후) 커피 한 잔 합시다', '(쉬는 시간) 담배 한 대 태워요?'처럼 누군가에게 건낼 수 있는 여유 시간과 휴게 시간이 발생할 수 없다. '퇴근은 언제 하나요?', '(퇴근 후) 소주 한 잔합시다', '올 여름 휴가는 언제로 잡아야 하는지?' 등의 표현도 성립되지 않는다. 관계적이고 의례적인 성격의 함께 쉬기는 사라지고 만다. '우리', '동료'라는 표현이 발생할 수 없는 그런 노동 세계인 것이다.

경험은 특정한 시공간 속에서 생겨난다. 공통의 시·공간은 집합적인 경험을 담아낼 수 있는 포괄적인 틀을 제공한다. 전통적으로 노동자 문화를 구성하는 요소들은 공장 지대나 의복 양식, 조직 의례, 이완의 시·공간이었다. 이에 반해 디지털 모바일 노동자의 경험들은 콜 신호가 뜨는 곳곳으로 쪼개진다. 문화적 동질성을 구축할 공통의 토대가 사라지면서 디지털 모바일 노동자의 시간은 지극히 개인화된 사건과 경험들로 채워진다.

이렇게 노동의 탈공간화는 '집단이 공유하는' 공간에 대한 공통 경험, 시간에 대한 공통 감각, 다시 말해 집합적인, 관계적인, 의례적인 시·공간의 사라짐을 내포한다.

미래 서사가 불가능한 삶

시계 시간에 의해 규정된 '시간 지향적인' 노동 패턴으로 변화한 것이 산업 사회의 결정적 특징이라면, 디지털 모바일 기술을 계기로 시간 지향적인 노동 패턴은 퇴색된다. 이는 노동이 '노동시간에 의해 특징 지워지는 것'이 아니라, '건수에 따라 업무를 수행하는 방식'으로 전환돼 가고 있기 때문이다. 특정한 시·공간에서의 작업 과정에 기초한 업무 평가가 아니라 콜 신호로 상징되는 건수에 기초한 평가가 중요해지는 노동 세계의 도래 말이다.

디지털 모바일 노동은 삶의 파편화 가능성도 일반화한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디지털 모바일 노동은 자신의 삶을 연속적인 이야기로 만들어 줄 수 있는 어떤 전후 연관성도 사라지게 한다. 오늘의 일과표와 내일의 일과표 간의 연속성을 찾을 수도 없고 앞으로 어떤 일이 어떻게 벌어질지를 예측하거나 설명할 수 없다.

역설적으로 노동자 개인은 수시로 자신의 인생사를 취사 선택하고 끊임없이 관리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이러한 맥락에서 위험을 계급 지위로 환원할 수는 없지만, 위험 가능성이 하층에 더욱 축적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취약 노동자 개인의 생애사는 파손당하기 십상이다.

디지털 모바일 노동은 노동 시간 전후의 여타 남는 시간들을 안정적으로 기획하기 어렵게 한다. 생활 패턴을 엇갈리게 하는 것은 물론 가족 시간을 단절한다. 식사 시간, 쉬는 시간, 여가 시간, 수면 시간 역시 파편화한다. 접속적인 노동 패턴은 시간 사용의 불규칙성과 비예측성을 낳고 자율적인 시간 사용의 안정적인 주기성까지 침해하기 때문이다.

시간구조는 우리의 삶을 규정한다고 말한다. 특정한 노동 시간표는 여타 남는 시간을 질적으로 다르게 모양짓는다는 점을 감안할 때, 디지털 모바일 기기를 장착한 노동자들에게 소위 '8시간 잠-8시간, 노동-8시간 휴식'이라는 구호는 공허하기만 하다.

위험의 개인화

디지털 모바일 기술에 따른 노동의 탈공간화는 산업 사회가 요구했던 근면한 인간형이 굳이 필요치 않게 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자본은 더 이상 출·퇴근 시간 같은 집단적인 규범으로서의 시간 규율을 필요로하지 않는다.

콜 신호에 따라 이곳저곳 이동하는 노동자들에게도 외적인 형태의 시간 규율은 무의미해진다. "지각했다", "시간을 못 지킨다", "점심 시간이다", "퇴근 시간이다" 등 규범적인 차원의 표현들은 모두 퇴색되고, 오직 개별적으로 분절된 콜 신호에의 시간 엄수가 관건이 된다. 이는 산업 사회의 집합적인 시간 엄수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디지털 모바일 노동의 새로운 모습은 전일 노동이 담보했던 조직적 전제들이 쓸모없는 것으로 치부된다는 점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전일 노동 시대 기업 조직이 제공해야 했던 집합적인 보장·보호 기능이 사라진다는 이야기다. 전일 노동 중간 중간 배치됐던 휴게 시간은 발생하지 않는다. 각종 부가 급여도 애당초 발생하지 않는다. 또한 전자 장비를 구입·유지하기 위해 들이는 모든 비용은 개인이 감당해야 한다.

더욱 눈여겨볼 점은 건강상의 위험이나 미래 불안에 대처하는 비용까지 노동자 개인이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자들은 위험을 처리하기 위한 집단적인 대응에 기대기도 어렵다. 계급 투쟁의 과정에서 언제나 핵심 언어인 연대는 시간의 파편들 사이에서는 생겨나기 힘들기 때문이다. 공간적인 탈중심화가 이뤄지면서 노동자는 자기 노동에 대한 주권을 얻은 듯 보이지만, 동시에 이런 노동에 있어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은 사적인 문제가 돼 버린다. 디지털 모바일 노동은 위험을 더욱 개인화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디지털 모바일 기술을 매개로 더욱 두드러진 시간 경계의 모호함은 노동 시간을 둘러싼 노동과 자본 간의 투쟁 더 구체적으로 말해, 자유 시간을 손에 넣기 위한 노동의 투쟁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노동과 자본 간 공통의 분모가 되었던 '노동 시간'의 척도적 의미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시간당 얼마'라는 시간과 임금 간의 연결 고리가 해체되는 것이다. 여기서 노동 시간 단축이라는 노동의 오랜 구호는 무용지물이 된다. 오직 콜 신호에 따른 건수와 실적을 채우는 것이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그것은 노동 시간으로 환원할 수 없는 형태의 일들이다.

새로운 형태의 노동 세계에서 시간을 파편화하는 기획들에 저항하면서 자유 시간을 손에 넣기 위한 투쟁은 근본적으로 바뀌게 된다. 이는 디지털 모바일 기술이 유난히 빠르게 파급되는 한국사회에서 더욱 고민해야 하는 지점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김영선 기자는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원이자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노동시간센터(준) 회원입니다. 또한 이 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발간하는 기관지 <일터> 3월호에도 연재한 글입니다.
#노동시간 #디지털 모바일 시대 #비노동시간 #노동시간 유연화 #노동시간단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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